▲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
정치인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에 그치기 쉽다고 흔히 말합니다. 우리의 정치현실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정치인의 이런 마키아벨리즘은 신뢰사회를 그 바닥부터 무너뜨리는 가장 으뜸가는 적입니다. 정치인은 애초부터 지키지도 못할 수많은 공약으로 국민들을 헛된 꿈과 기대에 부풀게 합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침내 약속은 폐기되고 거듭되는 약속위반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신뢰의 상실을 가져옵니다.
“정권이 바뀌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젊은 부부들에게 집 한 채씩 줄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11월, 당시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양대 행정대학원 특별강연 중에 한 발언입니다. 그 후 그는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되었고 경제대통령을 자임하며 여러 가지 귀가 솔깃한 공약을 쏟아놓았습니다. “아파트 분양원가 20% 인하하겠다” “신혼부부 위해 매년 12만 가구 공급하겠다” “통신비 20% 인하하겠다” “서민 주요생활비 30% 절감하겠다” “휘발유, 경유에 붙는 교통세 인하하겠다” “남북한 상호개방과 교류를 통한 문화코리아 지향하겠다” “반값아파트 반값등록금 반드시 실현하겠다” “서민무상보육 서민무상급식 한나라당이 책임지겠다” 등등. 국민들은 기업가 출신의 한 정치인이 제시하는 솔깃한 약속에 환호했고 전과 14범이라는 도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면 그의 약속대로 국민 모두가 성공하는 ‘국민성공시대’가 열릴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한 정치인의 장밋빛 약속에 걸었던 꿈과 기대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간단히 쓰레기통에 버려졌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한 2011년 예산안을 보면 서민무상급식을 책임지겠다던 정부가 올해 책정한 무상급식예산은 땡전 한 푼 없는 0원입니다. 무상급식예산 0원!! 그것도 모자라 여당 소속의 현서울시장은 서울시의회가 결의한 무상급식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라며 나라를 구하는 일념으로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생떼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보수단체와 함께 무산급식 반대하는 주민투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밥을 굶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결식아동급식지원금 541억도 전액 삭감되었습니다. 대학교 반값등록금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던 이명박 정부는 도리어 올해 대학생 학자금대출 신용보증기금지원액 1천억을 삭감하였습니다. 저소득층에 대해 의료보장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더니 12세 미만의 유아, 아동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예방주사접종비 400억을 전액 삭감하였습니다. 건강보험 가입자지원금 568억 삭감, 공공의료 확충예산 627억 삭감, 노인장기요양보험시설 확충예산 447억 삭감, 저소득층 암 조기검진 및 의료비지원 45억 삭감, 차상위계층 의료지원비 304억 삭감 등, 이들 모두를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 한 번 하지 않고 단독으로 날치기 삭감하였습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복지혜택을 주어야 할 저소득층 관련예산은 더욱 심각합니다. 마치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듯합니다. 기초생활자 급여예산 649억 삭감, 저소득층 의료지원비 880억 삭감, 저소득층 긴급복지비 1,000억 삭감, 저소득층 에너지보조금 903억 전액 삭감, 저소득층아동 공부방지원예산 29억 전액 삭감, 한시적 생계구호비 4,181억 전액삭감, 실직가정 대부사업비 3,000억 전액삭감, 노인 일자리 예산 190억 삭감, 사회적 일자리 창출지원금 340억 삭감, 서울시 독거노인 주말도시락 보조금 2억 전액 삭감되었습니다. 그 외 장애아동 무상보육지원금 50억 삭감, 장애인 차량지원비 116억 전액 삭감, 서민지원교육예산 1조 4000억 삭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소요되는 지원예산 1,100억도 전액 삭감되었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동남권신공항 건설 추진을 백지화한 것은 새삼 놀라고 분노할 일이 아닙니다. 국회표결까지 가서 간신히 원안대로 추진하기로 결정된 세종시 건설문제나 최근 충청권을 또다시 술렁이게 만들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문제나 모두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현 집권세력의 오만함에서 비롯되는 일들입니다. 동남권신공항 건설이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말은 이제 와서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약속하기 전에 먼저 따져 보았어야 합니다. 애초부터 타당성이 없는 계획이라면 약속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입니다. 대통령의 거듭되는 공약파기는 급할 때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단 덥석 물고 본 다음 나중에 여차하면 먹고 튀는 먹튀정치의 전형입니다.
예수를 따랐던 많은 사람들 중에도 먹고 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서는 그들을 가리켜 ‘무리’라고 부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막3:7~8) ‘큰’, ‘많은’이란 수식어가 앞에 붙은 이들 ‘무리’는 누구일까요? 이들은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예수를 찾아 온 사람들입니다.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는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쫒아주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길로 예수를 떠났습니다. 자신의 필요가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치료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중 단 한명만이 예수께 절하며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현실을 탄식하며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17:17) 그 아홉은 먹고 튀었습니다. 주님!
급할 땐 하나님께 매달리다가 한 숨 돌리면 은혜를 잊고 나 몰라라 하는 신앙은 먹튀신앙입니다. 급할 땐 국민에게 매달리다가 권력을 쥐면 권력을 준 국민의 은혜를 잊고 국민과의 약속을 밥 먹듯이 저버리는 정치는 먹튀정치입니다. 먹튀정치와 먹튀신앙 이 둘은 배은망덕이 낳은 샴-쌍둥이입니다. 이 둘 모두 함께 사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