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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칼럼] 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야고보서 2:14-18)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땅에서 이뤄 가는 것의 다른 말입니다. 우리의 생활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지지 않고 교회 안에, 성서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죽은 신앙입니다. 죽은 신앙은 아무 힘도 없습니다. 온전한 신앙은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되어질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이 맛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삶과 신앙의 분리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도 많고, 목사도 많고, 교인도 많은데 세상이 심각한 병에 걸려있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이 생활로 살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활과 분리된 신앙는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건강하지 못한 것처럼, 이렇게 신앙과 생활이 분리된 삶은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 추상적인 신앙의 범주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추상적인 신앙, 머리로 유희하는 신앙은 참 좋은 신앙 같지만 정말 십자가를 져야할 순간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더 추악하게 본 모습을 드러내어 상처를 줍니다.

언젠가 정쟁만 일삼던 여야의원들 중에서 여성의원들이 "이제 싸움질 그만하고 잘 해봅시다"하고는 5분도 안되어 설전을 벌였다는 보도를 듣고 씁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재로 교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있습니다.

예배에서 대표기도를 맡으신 장로님이 장황하게 기도를 하시는데 늘 하시던 대로 원수를 용서하게 하시고, 상대방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화해하게 하시고 등등의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은혜스럽게 기도를 마쳤답니다. 예배를 마치고 당회를 하는데 기도한지 몇 분이나 되었다고 다른 장로들과 멱살잡이하고 싸움을 하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조금 과장된 면도 있겠지만 이런 기도를 드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는 기도고 삶은 삶이다. 말씀은 말씀이고 생활은 생활이다."

어쩌면 이런 의식들이 우리 안에 자연스러운 것처럼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런 신앙생활 속에서는 참 기쁨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생활에서 하나님의 흔적,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니 늘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삶의 현장이 기도처가 되어야 할 터인데 오직 기도는 교회에 와서 눈감고 해야만 기도인 줄 알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우리의 일상에서 늘 되어져야 할 일임에도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만 영광드리는 것으로 압니다. 우리의 전 삶을 드려서 헌신해야 하는데 십일조 또는 일부를 헌신하는 것으로 다 드린 줄 압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헌신하는 것은 신앙인이면 누구나 다 하는 일입니다. 그것가지고 자기의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내딛은 것입니다.

말씀이 생활과 분리되어있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밥 먹고 설거지하는 일, 밭 갈고 씨뿌리고 거두는 일, 공부하고 청소하고 밥하고 나누는 일, 심지어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일-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내가 신앙인으로 살겠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스럽게, 가장 편안하게, 내가 생활하는 그 한 복판에서 말씀이 녹아진 것처럼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쉽지 않아도 말씀의 생활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삼은 야고보서 2: 14-17절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은 누구나 청산유수로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만 잘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즉 입술로 아무리 고백을 하고, 이웃사랑을 말해도 행함이 없으면 구원과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이웃이 있을 때 한 마디 말보다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구원에 가깝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은 추상적인 것을 붙잡고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아주 구체적이어서 이것이 무슨 신앙적인 결단인가 할 정도로 우리 생활가운데, 일상 속에 있습니다.

찬양 중에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범한 형제여"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 마귀를 마치 뿔달린 도깨비 정도로 생각을 한다면 절대로 마귀와 싸울 수가 없습니다. 적도 없는 싸움에 중무장을 하고 나가서 홀로 칼질을 한다면 '달밤에 체조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십상입니다.

무엇이 우리가 싸워야할 마귀입니까? 입술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거기에 길들여지게 되면 이젠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고, 더 나아가 말씀대로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미련해 보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는데 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죽이는데 가담했던 이들이 누구이며,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정죄했습니까? 그들은 그들이 볼 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습니다. 왜 그들은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일을 했는데 그런 오류를 범했을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 거듭 강조하셨듯이 그들은 '위선자'였던 것입니다. 위선자가 무엇입니까?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적당하게, 칭찬 받기 위해서 하는 척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삶을 살아온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기다리던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을 때에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일을 했습니다. 아주 멋지게 마귀의 계획에 이용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말씀은 삶으로 살아질 때 비로소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 새벽 고요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하는 여러분은 그것을 사모하시기에 이렇게 귀를 기울이신 것입니다. 아니면 우연히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도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계셔서 이 방송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그렇습니다. '아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멘'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어느 날 내 삶이 온전히 주님께 바쳐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서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한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눈을 돌려보면 우리가 도와야할 이웃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북한의 동포들이 아사직전에 놓여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들이 절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나누는 일을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기쁨도 얻고 구원에 이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야고보서 2:15-16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하십니다.

구약성경 잠언에는 "혀를 제어하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강조되어있고, 오늘 본문으로 삼은 야고보서에도 "말"에 대한 말씀이 나와있습니다. 내가 오늘 하는 일을 통해서, 내가 오늘 하는 말을 통해서, 내가 오늘 기뻐하는 일을 통해서, 내가 오늘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는 일 속에서, 오늘 내가 만나는 것을 통해서, 세상 소식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시는지, 또 나는 그 말씀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가는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분리되어 있을 수 없습니다.

많이 안다고 자랑하지 마시고, 그 것이 내 생활에서 어떻게 살아지고 있는가를 통해서 구원받은 증거를 보여주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글: 김민수 목사(제주노회,기장 총회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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