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성 칼럼] 불초(不肖) 자식이 되십시오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옛날에는 자녀가 부모 앞에서 자신을 가리켜 종종 ‘불초자식’ 혹은 ‘불초소생’이라 불렀습니다. ‘불초(不肖)’는 ‘닮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불초자식은 부모를 닮지 못한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효도를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삼은 옛사람들에게 자식의 도리란 육신의 부모의 성품과 학식을 닮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자식으로서 부모를 닮지 못한 것에 대한 송구함과 부모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담아 자신을 불초자식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이러한 마음가짐은 분명 갸륵해 보입니다. 하지만 만약 부모가 자식이 닮지 말아야 할 못난 성품과 모자란 구석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무조건 자식은 부모를 닮지 못한 것을 송구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는 도리어 부모를 닮지 않은 ‘불초(不肖)’가 진정한 효도가 될 것입니다. 도둑을 부모로 둔 자식은 부모를 닮지 않은 불초자식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불초소생이란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우선 부모의 삶이 자식이 닮아서 마땅한 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닮는 것이 자식의 도리가 되려면 먼저 부모가 자식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자식은 부모에게 불초하는 것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김교신 선생은 <성서조선> 1933년 8월호 권두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의 제목은 불초(不肖)입니다. <…우리는 불초하라, 일부러라도 조상을 닮지 말라고 부르짖고자 한다. 특히 생과 사의 중대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조상들의 관념 그대로 본받을 것이 아니다> 김교신 선생은 위엣 글에서 닮지 말아야 할 조상들의 삶의 행태 몇 가지를 손꼽았습니다. 첫째, 자식들을 미성년기에 결혼시키는 일, 둘째, 명당을 찾아 조상 유해를 안장하고 삼년간 복상(服喪)하는 일, 셋째, 일찍이 은퇴하여 자식의 효도를 받는 기생생활이나 하며 일찌감치 자기 묏자리나 알아보는 일. 김교신 선생은 조상들이 대대로 ‘대사(大事)’로 여겨온 이러한 일들은 후손들이 본받지 말고 반드시 내버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주검과 분토를 숭상하는 조상을 본받을 것이 아니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이를 닮을 것이며, 땅엣 것을 닮지 말고 하늘엣 것을 닮아야 하겠고, 효도의 소학(小學)을 넘어서 하나님에 대한 충의의 대학(大學)으로 나가야 하겠다. “나보다 부모처자를 더 중하게 여기는 자는 제자될 수 없느니라”고 선언하신 그리스도는 애초부터 육신의 부모를 닮지 말고 영(靈)의 아버지 하나님을 닮으라고 하셨다. 지금 불초하라고 외친대도 결코 신기한 것은 아니다.>

부모의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자식들이 떠받들고 대물려야 마땅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것 가운데는 자식이 물려받아도 좋은 ‘옥(玉)’같이 보배로운 것도 있지만 ‘돌멩이(石)’같이 내버려야 할 것도 있습니다. 지혜란 옥석(玉石)을 분별하는 안목입니다. 예수는 옥석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7:8~9> 부모가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것이 거듭되다보면 어느새 전통이 됩니다. 일단 전통이 되고나면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 더 이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효율과 합리의 잣대로 재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전통이 이미 권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두 가지 불초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총신대 재학생과 졸업생 27명이 소속 교단(예장합동)에게 한기총 탈퇴를 요구하고 나선 일입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추악한 금권선거로 기독교계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린 한기총의 해체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속한 합동교단더러 즉각 한기총을 탈퇴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또한 교단내 관련인사를 처벌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더구나 교단(예장합동)이 한기총 사태에 대해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신문광고까지 낸 상황에서 교단 신학교의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공개적으로 교단의 의사에 정반대되는 요구를 한 것은 간단히 볼 일은 아닙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부모세대의 추악하고 파렴치한 모습을 닮지 않겠다는 ‘불초’의 선언입니다. 이들은 합동교단이 본연의 개혁주의적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다른 불초사건은 정치계에서 일어났습니다. 여당의 소장파의원 한 사람이 며칠 전 트위터에 올린 글이 여당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정치하면서 웃겼던 일은 3류에다, 60년대식에다,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실력자라고 언론의 주목을 받고 정치적 분석을 받고 하는 것이죠. 한마디로 얘깃거리가 안 되는 자가 이런 대접 받고 있는 것도 우리 정치의 현주소겠죠. 넘 유치해요, 우리 언론이.” 누가 보더라도 여당내 힘 있는 실력자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 글의 파문이 체 가라앉기도 전에 막강한 주류 실세들의 지원을 받는 후보 대신 젊은 소장파그룹이 지지한 비주류 후보가 여당의 원내사령탑으로 당선되는 파란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4.27 재보선 패배에 따른 여당의 위기의식 때문이겠지만 또 한편으론 구태의연한 기존정치행태를 답습하는 한 자신들에게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소장그룹의 불초정신이 낳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실력자가 주무르는 권력의 떡고물이나 얻어먹으려고 거수기 노릇하는 고분고분한 자식노릇도 이제는 못하겠다는 항변 아니겠습니까?

신앙의 세계이든 정치의 세계이든 신세대는 부모세대의 미숙과 결함을 닮지 않고 내버리려는 불초정신이 필요합니다. 구세대에 대한 불초정신이 역사에 진보를 가져오고 보다 밝은 미래를 엽니다. 종교든 정치든 낡고 유치한 과거의 가치와 이념, 행태에 대한 불초자식이 되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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