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사회교리’도 온전한 ‘교리’로 가르쳐야 한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새로운 사태> 반포 120주년 기념 세미나

레오 13세 교황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120주년을 맞이해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지난 5월 11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새로운 사태에 비추어 본 한국교회와 사회'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는 200여 명의 청중이 참석해 '사회교리'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특히 교회 내 노동 문제에 관심을 모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새로운 사태>, 노동자 현실에 관심을 표명한 최초의 교회문헌

주제발표를 맡은 박동호 신부는 <새로운 사태>가 사회교리를 형성한 첫 회칙으로, 당대 사회 이슈 중 하나였던 노동자 현실에 관한 교회 내의 다양한 논의를 수렴하고 시대의 중요한 문제에 간여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며 사명이라는 자각의 길을 열었으며, 시대의 문제에 교회가 대응하는 전통을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새로운 사태>는 산업혁명 이후 정치적으로 사회주의가 부상하고, 교회 안에서는 교황권이 약화되고 사회의 분위기가 가톨릭교회에 비우호적이라는 상황에서 나왔음을 지적하며, 이 회칙이 사회 안에서 교회의 역할을 다시 환기시켰다고 전했다.

이 회칙은 일련의 ‘새로운 사태’ 앞에서 노동의 본성과 노동을 둘러 싼 관계의 변화에 주목하고, 노동의 목적과 재화의 소유, 교회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며 노동과 노동자의 존엄성에 관심을 기울여, 가난한 이들의 존중, 그리스도교적 생활과 제도 회복, 분배 정의 실현, 공권력의 올바른 사용, 어린이와 여성 노동의 제한 등을 제안했다.
 

▲서울대교구 정평위원회 위원장 박동호 신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편, 박 신부는 <새로운 사태>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그 한계 역시 짚어냈다. <새로운 사태>는 노동계급이 교회에서 멀어지는 이유를 사회주의운동에서 찾았으며, 소유권을 신성 불가침의 자연권으로 보았기 때문에 부자들의 선의에 의존해야 했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고 등장한 사회주의 이념을 사회주의 국가와 구별해서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즉, 노동자들을 여전히 시혜의 대상으로 볼 뿐, 노동자 자신을 변화의 주체로 상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 신부는 "교회(종교)는 세상 일에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혹은 세상 일을 알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왜곡한 인식을 지적하며 "이같은 태도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을 애써 외면하거나 아니면 부정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또  "교회는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넘어 하느님을 향한 구원 여정의 도구"이며, "세상 안의 그리스도의 성사"라며, 공의회 정신에 따라 1992년에 교회가 내어놓은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제 3편 '그리스도인의 삶'에 담긴 사회교리적 내용을 강조했다. 

이어서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사회교리’가 보편화되지 못하고 "특정 관심을 갖는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선택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를 지적하며 '가톨릭 사회교리'가 온전히 '가톨릭 교리'가 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교회의 노동자 편들기와 사회적 관심, '시장의 종교'를 물리치는 힘이 돼

이어진 토론에서 강인철 교수(한신대 종교문화학과)는 한국교회안에서 <새로운 사태>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념적으로 읽혀온 역사를 언급하면서, “<새로운 사태> 반포 후 교회는 공산주의/사회주의 비판에 집중해 왔으나, 소련이 해체되고 <새로운 사태>가 반포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와 한국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사태’는 자본주의 비판에 더 집중해서 회칙을 읽도록 한다”고 요구했다.

▲강인철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새로운 사태>를 자본주의 비판에 적용한다면, "신자유주의의 종교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종교인마저 물신주의나 '시장의 종교화'에 감염되는 사태를 경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현재의 시장자본주의는 세속적 경제체제이기보다 차라리 '종교'이며, 경제학은 과학을 가장한 '신학'이며, 시장은 이 종교의 '신(God)'이다. 자본주의의 '이단'인 공산주의의 붕괴는 '시장의 종교'가 최초로 진정한 '세계종교'임을 더 명백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새로운 사태>가 정말로 위대하고 놀랍다는 것은 "최고의 목자가 비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고통과 탄식과 갈망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최우선적으로 그들의 권리 추구와 회복에 헌신했다"는 사실이며, "교황이 노동의 존엄함을 깨우쳐 노동자들을 창조사업의 조력자로 드높였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인철 교수는 이러한 교회의 (노동자들에 대한) 편들기가 20세기를 '제국주의와 전쟁의 잔혹한 세기'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권 신장과 민주주의 확산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하며,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발언이 '시장의 종교'라는 괴물과 악전고투하는 이들에게 정말로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새로운 사태>, 가톨릭 사회운동에 용기와 신념 제공
사회교리 등한시하는 한국교회,  '어머니와 교사' 다시 할 수 있어야

박문수 부원장(한국 가톨릭문화연구원)은 <새로운 사태>가 불의한 사회 구조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종교적 지지를 제공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한계점을 지적하고 회칙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내부적으로 가톨릭 사회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자본과 노동사이의 관점을 재정립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문수 한국 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다만 한국교회가 과연 이 사회교리를 신자들에게 제대로 보급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궁극적으로 훌륭한 신자이면서, 훌륭한 시민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신자들에게 사회교리는 전체 교리의 1/3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내용인데도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신자들을 교회 안에만 묶어 두는 사목 방식을 탈피하고 사회안에서 건전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리와 사목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원장은 ‘믿을 교리’중심의 교리 내용과 교회의 가르침에 변화를 줄 것을 제안하면서, “<새로운 사태>가 세상 안에서 교회가 어떻게 육화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 가르침을 실현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사회안에서 ‘어머니와 교사’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는다. 참다운 기념과 경축은 이러한 과제와 역할을 확인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마무리 지었다.


교회가 권력과 자본에서 자유롭게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교회 기관에서도 노동조합을 인정해야.. 

이어진 각 분야별 라운드 테이블 토론에서는 보다 구체적 각론이 이어졌다. 먼저 권오광 전 회장(가톨릭노동사목 전국협의회)은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양극화 문제를 중심으로 교회가 이에 대응하는 방법에 주목했다.

권 전회장은 고용불안과 중간 착취, 저임금 장시간 노동, 노동 기본권 박탈, 차별과 인권침해 등 여전히 노동현실은 열악하고 오히려 1997년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하면서, “그러나 한국 교회는 국내노동자의 문제는 점차 관심을 줄이고 이주노동자의 문제만 강조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교회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교회 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성찰하고 노동에 대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고 제시하면서, “교회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거룩한 전망을 열어가는 주체로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학대받는 노동자들에게 연대감을 느끼며, 노동세계의 인간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노동운동 발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기를 갈망한다”고 호소했다.

김선실 전 대표(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는 교회 안에서 여성 노동의 현실을 지적하며, "교회기관에서 일하는 평신도 여성들은 대부분 성직자의 추천으로 고용되며, 주로 하위직급에서 일하고, 승진의 기회 역시 남성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상"을 비판했다. 또한 임통일 변호사는 한국사회를 진단하면서, “교회는 곳곳에 산재하는 사회문제를 선포하고 사회의 죄를 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상봉 국장(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은 “현재 한국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경향잡지>, <가톨릭신문>, <평화방송/신문>은 세상과 소통하기를 그친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사회교리의 백지상태가 그대로 교회언론의 태도에서 발견된다”라고 일갈했다.

이어서 "교회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없다면, 신자들에게 나침반 없이 세상을 항해하라고 이르는 것과 같다"면서, "사실만 보도하고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의 교회언론의 태도는 ‘언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며 교회언론의 자기 성찰과 내적 비판을 촉구했다.

또한 평화방송을 비롯한 교회의 언론기관뿐 아니라 대부분 교회기관에 노동조합이 없는 현실을 지적하며 "교회 안에서 노동조합의 문제는 기업주인 성직자와 노동자인 평신도가 대등한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소통할 수 있는가를 묻는 '교회 내 민주주의'의 문제"라면서, "교회가 사회교리를 신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그 화살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위험이 크기 때문이 아니냐"고 다그쳤다.

 

▲2부 라운드테이블 토론에서는 언론, 법조, 여성, 노동 등의 분야별 토론이 이어졌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명동성당, 가난한 이들의 어버이 노릇 반납하고 있어

플로어 패널로 참여한 전영철 회장(서울대교구 사회교리학교 총동문회)은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공동선'을 위해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교회는 출판사업, 교육사업, 금융사업, 의료사업, 방송사업을 하고 있다"며 "평화상조, 평화건설회사, 가톨릭건축사사무소까지 추가로 운영하고 있는 교회 현실은 교회마저 돈 벌기 위한 사업 확장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 고통받는 이들의 어버이 노릇을 해서 존경을 받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성지였던 명동성당도 그 역할을 스스로 반납하고 있다"며 "민주화와 정의를 상징하던 명동성당의 옛 모습이 그립다"고 안타까워 했다.

발표와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한결같이 사회교리의 가르침이 특수 교리가 아닌 믿는 이들 모두에게 삶과 신앙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가 교회 내에 또 하나의 ‘새로운 사태’를 이끌어 내고, 나아가 세상에서도 새로운 울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2011년 05월 13일자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기사제휴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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