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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칼럼] 2011년 5월, 청와대 앞길에서 생긴 일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지난 5월 19일,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는 교회사공부반 일행은 우당기념관을 탐방하였습니다. 우당기념관은 애국선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유품과 관련 자료를 전시해놓은 곳입니다. 상동교회 교인이자 상동학원 학감이기도 했던 우당선생은 상동교회 목사였던 전덕기 목사와 이동녕, 양기탁 등과 함께 최초의 항일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를 발족시킨(1906년) 인물입니다. 또한 1907년 6월,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사를 파견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헤이그밀사사건의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우당선생은 경술국치(1910년)를 당하자 여섯 형제의 식구들을 모두 이끌고 만주로 집단 망명해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우당선생이 1911년 만주에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될 때까지 3,500여명의 독립군을 길러낸 항일무장투쟁운동의 본산이었습니다. 우당선생은 1932년 11월, 따렌에서 일경에 검거되어 뤼순감옥으로 이송,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우당선생에게 1962년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하였고, 2000년엔 중국정부가 우당선생이 항일전쟁시기에 중국 민중자위군의 동지로서 희생되었음을 추서하고 중국의 항일열사에게 수여하는 혁명열사증을 추서하였습니다. 교회사공부반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공부하는 가운데 우당기념관을 탐방하게 되었습니다.

가회동 헌법재판소 쪽에서 청와대 앞길을 지나 우당기념관 쪽으로 가려하는데 경찰의 검문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십니까?” “우당기념관엘 갑니다” “우당기념관이 어디 있는 겁니까?” “청와대 바로 옆에 있는데요” 검문하는 경찰이 우당기념관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라 난감해하는 동안 경찰 한 분이 더 다가왔습니다. “우당기념관 간다는데 우당기념관이 어디야? 바로 옆이라는데…” “어디 가신다고요? 우당기념관요? 그거 어디 있는 건데요?” “저쪽 자하문터널 올라가는 길가에 있는데요, 요 앞길만 지나가면 바로 청와대 옆입니다.” 경찰은 봉고 옆구리의 교회이름을 흘끗 본 다음에야 “아! 교회에서 오셨구나…”그러며 보내주었습니다. 차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청와대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그걸 몰라?”

그 순간  제 머릿속에는 이 년 전의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2009년 11월 국회의사당,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국무총리에게 한 의원이 물었습니다. “총리께서는 731부대를 아십니까?” “항일독립군인가요?” “?”  “마루타가 뭔지 아시죠?” “지금 전쟁과 관련한 포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명색이 학자출신의 총리가 생체실험을 자행한 악명 높은 일본 관동군소속의 비밀부대를 항일독립군으로, 마루타를 전쟁포로로 알고 있을 정도니 청와대 앞길을 지키는 경찰관이 길 하나 건너편에 있는 애국선열 우당기념관을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지난 3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서상훈의 후손을 포함한 친일매국노 후손 64명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나라 팔아먹은 대가로 부와 명예를 누린 친일매국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버젓이 조상들이 나라 팔아 얻는 재산을 되찾겠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해방 66년을 맞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대통령은 정부가 제정한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 3년 연속 보란 듯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7일, 법원은 전두환더러 신군부가 꾸민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피해자 두 사람에게 1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그는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재직 시 불법정치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1672억 원을 추징선고 받고도 지금껏 배 째라며 버티고 있습니다. 영화배우 김여진이 트위터에 ‘전두환, 당신은 학살자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자마자 여당의 정책자문위원이라는 사람이 곧바로 ‘미친X’, ‘아가리를 닥치라’는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모든 일은 바로 역사의식의 실종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의 드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배반자에게는 벌을 주어야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다” 드골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조국을 배반하고 나치에 협력한 반역자를 처벌하는 전후청산작업에 나섰습니다. 1945~1946년 2년 동안에만 대략 15만 명을 구속수감하고 5만 명의 공민권을 박탈했으며 공식적으로 사형이 집행된 자만 11,200명, 즉결처분 등 비공식적으로 처형된 자가 10만 명이 넘는 대대적인 반민족행위자처벌 작업을 펼쳤습니다. 프랑스는 1964년 12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전쟁범죄에 관한 시효 제거를 규정한 법률’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벌시효를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프랑스는 지금도 나치에 협력하거나 부역한 민족반역자들을 색출해 처벌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나치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펼쳤던 레지스탕스와 그의 후손들은 국가유공자로 국가의 보훈혜택을 톡톡히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다시 독일에 점령되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조국을 배신하는 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프랑스의 자신감은 이런 철저한 과거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일제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민족반역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했고 애국지사들을 제대로 보훈하지도 못했습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친일매국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제 조상들의 땅을 내놓으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일삼고 있고, 재산과 목숨까지 바쳐가며 독립운동에 나섰던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은 가난과 사회의 무관심 가운데 근근이 연명이나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화폐가치로 800억 가량이나 되는 가문의 전 재산을 다 털어 독립운동에 바친 우당선생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돈이라야 고작해야 일 년에 몇 백만 원뿐입니다. 정부가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한 우당선생 같은 순국선열의 기념관조차 거의 사비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래가지고서야 나라가 위기를 만났을 때 누구더러 목숨과 재산을 바쳐가며 나라를 위해 충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1997년 사법고시에서 국사과목이 폐지된 이래 국가공무원을 뽑는 각종 국가고시에서 국사과목이 차례로 폐지되어 왔습니다. 입시생들의 학업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국사과목을 수능시험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꾸어 놓은 바람에 학교에서는 사실상 더 이상 국사를 가르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꼴이 이 모양이니 일본이나 중국이 우리의 역사를 제멋대로 마구 왜곡한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제 나라 역사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지 못하는 마당에 아무나 제멋대로 분탕질을 해댄들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철학자 산타야나의 말입니다. 지나간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가르쳐야 미래가 있습니다. 2011년 5월, 역사의식 실종의 현장 청와대 앞을 지나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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