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하는 박기호 신부(예수살이공동체 대표). ⓒ김진한 기자 |
미국 예수회 신부 존 카바나의 영향아래 소비문화를 성찰하기 시작했다는 박기호 신부(예수살이공동체 대표)는 "소비문화라는 것이 인간의 소유욕과 이기심 본능적 욕망을 문화라는 현상으로 완벽하게 가공해 놓은 총체라는 생각을 했다"며 "인간을 가장 완벽하게 타락시키고 변화시키는 문화 현상으로서 예수께서 추방했던 ‘악령’의 완벽한 빙의 상태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26일 연세대 신과대학 부설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소장 전현식, 이하 기문연)가 주최한 연속공개강좌 ‘21세기 영성 공동체의 미래-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다’에 강사로 초청된 박 신부는 이 같이 소비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예수살이공동체’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소비문화는 악령의 세계라고 재차 강조한 박 신부는 "강하고 거대한 것을 무너뜨리는 힘은 폭약이 아니라 조용한 미생물이다"라며 "미생물처럼 무력하고 보잘 것 없으면서도 가장 확실한 운동은 생활이다. 그리고 생활의 가장 강력한 힘은 '소유로부터의 자유로운' 각성된 삶을 사는 데서 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로부터 자유로운 삶으로의 실천력을 담보한 시대의 징표를 읽어 낼 것을 주문했다. 박 신부는 크게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부합한 ‘대량생산, 대량소비 그리고 금융’과 기술의 진보에 따른 ‘인간의 퇴화와 변형’ 등에서 시대의 징표를 찾았다.
그에 따르면, 전자에서는 기술 정보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산업구조, 물과 에너지의 고갈, 금융자본의 경제침탈, 침략 전쟁과 저항의 테러리즘, 새로운 질병, 지구 온난화, 지진 등의 거대한 담론의 글로벌 시스템은 지역 자치나 국가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구도로 엮여져 있는 것인데 불행스럽게도 개인들의 모든 고통과 불행의 삶에 원천적 기능으로 연결되어 있다.
후자에서 박 신부는 "인간은 끝없이 진보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착각이다"라며 "기술 문명시대의 인간은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며 퇴보하고 추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사람의 삶을 지배한다"고 했으며 조기생리와 아토피, 알레르기와 비염 등으로 여러 질병들로 인해 육신 자체도 변형되고 있음을 일깨웠다.
▲26일 연세대 신학관 B113호에서 박기호 신부(예수살이공동체)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김진한 기자 |
박 신부는 "이런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산업의 대형화 구조에 있다"며 "시대의 징표에서 발견된 악령이란 바로 대형화다. 산업의 대형화, 문화의 대형화, 생활반경의 확대 그리고 대형화를 가능케 하는 분업화에 내가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배경으로 복음을 묵상하면 그 결과는 ‘현실에 도전하는 성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창조라 할 만한 ‘노아의 방주’로부터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박 신부는 ‘노아의 방주’가 갖는 의미를 고찰했다. 그는 "우리 시대 영성 공동체들은 현대인들에게 선포하는 종말신앙의 사용설명서이다. 노아의 방주는 공동체의 원형이며 하나님을 후회하게 만드는 삶을 청산하고 시대를 치유하는 창조적 삶의 대안이다"라고 역설했다.
끝으로 "시대의 징표로 목격되는 삶들이 모두 신자 일반의 삶인 것인데 소비문화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일과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다"라며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고 신제품을 구매하는 일 자체가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어쩌면 소비시대의 신앙은 재세례적이고 청교도적 삶을 요구하는 것인지 모른다"며 강의를 마쳤다.
한편, 그 동안 벤 토레이 신부(예수원), 최일도 목사(다일공동체), 이종헌 목사(아리랑풀이연구소) 등을 초청해 줄기차게 강연을 진행해 온 기문연의 봄학기 연속공개강좌 일정은 이날 박기호 신부의 ‘소비로부터 자유하는 예수살이’란 제목의 강연을 끝으로 모두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