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이니 만큼 무엇인가 참신하고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하겠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희망차고 밝은 주제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대로 여러 글들과 언론 기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예견했던 대로 밝은 이야기보다는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못내 아쉬웠습니다. 특히 경제와 관련된 새해의 전망은 한마디로 ‘위기’라는 말로 함축해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별 수 없는 피조물인 사람들의 진단과 전망이 항상 들어맞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별로 관심두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경제 예측 기사와 글들이 계속해서 눈에 꽂혔습니다. 전지구적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어떤 기사는 "경제 영역에서는 한 해 동안 뚜렷하고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천수답 농법을 하는 농부들이 가뭄 속에 하늘만 쳐다보고 기다리듯이 그저 재난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기사는 새해에는 “경제전문가들의 비관적 예측이 빗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세계금융대란 이후의 새해 경제 상황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제적 어려움이 강력하게 표현되다 보니 사회적으로 모든 분야가 움츠러들거나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계의 전망대 역시 쾌청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님들이 모인 자리에 가도 경제위기와 직결된 이야기들이 단연 주요 주제입니다. "수입 예산 가운데 100%가 달성되지 못했다"거나 "전년도에 실행했던 사역을 새해에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염려 어린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항상 하늘을 소망하여 살아야 할 영적 공동체지만 땅을 벗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할 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정말 IMF 이후 가히 '경제 쓰나미'라고까지 표현되는 미국발 금융위기 상황은 새해를 살아내야 할 모든 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위축감을 주고 있습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해서 송구합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난은 오히려 사람을 진지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경제위기 상황 속에 2009년 새해를 전망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한 교계 원로 목회자께서는 "이런 시기에 교회가 거품을 빼고, 한국 교회가 가진 고난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기회를 삼자"는 의미있는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가 한국 교회를 향해 매기는 신인도 점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낮은 점수입니다. 전년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한국교회사회적신뢰도' 조사에서 한국 교회는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100점 만점에 18.4점 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점수 결과입니다. 그러나 분통을 터뜨리더라도 객관적 점수 냉정합니다. 18.4점과 더불어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종교별 호감도입니다. 조사 결과를 점수로 환산해 보면 전체 100점 가운데 불교는 31.5점을 얻었고, 그 다음이 가톨릭으로 29.8점, 그리고 개신교가 20.6점을 얻은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런 점수들을 보면서 위기의 시기에 그동안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거품을 빼자"는 제안이 가슴에 크게 와 닿습니다. 이유는 실속 없이 으쓱거리며 호기를 부리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주변에 희망을 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류시화 선생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는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서 소개드린 원로 목회자께서는 "우리 민족에는 고난의 영성이 있고, 한국 교회는 고난 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이야기도 함께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가기 편한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 많습니다. 가기 어려운 오르막길을 진지하게 오르는 사람만이 마침내 봉우리에 서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을 얻는 것을 감안한다면 새해벽두에 주어진 어려운 현실과 과도한 짐들이 오히려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더욱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더 가지게 됩니다. 2009년 아직은 낯선 날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와 지혜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날들로 이어져 우리를 둘러싼 모든 어두움들이 물러가는 그 시간이 속히 오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