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차정식의 신약성서여행 <바로가기 클릭>
한 세월이 있었다
-최승자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나는 배고팠고 슬펐다
어디선가 한 강물이 흘러갔고
(그러나 바다는 넘치지 않았고)
어디선가 한 하늘이 흘러갔고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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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가면서 시인들의 언어는 더 간명해지는가 보다. 니코틴의 찐득한 냄새에 절은 듯한 허스키한 최승자의 시어들도 이제 흘러간 그 '한 세월' 속에 모든 상념들을 압축해둔 채 여백으로 슬렁슬렁 넘어간다.
1,2행과 마지막 두 행의 반복 처리 속에 그 리듬의 간격도 더 이완되어, 앞으로 더욱 그의 여백과 관조의 거리도 길어지리란 예감이 든다.
최근에 낸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의 그 표제처럼 이 작품에서도 시인은 그동안 지난 세월을 통틀어 부드럽지만 한층 더 깊은 슬픔과 고독의 정조를 담담하게 드러낸다.
사막 같은 막막한 생의 여정 가운데, 한 세월 강물이 흘러가듯 살아왔지만, 그는 변함없이 혼자였고, 거기서 자연은 무연하게 그 고독을 방치할 뿐, 결국 배고픔과 슬픔만이 명징하게 시인의 삶 그늘에 머문다.
그 생명의 감각은 그저 사소할 뿐, 사소하여 더 애절할 뿐, 흘러가면서 제 존재의 의미를 이루는 것들은 세월이든, 하늘이든, 그냥 무연하게 거기 그렇게 있(었)을 뿐이다.
아무리 살아도 그 삶의 자취는 슬픔과 결핍뿐이고 시인의 그 감상 속에 '천지는 어질지 않으니 만물을 지푸라기 개처럼 여긴다'는 옛 현자의 냉정한 교훈을 새삼 확인해준다.
지난 억겁의 세월도 그저 '한 세월'로 뚝 끊어 제 존재의 위치를 새기는 어투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순간의 영원 속에 새기려는 초시간적 관조의 자세를 가능케 한다. 그래서 평범한 동작 하나, 새로운 생명이 벙그는 사소한 찰라의 동선 하나까지 영원의 관점에서 현존하는 풍경이 된다.
그는 자신의 배고픔과 슬픔을 질료 삼아 한 점의 구질구질한 티를 내지 않는다. 그러고도 담담한 포즈로 박꽃이 피고지는 순간에 영원을 새길 줄 아는 검질긴 시인이 최승자다. 아, 모질다!
박꽃이 필 때는 박꽃으로 웃고
박꽃이 질 때는 박꽃으로 울고
수많은 바람이 지나도
억겁은 억겁 순간은 순간
수천 세기 묶인 다리는 풀리지 않고
그저 바람이 지날 때면 박꽃
박꽃으로 울거나 웃을 뿐
한 사내가 머리를 쓸어 넘긴다
바람은 그의 등 뒤로 분다.
한 세기를 분다. 수천 세기를 분다.
한 사내가 영원히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다.
---한 사내가 영원히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다
영원 속에 고정된 이 한 사내의 머리 쓸어 넘기는 순간적 동작과 저 박꽃의 개화와 낙화 순간의 희비는 그 틈새로 부는 바람처럼 담담해진다. 내 어지러운 상념도 덩달아 그 일상적 영원 속에 담담하게 가라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