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포스트모더니즘 세례받은 시대, 목회방향은?

[기획] 한국교회여, 미래사회를 대비하라 5

120년 안팎의 짧은 역사 속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뤄낸 한국의 개신교. 당시 초기 선교사들은 복음전도와 함께 한국사회 발전의 동력이 된 교육과 의료, 지역사회 봉사 등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 때문인지 교회는 교회 안 성도들 뿐 아니라 교회 밖 국민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개신교의 고속 성장은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피폐해진 국민들의 마음 속에 미래와 소망을 불어 넣으며 본격화됐다. 상처 받은 영혼들의 가슴을 달래주며 사회 재건 사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 든 교회는 국민들로부터 한층 더 두터운 신뢰를 얻게 되었다. 특히 과거 70,80년대에는 하루에 6개 교회 이상이 새롭게 개척되는 등 교회성장이 가시화 되고 있었다. 이 밖에도 개신교인들은 당시 민주화 투쟁 최전선에 포진해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목소리를 높여 ‘교회성장’과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듯 보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지나친 개교회주의 그리고 지나친 사회참여 등으로 교회 안팎에서 비판을 받던 한국교회는 침체기로 돌아섰고, 2000년대엔 침체기를 넘어 쇠퇴 일로에 접어들게 됐다. 얼마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2명만이 한국 개신교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한국 개신교가 국민들로부터 얼마만큼의 신뢰를 잃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 개신교가 신뢰를 잃은 그 이면엔 무엇이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첫째도 둘째도 사회와의 소통 부재를 꼽았다. 과거 어려운 시기 때마다 사회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한국사회를 선도하며 비전을 제시해 왔던 한국교회는 언제부턴가 사회의 꽁무니를 쫓아다니기 바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미래사회를 대비하라’는 교회의 목표가 재설정된 시점에서 본지는 (사)기독교산업사회연구소(소장 박찬식)와 함께 총 7회에 걸쳐 한국교회호의 방향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제5부
위기와 기회로서의 현대문화와 문화목회

Ⅰ. 문화의 시대

불확정성 시대에 묻다
현재 우리는 21세기에 들어와 있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지나고 있다. 학문들이 서로 연계하고 다양한 방법론들을 창안하여 새로운 현상을 해석하는 길을 수시로 열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열린 상태가 되어 투명한 시대가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현대는 무엇으로 사는가? 현대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현대가 낳은 사회적 변화에 직면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러한 본래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질문 안에 대답이 있다는 명제 때문이다. 즉 현 시대를 형성하여 움직여 가오 있는 요소들을 살펴볼 때 다음 시대의 변화를 예측,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쿤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역설하고,그 후 토플러가 정보지식사회를 언급하여 세계의 변화를 공언한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현대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그 변화는 자신의 정체를 분명하게, 때로는 명확하지 않게 보이므로 현대인들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래서 현대를 불확정성의 시대라고 명명한 것은 타당하게 보인다. 분명한 것은 현대 사회는 그 어떤 수많은 변화인지와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통하여 무단히 변화하고 있는 능동태라는 점이다. 비록 그 정체가 때로는 명확하지 않아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기는 하다. 과연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요소는 무엇이며,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현대의 특징들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요소를 몇 가지만 선택한다면 단연 포스트모더니즘과 디지털 혁명을 들어야 할 것이다. 전자는 산업사회의 근간이 되어왔던 합리주의와 과도한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려는 현대인들을 대변하고 있다면, 후자는 인류에게 새로운 대륙 사이버세계를 열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디지털 유목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접맥시켜 주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현대인의 삶 전반에 걸쳐 개인주의적 인식과 자유분방한 삶의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왔다면, 디지털은 현대인의 내면욕구를 직간접으로 충족시켜주었다. 이제 디지털은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 접속할 수 있다는 디지털만능주의 유비쿼터스에 이르렀다.

현대를 규정하는 용어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는바, 정보시대, 전자시대, 영상시대라는 개념들이 주도적으로 나타났고, 이성주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감성시대, 감각시대, 나아가 영성시대라는 신경향이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들 용어들은 현대를 이해하게 하는 키워드가 되는 셈인데, 이를 통괄적으로 표현하자면 문화의 시대라고 압축할 수 있겠다. 여기서 의미하는 문화는 고전적 의미에서 분류하는 성별, 연령, 빈부 등의 구분이 아닌, 취미, 기호, 스타일 등으로 대표되는 신공동체의 속성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대중문화 시대의 등장
현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변화의 힘, 즉 문화 가운데 간과해서는 안될 요소는 대중문화이다. 대중문화는 현재 매스미디어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그 영향력을 퍼뜨리고 있다.
대중문화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지역 간 삶의 스타일을 교환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각국의 문화를 교환하는 가운데 세계화의 이름으로 고유한 문화를 통합하고 만나게 한다. 반면 저항력이 없는 문화를 거세시키기도 한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문화 간의 격차와 간격이 사라지고 있으나, 부정적인 의미에서 이른바 문화제국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변동 가운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대중문화이다.

대중문화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받아들여지고, 생활 속에서 활용되는 능동적인 삶의 매체이다. 그는 대중을 공통의 기호와 가치관, 의식과 연결시키므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한다. 현대인들은 대중문화로 호흡하고, 옷 입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문화는 이제 생활이자 일상의 음식처럼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는 순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기능적인 면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 하겠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이중적인 기능은 예측 불가능할 정도이다.

Ⅱ. 위기로서의 대중문화

대중문화의 속성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대중문화는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문화권력이 펼치는 현상에 대응하려면 그 속성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대중문화는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혼합된 형태인 경우가 많으며 그 속성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먼저 대중문화는 대중사회로부터 생산되는데 익명성을 그 기반으로 한다. 익명성은 책임 있는 개인이 상실되며,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로서 대중문화는 개인의 책임이 중시되기보다는 집단의 욕망과 욕구가 채워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윤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종종 무책임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대중문화를 통해 고상하고 교육적인 삶의 과정이 고양되기 보다는 대리만족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현대 대중들의 내적 요구는 진지한 사유를 선택하기보다 순간적이며 말초적인 쾌락에 기울게 된다. 상업주의는 이를 악용하여 대중의 욕망을 극대화 하고 결국 대중은 정당한 문화 소비자의 위치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대중문화에서 인기는 곧 경제적 이득과 직결되기에 언제나 이윤이 생기는 쪽으로 투자를 하게 되며 이는 한 사회의 건실한 문화생산자를 유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문화를 빨리 소비시키기 위하여 대량복제도 서슴지 않는 우를 범하게 된다.

대중문화는 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하여 스타와 영웅을 만들어 낸다. 이는 하나의 지배권력으로서 청소년의 경우 아이돌 스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펜클럽을 결성하여 외형에서부터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모방한다. 현대 대중문화에는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을 지배하고 유지하려는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문화는 문화권력을 그 영향력의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기발한 문화컨텐츠를 끊임없이 창출한다.

대중문화의 역기능
대중문화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하므로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같은 기호와 삶의 양식을 나눌 수 있어서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적절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대중문화는 그 특성상 과거 중앙집중식 권력을 구조를 탈피하고, 평등하게 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순기능적인 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폐해가 적지 않기에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대중문화를 생산하는 과정에 기술에 대한 신봉, 즉 기술만능주의가 잠재해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만연된 기계적 사유는 현실에 대하여 사람을 무감각, 무관심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뭐든지 만들 수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날로그는 구시대의 것이며 디지털이 환상적 미래를 도래하게 할 기술이라는 과학맹신주의를 심어준다.

두 번째로 대중문화를 통해 이기주의가 극대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여기서 정보를 소유한 사람이 보다 많은 이익을 거두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통용된다. 정보만능주의이다. 대중문화는 정보를 공유하려는 속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소외지역이 생기고, 정보의 집중화를 통해서 오히려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새로운 권력구조가 발생하고 있다.

세 번째로 대중문화의 상업적 이윤추구이다. 이는 거대 상업자본이 모여 창조성이나 독창성과는 관계없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가상의 기호와 욕망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대중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 예를 들면 오락성, 폭력성, 선정성 등이 여과 없이 분출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네 번째는 대중문화가 대중의 의식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건전한 의식보다는 편리하고 충동적 욕망이, 비판적인 사유보다는 단편적이며 즉흥적인 생각이 유행하게 되어 시민의 비판의식과 참여가 점점 희박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다섯 번째, 대중문화는 그렇게 하므로 유형, 무형의 가치를 모두 소비상품으로 왜곡시킬 수 있다. 대중은 어느덧 고유하고 독특한 가치를 상실하게 되며 비인간화의 비극을 맞게 될 것이다. 마르쿠제가 간파한 현대 사회의 일차원적 인간이 양산되게 된다.

교계에 미치는 영향
위에서 관찰한 대중문화는 기독교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열린 사회를 추구하는 성향 때문에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세계관을 받아들일 것을 역설한다. 현대 사회는 급속한 세속호의 물결 속에 있어서 한 종교의 고유한 신앙과 교리를 화해와 상생이라는 기치 아래 양보하거나 상대화할 것을 은연중에 강요한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계시와 섭리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러한 성격은 용납하기 힘들다.

교회론적으로 보자면 현대 문화는 교회의 고유성을 인정하기보다 다른 종교와 상생하고 대화하도록 권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교회가 진리를 사수하려는 지상교회의 전투적 성격을 드러내지 말라고 강조한다. 대중문화는 이를 관용의 이름으로 수용하라는 것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우선 이들은 거룩과 세속의 도시적인 이분법을 극복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음을 직감한다. 따라서 신앙인으로서 성경적 신앙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 얼마나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지 절감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현대 사회 안에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여러 색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심지어 종교적 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가 문화의 이름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리프킨은 현대를 접속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자기 소유를 만들기 보다는 접속하여 생존하는 방식이다. 집이나 자동차 등을 소유하기보다 일정기간 리스해서 사용한다는 개념이다. 이런 생각이 종교에도 적용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즉 어느 한 종교를 평생 믿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호와 분위기, 상황에 따라 어느 한 종교를 선택하여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를 접속의 한 결과로 수용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영성이 활개치고 있다. 역설적으로 현대는 그만큼 비종교적인 시대이다.

Ⅲ. 기회로서의 대중문화

비인간화 시대의 구원 기호
위에서 언급한 대중문화의 역기능을 관통하는 포괄적인 진단은 비인간화라 하겠다. 기독교계는 인간의 가치를 파괴하는 문화행위를 방관할 수 없다. 문화의 비인간적 상황을 테일러는 이렇게 지적한다. “문화는 구원을 기다리는 기호로 가득 차 있다” 대중문화 속에서 허덕이는 현대인들을 볼 때 그들의 삶의 궤적은 진정한 구원을 기다리며 절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구원에 관해 목말라 하고 있는가 하는 현장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대중문화를 활용한다면 전도와 선교의 방법을 재발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문화가 복음의 접촉점으로 활약할 수 있게 해야 하는 비전이 필요하다.

대중문화는 버려진 땅이 아니라 회복해야 할 땅이다. 대중문화는 영적 싸움의 현장이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복음으로 정화시키고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어떠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가. 대중문화의 흐름에 최선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맥그래스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맥그래스는 현대 문화에 적응해 가는 기독교를 두고 사회학자들이 거론한 “맥도날드화된 기독교”라는 용어를 인용하고 있다. 대중문화가 다시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고, 하나님 백성의 선한 삶의 현장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기독교계의 대안
현대 문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총체적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문화의 각 분야가 다양하고 이에 따라 대안도 세분화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총론적이며 시급한 몇 가지 대안을 함께 고려해 보고자 한다.

1. 신학적 대안
첫째, 교회와 세상, 거룩과 세속을 지엽적으로 구별하는 이분법을 극복해야 한다. 거룩하신 주 예수께서 죄와 세속의 현장으로 오신 성육신은 신앙인들이 취해야 할 행동을 암시한다. 세상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기에 그들도 다 주의 나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이원론적 분리를 극복하고 세상 문화를 개혁하는 문화변혁자의 자세를 갖추는 문화신학이 생활되어야 한다.
둘째, 신학함의 방법과 과정이 성경적이며 실천적이어야 한다. 그동안 신학은 학문성, 아카데미로서의 신학을 강조하다가 사변신학, 상아탑 신학으로 스스로 성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 결과 현대신학은 크리스천으로부터, 교회로부터 격리되어갔다. 신앙인들이 읽고 이해하기에 힘든 학문을 위한 신학, 배워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신학,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신학, 심지어 무신론적 변론을 일삼는 지적사치의 신학으로까지 변질되어갔다. 무신론적 기독교, 기독교 안의 무신론이라는 용어는 그런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현대 신학은 반성과 회개를 통하여 성경적 계시로 회귀해야 한다.

2. 교육적 대안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은 도구화 되어갔다. 계몽주의가 환호한 이성이 합리주의를 추구하다 끝내 이성의 도구화라는 비참한 현실에 도달하게 되었듯, 인간은 고도의 현대 문명사회에서 스스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현대 문화 속에서 인간은 끝없는 목적과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성경적 인간론이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인간은 문화의 소비자만이 아니라 문화의 생산자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죄는 인간에게 치명적 손상을 끼치고 있지만, 예수의 은혜로 극복할 수 있다는 복음이 문화 안에도 뿌리내려야 한다. 나아가 인간은 문화의 주체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는 소명을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3. 교회적 대안
대중문화 시대에 가장 적극적이며 실천적인 대안은 교회론에서 발견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지상에 세우신 복음의 전진기지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주님의 백성들이 모인 예배의 공동체이다. 교회의 직능은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우선해야 그러나 교회는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는 또 다른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 교회의 모습을 다른 직능으로 표현하자면 교육공동체, 선교공동체, 봉사공동체 등으로 명명한다. 그렇다면 문화의 시대에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한 가지 더 부연하자면 교회는 생활의 공동체, 문화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현대 문화의 변화에 따른 교회의 모습을 여러 학자들은 각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와그너는 앞으로의 시대에 교회는 신사도적 개혁에 기반을 둔 신사도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스윗은 미래교회는 파도를 타고 먼 바다를 항해하듯 하는 아쿠아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예견하면서 ‘세상을 호흡하며 춤추는 영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미래교회를 위한 준비로서 영성과 감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문화의 시대에 문화공동체로서 교회가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시급한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교회는 교인들이 현대 문화를 인식하고, 문화를 창조, 생활화 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의 각 부서, 예를 들면 주일학교, 청년부, 장년부 등은 각 부서에 맞는 문화교육을 시도해야 한다, 현대 문화가 어떻게 생산되고, 미디어로 전달되며 그 영향은 어떤지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교육과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문화현상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관찰하고 성경과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분별할 수 있는 과정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교인들은 쉐퍼의 주장처럼 문화변증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며, 기독교 문화 확산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최상의 변증법은 기독교인의 진솔한 삶 그 자체이다.

둘째, 창조적 문화생산에 참여하며 즐 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기독교는 본래 문화의 종교였다. 음악, 미술, 건축, 문학, 철학 등 문화예술사에서 기독교의 공헌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런데 대중문화에 와서 기독교문화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라는 호이정아의 논리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적용된다, 거룩한 노일로서의 기독교문화 생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일상생활의 신학’을 통하여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예배요 경건한 놀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한다면 문화와 삶을 격리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셋째, 문화목회를 준비해야 한다. 문화목회란 목회에 문화를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결코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문화목회가 추구하는 목회적 실례는 이미 사도행전 2장 42절∼47절에 기록된 초대교회 모습에 나타나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44절),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45절) 한 행동은 초대교회 안에 물질적인 소통뿐 아니라, 문화적인 소통이 함께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앙인들의 삶에서 보여준 문화적인 소통이란 삶의 표현, 내적 욕구, 가치관 등이 함께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문화목회의 원형적 모델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가 쌍방향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교회와 교인들은 사회와 비 기독교인들에 대한 일방향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목회는 복음전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허락하신 도구가 될 수 있다. 한국 교계는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어갈 문화의 시대에 문화목회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여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아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시는 은혜’를 입어야 할 것이다.

또 지역 교회의 상황과 실정에 맞는 분야를 선정, 특성화하여 목회에 적용한다면 변화하는 미래 시대에 지역민들과 호흡하며, 그들을 섬기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궁극적으로 문화목회는 사회 변화에 대하여 어떻게 교회가 하나님 나라와 복음전파를 위하여 문화를 활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할 것을 요청한다.

 

* 추태화 교수
단국대학교 국문과(B.A.)
독일 뮌헨대 기독교문예학 석사(Th.M.)
독일 아우그스부르크대 기독교 문예학 박사(Th.D.)
안양대학교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사)기독교산업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북가좌동 충신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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