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
성서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네가 포도원을 심고 가꿀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신28:38~39> 농부가 아무리 들에 종자를 뿌리고 포도원에 포도를 심고 열심히 가꾸어도 메뚜기가 먹고 벌레가 먹어버리므로 거둘 것도 마실 것도 없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허무와 수고의 헛됨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농부가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아무리 작물에 물과 거름, 좋은 비료를 주며 많은 수고를 해도 열매를 갉아먹는 벌레를 잡지 못하면 결국엔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되고 맙니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서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앙도 매 한가지입니다. 열매를 맺는 좋은 신앙인이 되려면 벌레를 잡아야 합니다. 안으로부터 벌레가 열매를 갉아먹고 속이 해충으로 썩어 가는데 밖으로부터 제 아무리 생명수를 붓고 좋은 거름을 준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 벌레 좋은 일 할 뿐입니다. 아이들 뱃속에 회충이 우글거리던 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옛 시절, 아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몸은 깡마르기 일쑤였습니다. 뱃속에 사람이 먹은 것의 영양분을 모조리 갉아먹는 벌레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그토록 성경말씀을 많이 듣고, 입만 열면 성령타령을 해도 정작 성령의 열매는 찾아볼 길 없이 영적으로 깡마른 말라깽이 신앙인으로 사는 이유는 자신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벌레를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밖으로부터 주어진 영적인 자양분을 안에서 모조리 다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갉아먹는 벌레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바로 ‘나’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암세포가 치명적인 이유는 그것이 외부에서 침입한 것이 아니라 본래 ‘나’를 이루고 있는 체세포가 변이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이루고 있던 세포가 돌변하여 나의 생명을 갉아먹는데도 그것이 ‘나’였기 때문에 치명적이 될 때까지 미처 알아채지 못합니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자신 안에 굳건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나’라는 벌레를 미처 알지 못하고 또 잡지 못해서 열매 없는 영적인 기근에 빠져 살아갑니다.
메이지시대 덕망 높은 선사였던 난인선사에게 하루는 학식이 높은 어떤 대학교수가 선(禪)을 배우겠다고 찾아 왔습니다. 교수를 맞이한 선사는 우선 교수에게 차를 한 잔 대접했습니다. 선사가 찻잔에 차를 따랐습니다. 차가 잔에 차서 흘러넘치려고 하는데도 선사는 계속 차를 따랐습니다. 마침내 잔에서 차가 흘러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교수가 입을 열었습니다. “차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따르시지요.” 그러자 선사가 교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꼭 이 잔을 닮았구려. 당신은 이미 당신의 생각과 견해로 속이 가득 차 있소. 그러니 그 속을 비우기 전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어디에 먹혀들 틈이 있겠소?” 선사는 교수에게 선의 지혜를 알려들기 전에 먼저 자신 안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자신의 견해와 생각부터 비울 것을 차를 넘치도록 따르는 행위를 통해서 가르쳤던 것입니다.
김교신 선생은 일찍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모든 교회 법규를 다 지키고 외양의 행동을 선하게 하여도 ‘나’를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이상 신앙은 아니다. 내 영혼이 구원 얻기 위해, 내 인격이 높아지기 위해, 내가 영생하기 위해, 내 가족, 내 민족이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아무리 열심이 있고 경건이 있어도 신앙이 아니다. 그는 내 재산, 내 세력을 모으려는 것보다 정도는 높을는지 몰라도 ‘나’표준, ‘인간’중심인데서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것처럼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이 없다. 죄란 살인강도를 가리킴이 아니요,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람이 ‘자기’중심이 되는 것이다> 1935년 12월 성서조선 권두언에 실린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글의 한 대목입니다.
모든 것을 ‘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행동하는 데 모든 고통과 죄의 원인이 있습니다. 내 안의 벌레가 나를 갉아먹는 것을 모르고 깡마른 체 살아갑니다. 신앙인이 생명의 활기가 넘치고 풍성하게 열매 맺는 삶을 살려면 내 안의 ‘나’라는 벌레부터 잡아야 합니다. 영적인 벼멸구는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신앙의 열매를 놓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