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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질병에 걸린 한국교회의 병명을 ‘공적 영성의 상실’로 진단했으며, 병의 증상으로는 한국교회 내 고질적인 병폐로 알려진 ▲기복주의 ▲가족주의: 정과 연의 문화 ▲개교회주의 ▲이분법적인 사고: 교회와 사회의 분리 ▲이성 경시 현상 ▲단순논리주의 등을 들었다.
이 교수는 공적 영성 결여가 초래하는 부작용으로 한국교회 내 자주 회자되고 있는 기복주의 신앙을 꼽았다. 그는 "기복주의의 문제점은 인간의 구복(求福)적 행위가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를 채우는 것을 뛰어넘어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는 이기적인 것으로 발전하는 것이며, 이때 종교는 그 욕심을 용납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정당화시켜주기까지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덧붙여, 기복주의 신앙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공리주의 의식의 문제점도 폭로했다.
이 교수는 "세속적인 성공과 부의 크기를 신앙의 크기와 동일시함으로써 경제 활동의 과정이나 부의 축적 수단과 방법의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즉 비윤리적인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처럼 간주하는 경향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기복 신앙이 믿는자들로 하여금 도덕의 가치를 상실케 만들고, 그 대신 부와 명예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게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었다.
한국교회에 기복 신앙이 횡행하고 있는 원인도 분석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 내 기복주의를 △한국의 전통적 무교의 숨은 영향 △미국 교회에서 들어온 소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 △교회 성장주의, 번영의 복음의 영향 등이 짝을 이뤄 강단의 중심에 자리잡은 것이라 평가했다.
이어 기복 신앙이 천민자본주의와 만날 때 필연적으로 출현하는 천박한 신앙에 대한 우려도 곁들였다. 이 교수는 "오늘날 기복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무섭게 확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동승해 물질숭배(맘모니즘)의 모습으로 교회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며 '심지어 상당수 교회들이 현재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미국의 메가처치들의 여러 방법론도 이런 자본주의적 경영철학의 영향하에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신학적 점검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 전통적 무속 종교와 결합되어 새로운 기복 상품으로 끝날 위험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공적 영성 상실이 가져오는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한국교회 내 성속 분리 신앙을 살펴봤다. 개신교인들의 윤리적 미성숙을 부채질 하고 있는 성속 분리 신앙을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한 이 교수는 "이분법적 사고란 교회와 세상, 현세와 내세, 신앙의 영역과 비신앙의 영역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이라며 "한국교회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강화시킨 결정적 사건은 일제강점의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개신교인들이 겪은 갖은 수난과 핍박의 경험들은 교회로 하여금 비역사적·내세주의적 신앙관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고난과 슬픔만 가득한 이 세상은 믿는 이들에게는 부정되어야 할 대상에 불과했던 것.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란 서둘러 천국행 열차를 타는 일이었다.
▲『한국교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산다』 저자 이학준 교수. ⓒ김진한 기자 |
이 교수는 "이런 성속이원론, 종말지향적 세계관으로 인해 개인 경건주의, 개교회주의의 신앙 양태들이 강화되고 확산되었다"며 "여전히 상당수 교회에서 교인들이 자기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고 있고, 오직 교회만이 성도들의 전 우주적 활동 무대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성속 분리 신앙에 젖어 있는 신앙인들은 어느새 세상을 교회 안팎으로 나누고, 교회 안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곳으로 교회 밖은 속되고 부정한 곳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갇히고 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 하에 사회와의 소통이란 불가능한 얘기였다.
이 교수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큰 이유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와 깊은 관련이 있다"며 "이분법적 사고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지난 한 세기 동안 교회 안의 세계에만 길들게 했다. 그 결과 급격히 변해가는 교회 밖의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잘 모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특히 기복주의 신앙과 이분법적 사고라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 양태를 보이고 있는 신앙인들의 삶으로부터 근원적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기복주의와 개교회주의 그리고 이분법적 사고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존재들로 비치게 만들었다"며 "왜냐하면 기복주의를 통해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는 것과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교회와 사회를 구별짓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공적 영성의 결여로 나타난 다양한 증상들을 살펴본 이 교수는 이어 한국교회가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공적 영성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교회가 개인 욕구의 해결에만 초점을 맞출 때 점점 그 내적 생명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잃게 된다"며 "인간에게는 무조건적인 용서와 용납에 대한 갈망이 있는 동시에 더 크고 고상한 의미와 가치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성이다"라고 역설했다. 개인을 강조하는 이기적 영성에 머무르지 말고, 사회 그리고 (삼위일체론적)관계에 역점을 두는 삼위일체론적 영성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신체적·표면적 욕구의 차원을 넘어 이런 가치적 축복과 영적인 축복에 눈을 뜰 필요가 있다"며 "이 축복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축복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부와 권력과 학문과 성공의 여러 축복은 기복적인 것이 되지 않고 성서의 영적인 축복으로 전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기적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의 전환을 강조한 그는 무엇보다 친밀성과 공공성의 조화를 언급했다. 이 교수는 "기독교가 말하는 성숙한 신앙은 친밀성과 공공성의 요소를 공유하고 조화시키고 있다고 본다"며 "이는 값싼 은혜에 기초한 무규범주의도, 또 도덕 규범을 궁극적 가치인 양 여기는 율법주의도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타 종교들처럼 자기 의나 노력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과의 교제를 바탕으로 한다"고 전했다.
또 공적 영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성서와 무관한 외부로부터의 이질적 사상과 철학의 강요가 아님을 분명히 한 이 교수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바탕을 둔 것"이라며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과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인식이 함께 만나는 성도의 부름의 현장은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의 두 가지 대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그리스도인 각자의 정체성 안에서 부르심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신앙경험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금권선거 사태, 성직자의 도덕성 위기, 교회의 세습 문제 등 오늘날 한국교회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공적 영성의 결여로 나타난 현상"이라며 "한국교회가 천민자본주의와 결합해 기복주의 신앙, 개교회주의, 이분법적 사고를 도출해 내는 종래의 사고로부터 벗어나 공적 영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교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산다』 저자 뉴브런스윅신학교 이학준 교수는 올 가을부터는 풀러신학교 신학 및 윤리학 정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