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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피는편지]체육복 값 들고 튄 그 때 그놈이 돌아오다

들꽃청소년세상 석류가정 정기영 생활교사

▲들꽃청소년세상 석류가정 정기영 생활교사. ⓒ베리타스 DB 
작년 요맘때 18살 남자 아이가 석류가정에 입소하였습니다. 낯익은...아주 친숙한 얼굴...그 때 그 놈 이었습니다! 석류가정에서 6개월 살다가 체육복을 사야 한다며 체육복 값과 용돈을 들고 그 다음날 튀어버린 녀석이었습니다. 그때 그 황당함과 괘씸함, 그 돈 가지고 얼마나 버틸까? 하는 걱정, 그렇게 살다가 가버린 안타까움 등등 생활교사로 하여금 여러 생각과 감정에 뒤섞이게 한 그 아이.

그 놈은 그때 석류가정에서도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같이 사는 한 살 위 형의 싸다구를 때리기도 하고, 집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사고뭉치. 가출 이후에도 이따금씩 경찰서에서 보호자로 와달라며 연락도 왔었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날은 숯불고기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멋있게 빼입고 찾아와서 선생에게 짜장면을 사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새엄마에게 욕했으니 다신 집에 오지 말라며 아빠한테서 내쫓기기도 했고, 시설을 여기저기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번번이 적응 못하고 교사들과 싸우기도 부지기수, 이제 서울에 있는 시설들 사이에서 그 놈은 골치 아픈 애물덩어리가 되어 그 아이를 받아줄 시설이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한때 살았던 석류가정이 제 속에 편했는지, 아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것인지 어느 날 전화로 “선생님! 저 석류가정에 다시 받아주면 안돼요?” “학교 다니고 싶어요. 친구들처럼 교복 입고 아침에 등교하고 싶어요.” “이제는 가출 정말 안 할께요. 말도 잘 듣고요. 말썽 안 부릴께요. 정말요~~ 이젠 안정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놈의 바람은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이었습다. 그렇지만 한 번 나간 놈을 다시 받는다는 게 생활교사로서도 쉽진 않았습니다. 잘 살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습니다. 2년여 동안 울타리 밖에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그의 끈질긴 구애로 결국 한 번 더 기회를 주었고, 그렇게 그 아이는 다시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2의 나이가 되어 들어 온 그 놈은 예전의 그 놈이 아니었습니다. 그간 밖에서 방황하는 시간들이 헛된 것만은 아닌 게 분명한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몸으로 부딪히며 체험한 산 경험이 철들게 해서인지 원없이 놀아본 그 끝에 무엇만이 자신에게 남겨졌는지도 알게 되었고,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깨어진 가정으로 인해 한때는 방황도 많이 했고 혹독한 사춘기를 겪었지만 이젠 고등학생이 되어 안정을 되찾고 과거의 삶에 연연해하기보다 미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꿈도 명확히 정했습니다.

지금은 학교를 마치고 먼저 실용음악학원으로 달려갑니다. 가수가 꿈인 그 놈은 모 재단으로부터 꿈 장학금을 지원 받아 매일 보컬 레슨과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수에게는 목이 생명이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끊기 어렵다던 담배도 스스로 끊었습니다. 꿈이, 목표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요리학원으로 달려갑니다. 얼마 전 필기시험도 합격하고 지금은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수의 꿈에 대한 차선책으로 제2의 꿈도 야물딱지게 설정한 것입니다. 저녁을 밤 10시가 되어서야 먹습니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지금 행복하다고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서 말입니다. 지금은 석류가정에서 제일 바쁘게 제일 열심히, 제일 열정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졌습니다. 프로그램 참여 신청건을 소개하면 무조건 하겠다고 욕심을 냅니다.

그래서 제주 올레길도 다녀왔고, 네팔도 가게 될 판입니다. 그의 삶이 다채로워지고 풍성해져 갑니다. 한글을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워 책 한 권 다 읽어본 적 없다던 그는 독서프로그램을 통해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고 삶을 나눌 줄도 압니다. 생활교사도 몰랐습니다. 그때 그 놈이 이렇게 변할 줄은요.

교사에게 있어 이제 그 놈은 자랑거리가 되고, 소중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교사도 깨닫는 게 많습니다. 아이들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계기가 있고, 저마다의 시간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담배도 끊으라고 끊으라고 잔소리하고 훈계해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흥(興)이 무엇인지? 신명나게 춤추고 놀 수 있게 하는 판(板)은 어디인지? 등을 찾도록 끊임없이 보여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요즘엔 제가 더 신나서 그 놈 이야기를 제 이야기인마냥 신이 나서 합니다. 이럴 때 교사할 맛이 납니다. 즐겁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집니다. 앞으로도 그때 그 놈이 두명, 세명, 네명씩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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