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신림동에서 중고생 7명 맡아 기르는 젊은 부부, 그들의 행복론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인들 1탄]

"서울 강남구 고가 아파트촌에서 은밀하게 이뤄져 온 초고액 과외방이 교육 당국에 적발됐다…이들은 역삼동 모 빌라에 과외방을 차려놓고 미국에서 공부하다 잠시 귀국한 학생 27명에게 1인당 400~500만원씩 받고 교습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2010. 9. 13 연합뉴스)
"신림동, 방배동은 보증금 35만원에 월 30만원의 저렴한 가격에 원룸을 구할 수 있고 화곡동 일대 모텔은 쉽게 투숙할 수 있어 가출 청소년들의 생활 근거지로 자리매김했다" (2010. 2. 24 서울신문)

▲기독교 청소년 사역단체 (사)들꽃피는세상에 소속돼 서울 신림동에서 대안가정을 운영하고 있는 정동철·정기영 부부와 자녀들. 이들 부부는 가정이 불안정한 남자 중·고등학생 7명과 같은 집에 살며 그들의 부모 역할을 대신 하고 있다. ⓒ이지수 기자

2호선 강남역에서 신림역까지는 고작 8 정거장인데 두 지역에서 들려오는 청소년들의 소식은 두 개의 다른 나라에서 들려오는 소식만 같다. 서울의 잘 나가는 부촌에서는 부유한 부모를 등에 업은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출세를 향해 질주하는 중이다.

그런데 한편의 청소년들은 오늘 하루도 살아가기가 벅차다. "14살 남자입니다.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절 때리고 엄마는 4년 전에 나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술 먹고 때리고 해가지고 나가셨습니다. 하도 못 참을 때 경찰에 신고하려는 마음도 가졌지만 아버지라 그럴수 없었습니다. 입소 가능한가요?"(신림청소년쉼터에 작년 8월 올라온 상담글) 이른바 '문제아'들이 '문제아'가 되는 배경에는 가정의 해체가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12동 594-17번지 들꽃청소년연구소 2층에는 (사)들꽃청소년세상이 운영하는 그룹홈(대안가정) '석류가정'이 있다. 이곳  정기영씨(37)는 남편 정동철씨(37)와 함께, 가정이 불안정해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남자 중고생 7명과 같이 살며 그들을 돌보고 있다.

정기영씨는 안양대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9년 전 그룹홈의 선생님으로 처음 발을 디뎠다. 결혼도 안 한 28세의 싱글이었는데 14살~19살 여자아이들을 떼로 맡아 길렀다. 성적 학대에 시달린 아이, 임신 6개월이 되도록 이를 몰랐던 철없는 고등학생, '컷터칼'로 제 손목 긋기를 아무렇지 않아 하던 아이… 모두 그를 거쳐갔다. 처음에는 속깨나 썩어 "마음으로 짐 싼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오히려 저의 선생"이라며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기를 꿈꾼다. 2004년 정동철씨를 만나 결혼한 이후로 부부가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어떻게 하다 그들은 이런 삶을 살게 됐는지, 1일 석류가정을 찾아가 보았다.

▲서울 관악구 신림 12동에 소재한 '석류가정'의 집. '들꽃청소년세상'에서 운영하는 들꽃청소년연구소가 1층에, 석류가정이 2층에 있다. ⓒ이지수 기자


■아이들을 만나다

-이름이 '석류가정'입니다.

"들꽃청소년세상 그룹홈이 안산에만 있었는데 2007년 서울로 분화하게 됐어요. 서울에서도 제일 낙후된 지역이 신림이라고 해서 이리 오게 됐죠. 김현수 목사님(들꽃청소년세상 대표)이 이름을 '열매맺는마을'로 하자고 하길래 '열매'쪽으로 아이들과 상의해서 우리는 '석류가정', 김 목사님 가정은 '오디가정'으로 이름 짓게 됐어요."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아는 교회 동생이 소개시켜 줬어요. 소개팅인가?" "소개팅이지" "아무튼 만났는데 와이프가 이 일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신학교(대신총회신학연구원) 다니면서 청소년사역에 마음이 있던 터라 와이프 만나면서 시작하게 된 거죠. 결혼하고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그룹홈에 들어갔는데 저랑 와이프, 여중고생 4~5명이 같이 살게 됐어요. 처음엔 아이들이 제가 선생님을 빼앗아갔다는 생각에 경계하더라구요. 저만 끼면 하나 둘 빠지면서 왕따시키는데, 안산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성(性)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더 경계했던 것 같아요."

-어떤 상처였나요.

"친부, 친척으로부터 성폭행 당한 아이도 있었고…"

▲정기영씨 ⓒ이지수 기자

-또 어떤 아이들이 있었나요?

"형제가 있었는데 형이 10살 동생이 7살 때 아빠가 도망을 갔어요. 엄마는 벌써 가출한 상태고. 형제가 같이 살다가 더 이상 살기가 힘드니까 거리로 뛰쳐나와서 지하철서 앵벌이 하고 건물 옥상 같은 데서 자면서 떠돌이 생활하고… 그러다 들꽃에 의뢰가 됐죠. 또 다른 아이는 아빠도 엄마도 재혼을 했는데 아빠 쪽 재혼가정에서 새엄마랑 살게 됐어요. 어쩌다 아빠가 뇌물 수수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됐는데, 아이가 새엄마랑 사이가 안 좋았던지 집으로 가니까 문을 안 열어주더래요.

또 한 아이는 엄마가 재혼을 했는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시댁이 몰라요. 그래서 집에 데려올 수가 없으니 아이가 방황을 많이 했죠. 고등학생도 되기 전에 단란주점에서 일하고…. 다행히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아요. 그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싱글이었을 적에 한 번도 안 가봤던 산부인과를 아이들 때문에 많이 가봤어요. 한 여자 아이가 남자친구랑 사귀다가 들꽃에 입소했는데 자기가 임신한 사실도 몰랐어요, 6개월이 되도록. 도보여행을 갔는데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7개월이라고…. 아이가 뚱뚱하기도 했고  아이들끼리 '나 생리를 안 해' '나도 그래', '배에서 뭐가 꿈틀거리는 것 같애' '나도 그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거죠. 결국 미혼모시설에서 출산은 했는데 키우기도 어렵고 입양을 보냈어요."

-신혼 때 아이들과 같이 사는 것, 힘들지 않으셨나요.

(정기영) "배우자 될 사람이랑 2~3년만 이런 사역 같이 하면, 힘들고 어렵기는 해도 평생의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인간관계 잘 하면 살면서 어떤 일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선배들이 '처음엔 따로 살고 나중에 아이들이랑 같이 살아라'고 하더라구요.  남편은 흔쾌히 같이 살겠다고 하고, 밖에 살림 장만했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도 번거롭게 느껴져서 '하는 데까지 하다가 정 힘들면 깨끗이 나가자'고 하고 같이 살았어요. 그게 지금까지 온 거죠."

-그래도 속상할 때 많았을 것 같은데.

(정기영) "마음 속으로 짐 싼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아이들이 마음을 몰라줄 때 제일 속상했어요. 배신감 같은 거죠. 그런 일로 초창기에 밤새서 운 적이 많아요. 예수님도 제자들로부터 배신 당할 때 이런 기분이셨을까 싶기도 하고(웃음).

또 속상했을 때는, 자해했을 때. 그 친구가 15살이었는데 친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말하기를 네가 합의해서 아빠를 나오게 해달라고… 엄마조차도 아빠 편을 드는 어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방황을 되게 많이 했어요. 하루는 밤에 갑자기 아이들이 깨우는 거예요, 나가 보니까 그 애가 거실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어요, 무표정하게. 컷터칼로 손목을 그었는데 '나 아파요',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런 게 없어요, 너무 힘드니까 정신을 못 차리는 거죠. 보자마자 오바이트를 했어요. 나중에 아이에게 '하지 마라' 그런 교훈적인 이야기는 안 했어요. 걔한테 필요한 게 그게 아니니까. 교사가 가장 힘들 때가 그 때인 것 같아요, 아이들의 문제와 어려운 가정상황을 알아도 해결해 줄 수 없을 때, 지켜볼 수밖에 없을 때…. 한계와 무력감을 느끼고 '내가 교사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 들고. 그때 그 친구에게는 어떤 교훈적인 말도 들리지 않았을 거예요."

-이 일을 하는 데 영향을 준 어렸을 때의 경험 같은 게 있나요.

(정동철) "저희 아버지가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어요. 제가 군대 갈 나이가 될 때까지 어머니를 때리고… 정말 죽도록 미웠어요. 2004년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투병하실 때 '지금 말 안하면 평생 후회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에 있던 걸 모두 쏟아냈어요. 아버지가 듣고는, '그랬었냐'고 '미안하다'고 엄청 우세요. 화해가 된 거죠. 미움이 없어지니까 마음이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때부터 내 과거 얘기, 상처 받았던 얘기도 남에게 할 수 있게 되었고요.

-풀타임 교사니까 아이들 뒷바라지 하는 게 '직업'인 셈인데, 보통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정동철) "밥 하고, 학습 지도 하고… 보통 가정이랑 똑같아요. 청소나 빨래는 분담해서 해요. 같이 장 보고, 쇼핑 하고, 학교 선생님과 면담하고, 후원자 모집해야 되니까 미팅도 하고 프로포절도 만들구요. 석류가정만의 1년치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것도 진행해야 해요. 운영비는 아이들의 기초수급비, 교사 생활비, 정부보조금, 후원금 등으로 모아 쓰고 있습니다."
 
 

▲정동철씨 ⓒ이지수 기자

■아이들도 바뀌고, 나도 바뀌고

정기영 교사가 아이들을 먼저 만나고 '결혼'을 통해 남편에게 아이들을 소개시켜줬다. 안방에는 두 친아들이 있지만 작은 방 2개에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7명의 아이들이 있다. 어디까지가 가정이고 어디까지가 그리스도인의 사역일까.

그런데, 그 경계가 모호한 만큼 삶은 빠르게 변하고 성숙해가는 것을 그들은 느낀다. 24시간을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동안 이들 부부는 기준(基準)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자신들이 얼마나 못 미치는지 온몸으로 깨닫는다. 성화(聖化)라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숙제를 누구보다 빨리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하시나요.

(정기영) "저는 그거 좋아해요,  헨리 나우웬의 「긍휼」이란 책에 나와 있는. '진정한 긍휼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풀고 많이 배운 자가 못 배운자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라는. 처음에는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그게 청소년이었고 내가 교사가 되어서 그들을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내가 아이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하고, 아이들이 저보다 나아서 제 선생이 되기도 합니다.

들꽃피는마을이 함께 지리산 종주를 간 적이 있는데 여자 교사들이 힘들어서 헉헉대요, 그러면 아이들이 산장까지 갔다 와서 교사들의 짐을 들어주고 같이 걷습니다. 거기서 선생은 걔네들이예요. 같이 살아가는 데는 딱히 선생제자 구별이 없는 거죠. 가정환경이 정말 어려운데도 성품은 나보다 나은 아이들을 보면 정말 회개가 안될 수가 없죠."

-아이들로부터 오히려 배우는 셈이네요.

(정동철) "아버지가 폭력적이어서 폭력적인 것을 되게 싫어했는데 아이들 대하면서 제 안에 폭력성을 발견하게 됐어요. 하루는 한 아이가 친구를 데리고 왔길래  하룻밤만 재우고 보내라 했습니다. 약속 받고 확인까지 받았는데 다음 날에 느낌이 아직 걔가 있는 거예요. '걔 갔니?' 하니까 갔대요, 걸린 거죠. 불러서 '왜 선생님 말 안 듣냐' 혼냈더니 '선생님 이러시면 안되죠' 또박또박 따지는데,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옆에 있던 대걸레를 바닥에 홱 내팽겨쳤어요. 그때 무너졌어요. '아, 정말 내가 폭력 안 쓰기로 그토록 다짐했는데…' 제 자신이 너무 미웠고, 그날 밤 엄청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정기영) "교사 하기 전에, 나는 차분하고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제 밑바닥에 있는 것까지 헤집어주는 거죠. 화도 내고 짜증도 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이렇게 죄인이구나' 깨닫습니다. 아이들한테는 깨끗이 치우자 질서 지키자 하는데 정작 저는 안 하고 있는 모습 볼 때 부끄럽죠. 아이들은 상당히 정직합니다. 어른들은 배 고파도 안 고파요 하는데 아이들은 배 고프면 배 고프다 말해요. 누구보다 저를 잘 지적해줄 수 있죠. 아이들이 제 인생의 채찍이고, 선물이에요."



■천국 만들다 천국 가는 것이 인생

아이들을 '작지만 강인한, 볼품 없지만 아름다운 들꽃'으로 변화시켜 오면서, 그들은 자연히 알게 되었다. "들꽃을 키우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햇볕과 바람, 물을 통해 그것들을 키우시죠. 우리는 단지 그 일에 고용된 관리인입니다. 물 주라면 주고, 잡초 뽑으라면 뽑는." 자신들이 천국의 관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동철 교사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누구나 와서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정기영 교사는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더 공부해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어가는 이들에게 하늘의 천국은 이미 마음 속에 와있었다. "천국에 가면요? 저는 울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한게 많아서…. 말 없이 묵묵히 그 분 옆에 있을 거예요", "저는 하나님께 얼른 뛰어갈 거예요. '수고했다, 사랑한다'시면서 와락 안아주실 것 같아요" 라고 정동철·정기영 교사 부부는 말했다.


*(사)들꽃청소년세상 홈페이지 wahah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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