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폭력으로 비칠 세입자의 저항, 예수의 눈엔 믿음으로 보여”

명동 3구역 카페 '마리'에서 열린 향린교회 수요기도회

2천년 전 유대사회에서 혈루증에 걸린 여인은 부정한 사람이었다. 그 여인이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함부로 집을 나와 사람들을 밀치며 마침내 예수의 옷에 손을 대고 나았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기 위해 급히 길을 나섰던 예수는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며 가던 길을 멈춘다. (참고: 마가복음 5:21-43)

7월 6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명동 재개발 3구역에 있는 카페 ‘마리’에서 향린교회의 수요기도회가 열렸다. 이날 예배에서 나눈 복음에 대해 향린교회 한문덕 부목사는 “엄청난 폭력으로 비칠 수 있는 하혈증에 걸린 여인의 행동을 예수께서 용인하시고 축복하셨듯이 지금 사람들의 눈에 폭력으로 비칠 수 있는 세입자들의 저항도 예수님의 눈으로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설교했다.

▲ 향린교회 한문덕 부목사. 명동 3구역의 세입자들과 함께하는 수요기도회에서 설교하고 있다.(사진/ 고동주 기자)

한 목사는 마르코 복음사가가 예수의 한없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 굉장히 고민한 끝에 다양한 장치들을 복음 안에 넣었다고 말한다. 이날 복음에는 12년 동안 하혈증을 앓아온 부정하고 불행한 여인과, 회당장의 딸로서 부유하게 살아온 12살의 딸이 등장한다. 하혈증을 앓던 여인은 잉태할 수 없는 몸이었고, 이제 12살이 된 야이로의 딸은 초경이 시작돼 혼인할 수 있었다. 하혈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옷에 손을 대면서 이 두 여성의 운명이 엇갈린다. 한 여인은 치유되고, 12살 난 아이는 죽는다.

어찌 보면 하혈증을 앓던 여성의 행동은 굉장한 폭력일 수가 있다. 율법에 따라 부정한 여인이 수많은 사람을 손으로 헤치며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는 것은 그 많은 사람과 예수까지 부정하게 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당장의 딸을 치유하러 가는 길을 지체시켰고, 결국 야이로의 딸은 죽는다.

그럼에도 예수는 하혈증을 앓던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라고 말한다. 한 목사는 예수가 폭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여인의 행동을 용인하고 ‘딸’이라고 부름으로써 민족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여인에게 당당히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편입시킨다고 해석했다.

▲이날 수요기도회에는 향린교회 교우 20여명과 세입자 6명, 시민들이 함께 했다.(사진/ 고동주 기자)

이어서 한 목사는 지금 명동 3구역 세입자들의 저항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재개발 사업이 이뤄지는 상황을 살펴보면 이들의 행동이 폭력적이라 하더라도 예수의 마음은 이들을 용서하고 축복한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예수께서 그 당시에 여인의 용기 있는 행동, 반대로 보면 폭력적인 행동을 너의 믿음이라고 하면서 선포하신 것은 어떤 사람의 삶을 못살게 구는 그 당시의 율법체제, 법은 무효다라고 선언하신 것”이라며 법에 사람을 맞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에 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복음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회당장 야이로다. 예수가 부정한 여인네 때문에 갈 길을 지체하는 동안 자신의 딸이 죽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아버지들은 길길이 날뛰거나 까무러치기가 쉽다. 그러나 야이로는 예수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는 말을 믿고 인내한다. 회당장은 오늘날 한국인으로 치면 구청장쯤의 지위를 가진다. 한 목사는 “야이로가 사람의 삶을 잘 이해하는 분”이라고 평가한다. 생존권이 매우 급한 사람이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을 넉넉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죽은 딸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말하는 예수가 하혈증에서 치유된 여인에게서 배운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사실 회당장의 딸은 죽었기 때문에 부정한 시체다. 그 시체에 손을 댄다면 자신이 또 부정해질 것이다. 한 목사는 “죄인을 쳐다보는 다른 이들의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인의 믿음에서 예수도 용기를 얻고 죽은 딸의 손을 잡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삶의 자리가 고통스러운 이들이 곳곳에 있다. 한 목사는 “토건업자들이 정부 관리에 많이 포진해 있어 전국적인 개발붐으로 고통 받는 철거민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목사는 수요기도회에 참여한 향린교회 교우들에게 “그리스도인이 이들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들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워보면 좋겠다”며 설교를 마쳤다.

▲명동 3구역 상가대책위원회 배재훈 위원장. 서로 손을 잡고 중보기도를 바친다.(사진/ 고동주 기자)

향린교회는 교회 내 사회부와 선교부 차원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세입자들과 함께 수요예배를 바쳐왔다. 6일의 수요기도회는 당회에서 승인한 향린교회 전체 차원의 예배였다. 한 목사는 “다음 8월 첫째 주 수요일의 기도회도 당회의 승인을 얻으면 명동 3구역 세입자들과 함께 카페 ‘마리’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향린교회 역시 명동 재개발 2구역에 포함되어 있으나 아직 개발이 언제 시행될지 통보받은 바가 없다. 향린교회는 2구역에서 11.8%의 지분을 소유해서 나머지 대부분을 소유한 보승실업이 개발에 동의하면 향린교회 역시 강제로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다.

 
2011년 7월 8일자 고동주 기자  godongsori@catholicnews.co.kr 

(기사제휴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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