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성 칼럼] 공감(共感)의 힘

▲예수원교회 김성 목사.
최근 서점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은 단연 <문재인의 운명>이란 책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한 문재인 변호사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출간한 일종의 자서전입니다. <문재인의 운명>은 만남, 인생, 동행, 운명 총 4장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변호사 노무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비극적인 죽음으로 스스로 생을 마친 전직대통령 노무현과 헤어질 때까지 30여년 동안 친구로, 동지로, 정치적 동반자로 함께 동행했던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삶을 담담하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문재인이 노무현을 처음 만난 때는 1982년입니다. 문재인은 당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판사임용을 지망했지만 법대생 시절 유신정권반대시위 경력이 문제가 되어 판사임용이 좌절된 상태였습니다. 문재인이 어쩔 수 없이 변호사개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 사법고시 동기생이 부산에서 이미 개업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노무현 변호사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문재인은 이제 갓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변호사개업을 준비하고 있던 초짜변호사였지만 노무현은 이미 1978년에 변호사개업을 하고 잘나가는 조세전문변호사를 거쳐 81년 부림사건 변론이후부터 인권변호사로 명망을 쌓아가던 때였습니다. 문재인은 <운명>에서 노무현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변호사는 판사생활을 짧게 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기질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아주 소탈했고 솔직했고 친근했다. 그런 면에서 금방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 같은 게 있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학창시절 데모하다 제적당하고 구속됐던 얘기, 그 때문에 판사 임용이 안 된 얘기… 노변호사는 자신이 변론했던 ‘부림사건’ 경험을 얘기하면서, 그런 일로 판사 임용이 안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함께 분노해 주었다> 문재인은 노무현을 만난 그날 곧바로 노무현의 변호사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터라 이미 서울의 <김&장>을 비롯한 유명로펌에서 파격적인 보수와 자동차 제공, 미국 로스쿨유학까지 약속하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터였지만 문재인은 그 모두를 거절하고 부산 부민동의 허름한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노무현으로부터는 아무런 솔깃한 제안도 없었지만 유신반대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임용이 좌절된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아픔을 노무현 변호사가 진심으로 함께 분노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그걸 계기로,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는 노무현의 진심이 문재인의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재인과 노무현, 두 사람의 삶을 운명처럼 묶은 힘은 바로 공감(共感)의 힘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자랐고, 힘겹게 공부해 법률가가 되었으며, 독재정권의 만행에 맞서 싸운 경험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만남의 자리에서부터 문재인이 노무현에게서 금방 동질감을 느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금방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 같은 게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더욱 더 자기 마음을 열게 됩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마음과 마음 사이에 서로 오가는 길이 놓입니다. 그 길을 따라 서로의 마음이 오갑니다. 그러다보면 한 가지 일에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때가 찾아옵니다. 두 마음이 하나의 마음이 되는 때입니다. 그 때가 바로 공감(共感)의 때입니다. 그리고 두 마음이 하나가 되는 그 공감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공감하지 않고서 사랑할 도리는 없습니다.

사랑은 곧 공감입니다. 성서는 말씀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로마서 12:15~16> 불가(佛家)에서는 부처의 마음을 가리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자(慈)는 산스크리트어 maitri를 옮긴 말로 ‘기쁨을 함께 한다’는 뜻이고, 비(悲)는 karuna를 옮긴 말로 ‘슬픔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결국 부처의 마음이란 기뻐하는 자와 ‘크게 기쁨을 나누고(大慈)’ 슬퍼하는 자와는 ‘크게 슬픔을 나누는(大悲)’ 마음입니다. 이것은 곧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서의 말씀과 그 뜻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종교는 공감이 곧 사랑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훗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의 일입니다. 회담 첫날 김정일은 회담자체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7.4남북공동성명’부터 남북이 맺어온 여러 조약과 공동선언들이 결국엔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냐며 새로운 약속이나 공동선언 자체에 무척 회의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측에서 자꾸 북측을 개방해야 한다,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몹시 거부감을 가지고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보면 첫 회담을 마친 후 남측 수행원들의 점심식사자리에서 노무현대통령이 수행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너무 일방적으로 한 것 같은데 그래서는 안되겠습니다. 북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대화합시다” 노무현대통령의 이 발언이 그 자리에 있던 북측관계자들을 통해 김정일에게 전해졌다고 합니다. ‘개혁을 해도 우리가 하고 개방을 해도 우리식으로 할 것’인데 남측이 개혁해라 개방하라고 제 맘대로 떠들어대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있던 김정일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역지사지 발언은 ‘노무현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던 듯 합니다. 그 날 오후회담의 분위기는 오전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합니다. 핵문제를 비롯해 남북평화선언, 각종경제협력문제 등 모든 의제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일사천리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정치인도, 심지어 독재자도 감정을 가진 어쩔 수 없는 인간입니다. 상대가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헤아려주고 상한 자존심을 세워주려는 기미를 보이자 굳게 닫힌 마음을 열었습니다. 회담자체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떫은 감 씹은 얼굴로 회담에 임했던 김정일은 모든 회담 일정이 다 끝난 뒤에 서울로 귀환하려는 노무현대통령에게 체류연장을 요청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노무현대통령도 몰랐다고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정일이 노무현과 더 대화하려고 노무현을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반전(反轉)이 일어났을까요? 저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독재자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인 김정일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준 노무현 대통령의 ‘공감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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