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열창하고 있는 가수들. 임재범(위), 박정현. (방송 화면 캡쳐) |
요즘 한국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일요일 오후 5시 20분이면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핸드폰을 호주머니서 꺼내 이 프로그램을 튼다. 월드컵도 아닌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흘끔흘끔 훔쳐본다. 바로 MBC 가수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지금까지 임재범이 ‘여러분’, 박정현이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김범수가 ‘님과 함께’, BMK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등을 불러서 1등을 거머쥐었는데, 매 방송이 끝날 때마다 인터넷이 ‘폭풍반응’으로 떠들썩하다. 임재범이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라며 눈물로 열창한 ‘여러분’ 공연 직후, 무명의 네티즌들의 익살 어린 반응 : “밥 먹다가 숟가락 놓고 봤다… 빠져들었다가 정신차려보니 밥은 이미 식은 지 오래” “정신차리고 보니 라면 면발이 불어터져 있었다” “이런 미친 공감!” “그러니깐요 저는 치킨 먹으면서 봤는데 치킨 내려놓음.”
한국교회가 임재범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 시간 경기도 용인시 모처에서 눈물을 훔친 또 한 명의 시청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이충범(49). 최근에 『노래로 듣는 설교』(대한기독교서회)라는 책을 냈고, 협성대에서 신학생들에게 역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소감이 일반인들과 약간 다르다. 노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설교 이야기를 한다.
“임재범은 단순히 노래 잘하는 가수가 아니에요. 그 사람 삶을 보면… 예전에 한국 최초의 메탈그룹 중 하나인 ‘시나위’의 보컬리스트였는데, 헤비메탈이 시장에서 먹히지를 않으니까 애잔한 발라드를 부르면서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발표할 때마다 TV출연도 안하고 잠적하는 거예요.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락 보컬리스트로서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아요. 또 유명한 아나운서 아들인데 고아원에서도 살았고, 세상에서 실수도 많이 해서 원수소리도 많이 듣고. 자장면 한 번 시켜먹는 것도 힘들었다더군요.
▲이충범 교수(협성대 신학부, 역사신학) ⓒ베리타스 DB |
“교회바깥 향해 문 열어야 교회도 발전”
그의 책 <노래로 듣는 설교>는 국내외 대중가요 10곡을 설교라는 형식 속에 신앙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를 통해 부활의 그리스도를 얘기하고, 박진영의 ‘방문에서 침대까지’를 가지고 하나님과의 영혼의 교제를 이야기한다.
그는 한국교회의 설교강단만큼이나 기독교 음악이 ‘가슴 터질 듯한’ 감동을 못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만들 수 있는데 못 만들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면 편견 없이 밖의 문화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것 없으면 남의 것 따라가는 처지밖에 못 되는 거지요. 만약 교회가 락(rock)을 계속해서 사탄의 음악이라고 매도해서 교회에 들여오지 않았다고 생각해봅시다. 전 세계 (대중)음악이 락과 힙합을 기반으로 하는 지금, 교회는 세상의 외톨이로 소외됐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가 교회 밖 문화에 대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아주 닫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다고 봐요. 이 음악은 교회음악, 저 음악은 세상음악이라고 구분하는 것 자체가 필터링(filtering)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연애자의 문화, 트랜스젠더의 문화는 아예 교회에서 인정되지 않고 있죠.” “여과 없이 받아들이자는 것인가요” “그렇다기보다는 이런 문화들도 교회가 편견 없는 시각으로 보는 게 우선이라는 겁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말입니다. 그래야 그 문화가 교회문화에 안착을 하죠. 왜 안착해야 하느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문화와 기독교 정서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교회음악이나 기독교 연극이 왜 수준이 낮습니까? 기존의 문화를 변혁하지 못하니 세상문화를 선도하지 못하고 따라가기 급급한 겁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언제나 교회 밖 문화를 뒤따라가는 처지는 아니었다. 기독교 전래 역사가 120여 년이 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상당기간 동안 기독교는 사회와 문화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기독교 자체가 가진 문화변혁의 요소도 크다. 예수가 그 짧은 공생애기간 동안 문둥병자며 소경이며 이 세상의 밑바닥 사람들은 다 만나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고, 사랑에 빛나는 가르침을 전하고, 그 삶의 끝에서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친히 올라 물과 피를 쏟고 부활했다는 복음의 핵심은, 2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사람들을 변화시켜 왔으며, 이것을 원동력으로 창조된 인류의 유산은 헤아리기 힘들다.
사실 예수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다”며 “그대 그늘에서 지친 마음 아물게 해”라고 읊조려주는 친구,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이고 기쁨”이라는 소중한 소울메이트,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함께 살고픈 우리 님” 그 이상, 아니, 그러한 노랫말만 가지고 표현되기 힘든, 그런 분 아닌가.
교회 안과 교회 밖, 그 경계를 넘어
그의 책은 대중가요와 기독교음악의 경계를 허문다. 심수봉의 노래 ‘백만 송이 장미’에 나오는 가사 ‘수많은 세월 흐른 후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는 알았네. 미워하는(X3) 마음 없이 아낌없이(X2)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X3) 꽃은 피고’를 음미하며 “(러시아)원곡의 가사는 아주 얄팍한 남녀상열지사에 불과했는데, 심수봉의 노래는 차원을 달리한다. 심수봉은 남녀 간의 상열지사를 종교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그것도 우주적인 종교로 말이다”라고 말한다.
“심수봉은 세상의 사랑에 수없이 많은 상처를 받고 진정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회의하던 중에, 빛처럼 나타나신 그 어떤 분을 만나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큰 사랑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그녀의 경험은 저를 포함한 많은 신자들이 경험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경험입니다. 그런 그분이 이제 부활하신 모습으로(‘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책 『노래로 듣는 설교』 표지. ⓒ대한기독교서회 |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지상파 3사로부터 방송불가 판정을 받은 박진영의 ‘방문에서 침대까지’. 가사 ‘방문에서 침대까지 안아주고 싶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입맞추고 싶어’가 “정신적 사랑은 고질, 육체적 사랑은 저질이라는 등식으로 보면 외설”이지만, 한편으로는, 남녀의 사랑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성서의 ‘아가(雅歌)서’와 같이 이 노랫말을 가지고도 하나님과의 영혼의 교제에 대해 묵상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나는 30년간 새벽 제단을 쌓았다(새벽기도 했다)’는 자랑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하루를 기도해도 하나님과 사랑을 속삭이는 경험입니다. 이런 경험 없이 쌓는 30년 새벽기도는 30년 동안 새벽에 친 테니스와 큰 차이가 없을지 몰라요. 부부가 사랑을 나눌 때 밀실이 필요하듯, 주님과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서도 그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는 영혼의 밀실이 필요합니다.”
로드 스튜어트가 ‘Sailing’에서 “하나님 곁으로 자유를 향하여 항해한다”고 노래한 것을 자신의 신앙여정과 꼭 같다 생각하고, 한대수의 노래 ‘바람과 나’를 들으면서는 성령의 바람을 따라 사는 삶에 대한 소망에 불을 지핀다.
그에게 “대중가요와 기독교음악에 구분이 없다는 말로도 들린다”고 하자, “사실 개신교의 찬송가도 처음에 만들어질 때는 유행가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교회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만 부를 수 있었는데, 찬송가는 당시 유행하던 음악을 가사만 바꿔서 부르거나 한 것이죠. 그런데 동일한 사랑을 노래해도 음란한 것이 있고 맑은 것이 있습니다. 이 ‘미묘함’을 영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거예요.”
심지어 찬양집회와 콘서트도 동일선상에 놓았다. “찬양집회 때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에 불이 일어나서 은혜를 받는 것과, 자기가 좋아하는 콘서트 찾아가서 감동받는 것이 전혀 동떨어진 현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기독교 집회에서 흘린 눈물은 하나님의 터치에서 흘린 눈물이고, 콘서트에서 흘린 눈물은 세속적인 눈물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음악을 그 자체로 선이다, 악이다 할 수는 없어도 분명히 ‘안 좋은 음악’이 있다. “음악이라는 게 인간 내면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 또 반대로 자극하기도 하는 것 아니겠어요? 사람의 내면에 있는 음란함을 표출하고 자극하는 음악이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인종차별, 전쟁, 폭력을 부추기는 음악도 그렇고요.”
“한국교회 설교, 교회 밖 문화에 더 열리고 다양해지길”
이번 책에서는 대중가요만 다뤘지만, 사실 그는 “뽕짝 빼고는 다 좋다”는 음악광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나 바흐의 오르간 곡 같은 종교성 짙은 음악부터 블루스, 댄스, 헤비메탈, 갱스터랩까지.
하지만 신학자이자 목사인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어디까지나 무언가 더 큰 것을 실어 날라주는 ‘채널’(channel)이다. 노래를 설교의 소재로 사용한 이번 책을 통해 그가 바라는 것은, “목회자나 목회지망생들이 대중음악을 설교에 이용하는 것에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학교 채플 시간에 실제로 음악설교를 시도해 봤는데, 학생들이 ‘이렇게도 설교할 수 있구나’라며 신선해 하더라고요. 노래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문화를 가지고 설교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나가수’ 임재범보다 감동적인 설교, 그 말고도 기다리는 사람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