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신명기 5:16/요한복음 17:1-5
설교문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부부일체이니 아버지들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세상에 내려가서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찾아오라 했습니다. 세상 구석구석을 뒤지며 왕궁, 군대 주둔지, 학교에 갔으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심산유곡에서 향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꽃이 천사의 마음을 황홀하게 했습니다. 천사는 아름다운 꽃을 가지고 하늘나라를 향했는데 도중에 시들어 버렸습니다. 다시 찾아 나선 천사는 한 가정에서 평화로운 웃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젖먹이를 안고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천사는 무릎을 치고 아기의 웃음을 하늘나라로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청소년, 청년, 어른이 되면서 웃음도 변했습니다. 실망한 천사는 다시 세상을 향했는데, 이번에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찾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80세에 가까운 할머니께서 수술 받고 회복 중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통증으로 힘들어 하면서 누군가를 불렀습니다. “엄니……”였습니다. 할머니께 어머니께서 생존하지는 않았겠지만, 의식과 마음에는 어머니께서 생생히 살아 계셨습니다. 수술 후의 고통을 어머니의 사랑, 손길로 위로 받으며 회복되길 바란 것입니다. 어머니는 하나님 사랑의 대리자로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치유의 근원이요, 위로의 뿌리이며, 인생의 고난과 역경의 때에는 피난처인 사랑,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냅니다. 자녀가 아무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언제인가 일어서리라는 것을 신념을 가지고 기다리며 기도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자녀가 타락하여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갔어도 포기하지 않는 분입니다. 어머니는 추함 속에서도 반드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발견해냅니다.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열의 추함을 이기고도 남기는 눈과 마음을 가진 분입니다. 긴 세월 자식에게 “사람 되라.” 엎드려 기도하면서 온갖 고생을 감내하면서도 “난 괜찮다.” 말씀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참으로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인류의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위대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인류사를 발전시키고 변화시킨 힘의 원천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습니다. 어머니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효(孝)입니다.
신명기 5:16은 십계명 제 5계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계명에 충실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형식적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유교문화에서 제사는 생명과도 같이 중요합니다. 제사의 중심에 조상에 대한 예(禮)가 자리합니다. 조상을 숭배하고 세상 떠나신 부모에 대한 효의 표현이 제사입니다. 문제는 제사가 효라는 등식에 빠져, 제사만 드리면 효를 다한 것처럼 여기고 정작 중요한 부모와 조상은 없어지고 제사만 남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형식주의, 율법주의라 합니다. 기독교가 우리 땅에 전래될 때 제사는 종가(宗家)집의 애물단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생활이 피폐해져도 제사의 규범에 따라 중지할 수 없었습니다. 불효자로 낙인찍히고, 천륜과 인륜을 어기는 사람으로 비난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사 속에서 효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상을 복 주는 분으로 여겨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금하게 되자, 절과 제사를 동일시하던 문화가 기독교는 불효를 가르친다고 오해하게 된 것입니다. 제사가 효인가요? 제사가 효의 한 방법이긴 하지만 제사가 효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 길임에는 분명하지만, 율법지킴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수께 눈을 돌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로 우리에게 효란 어떤 것인지를 가르친 본문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가슴에 담고 살았습니다. 철저히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삶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도 아버지께서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뜻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 된 효이며,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효입니다. 바른 효는 부모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버이날이라고 봉투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고,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하는 것도 효의 한 길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효의 의무를 다한 것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효를 새기면서, 부모님께서 기뻐하실 효를 행하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