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4일
본문: 창세기 49장 22절
설교: 이동원 목사
제목: 당신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2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러브 소나타 집회 도중에 하 목사님께서 수술을 하게 돼서 긴급히 내가 투입돼서 집회를 감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가 참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정말 그리울 것 같다.
여러 언론사에서 하 목사님 어떤 분이냐 해서, 내가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죠, 라고. 꿈이 그를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꿈을 먹고 살았다. 그는 꿈을 심고 살았다. 그는 꿈을 나누고 살았다. 그는 꿈을 남기고 떠났다.
본문은 야곱이 이스라엘을 위해 남긴 유언적 축복이다. 동시에 예언적 축복이기도 하다. 그 중 요셉을 향한 축북인데, 이 예언을 잠시 생각코자 한다. 그 이유는 요셉이 너무나 하 목사님을 닮은 성경의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짤막한 구절에서 발견한 하 목사님의 인생, 그것은 요셉처럼 무성한 열매 인생이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이렇게 본문은 시작한다. 다른 말로 하면 열매 맺는 가지라는 말이다. 요셉은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로 이방 땅 애굽, 그리고 조국 이스라엘의 열매가 되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열매를 위해 수많은 세월, 고난을 견뎌야 했다. 억울한 옥살이의 고난 등. 그러나 마침내 이런 시련들이 다 지나고 그가 결혼한 후 두 아들 얻었는데 첫째는 므낫세, 둘째 아들은 에브라임이었다. 열매를 맺게 하신 것이다. 하 모사님 인생에서 맺은 모든 열매, 그 열매로 이 자리에 있는 온누리교회와 이 자리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열매는 하 목사님께서 겪으신 고난의 보상이라고 믿는다.
7차례의 대수술과 하루 세 번씩 투석을 받으시면서 마지막 자신의 생명을 산화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고난 속에서도 한 가지 비전의 성취 앞에 집중했던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의 별명은 종합병동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그 걸음을 멈춘 적이 없었다. 투석 하면서도 사역을 생각하고 병원에서도 선교를 위해 애썼다. 러브 소나타를 통해 일본을 축복했다. 이 열매는 고난을 통해 맺어진 열매라 더욱 값지다. 그의 열매는 무성한 열매 인생이었다. 그를 통해 이 무성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
두 번째, 하 목사님의 인생은 인리치의 인생. 그는 아웃리치에 인생 걸었지만 그 안에는 깊고 부요한 인리치의 샘이 있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니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다. 요셉은 샘에 뿌리를 두고 열매를 맺었던 사람이었다. 하 목사님은 성령을 사모했다. 성령의 감동을 사모했다. 복음주의권에서 성령운동을 증폭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셨다. 나는 목회 초기에 이걸 비판했었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하 목사님이 저를 바꾸었다. 나도 성령운동에 하 목사님과 더불어 취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목사님의 첫째 사랑은 말씀묵상이었다. 하 목사님은 말씀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의 생애는 말씀과 성령의 샘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삶이었다.
그가 한국교회에 남긴 중요한 공헌은 말씀묵상을 보편화 시킨 일이었다. 이런 묵상의 근거에서 그의 설교는 맑은 샘에서 나오는 묵상의 설교였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의 조화 속에서 한 평생 균형을 잡고 살아오셨다.
그가 한 번은 영국에 다녀 오면서 존 스토트 목사님을 만나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분 칭찬을 쉼없이 했다. 그래서 물었다. 존 스토트가 예수 보다 더 좋느냐고. 그랬더니 그가 ‘나에게 균형을 가르치셨다’고 했다. 그렇게 하 목사가 존 스토트 목사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존 스토트 목사를 따라가셨다. 지금 그와 말씀을 나누고 있으실 것이다.
세 번째로, 하 목사님은 담을 넘는 선한 영향력의 인생을 사셨다. 가지가 담을 넘었을 때 그 가지의 열매가 이웃들에게 돌아가는 인생. 우리는 한 평생 자기 담 넘지 못하고 일생을 끝낸다. 자기 범주 벗어나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그러나 하 목사님은 교회의 경계를 넘어 민족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셨다. 요셉도 보디발의 집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교도소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감옥에도 촉복이 내렸다. 애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렇게 축복의 인생이었다.
하 목사님의 인생이 그랬다. 늘 축복을 만드는 인생이었다. 병을 치료하러 일본에 가서도 그곳에 교회를 만드셨다. 그는 무리한 출혈을 감수하고도 그가 선교에 올인하고 목숨을 걸었다는 고백처럼, 씨지엔TV를 만들고 감당했다.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일 하느냐 물으면, 그는 매우 단순하게 대답했다. 선교사들이 좋아한다고.
아무도 그를 멈출 수 없었다.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이틀 전 새벽 하 목사님이 산소 호흡기를 떼고 마지막 심장 박동을 멈추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멈추게 하셨어. 아무도 멈출 수 없었던 분을 예수님이 멈추게 하셔서 쉼을 주셨어.
이제 우리가 사랑했던 하 목 사님은 천국의 꽃피우는 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들고 계실 것이다. 그 안에서 온누리교회와 한국교회를 축복하실 것을 믿는다. 이제 그를 위해 마지막 고백을 드린다. 수고 많았어요. 감사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