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웃, 혹은 타자는 어떤 존재인가?”
지난 8월 13일 방영된 SBS TV 주말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은 이러한 질문을 새삼 우리에게 던진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는 18세 소녀 루비가 등장하여 노래를 불렀는데, 이 동영상이 실린 유튜브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전통과 문화를 왜곡했다고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수 천 건의 댓글이 아랍권으로부터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조선일보 8월 15일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15/2011081501024.html)
▲김기석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
“우리에게 이웃이나 타자는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우리 집에 불이 났을 때 달려와 같이 불을 꺼줄 소중한 친구일 수도 있고, 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갈 두려운 침입자일 수도 있다. 사회생물학적으로 볼 때 부족의 어린아이들에게 낯선 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집으로 도망가라는 가르침은 생존에 매우 유효한 교훈일 것이다. 반면 우리가 모든 나그네를 경계하고 배타적으로 대한다면 우리 역시 그렇게 대접 받을 것이기 때문에 상호호혜로 인한 이득을 잃어버리는 손실이 있을 것이다. 이웃 혹은 타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한 우리의 고민은 바로 이러한 상충적 이해에서 비롯된다. 즉 우리의 타자에 대한 태도는 본질적으로 이중성을 띨 수 밖에 없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저절로 경계할 수 밖에 없지만, 반면 어떤 나그네라도 물가로 기어가는 아기를 보면 달려가 아기를 안아줄 인간의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인류는 동서를 막론하고 끊임없는 침략과 피탈의 역사를 겪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지역과의 교역과 타 문화와의 교류는 문명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아가 타자와의 배척과 쟁투보다는 호의를 통한 상호호혜가 이득도 클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보다 우월한 인간의 관계임을 알게 되었다.
구약성서를 펼쳐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타민족과의 쟁투를 벌인 역사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동시에 나그네에게 후하게 대접하라는 가르침이 교차되어 있다. 하지만 신약성서에 와서는 복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인 이웃사랑에 대한 가르침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케냐 출신의 신학자로부터 <아프리카의 영성>을 배운 적이 있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전통에 따르면 먼 길을 여행하는 나그네는 누구든지 남의 밭을 지나가면서 이삭이나 열매를 따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소출을 주머니나 자루에 담아가는 것은 금지한다고 한다. 나그네에 대한 호의는 아프리카 부족민들의 전통적인 영성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융숭한 환대를 받았던 경험 중에 하나는 이스라엘의 어느 아랍인의 가정을 방문했을 때였다. 나는 운 좋게도 1999년 영국기독교-유대교협의회(The Council of Christians and Jews in U.K.)가 주관하는 이스라엘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를 가졌는데 일반적인 성지순례 장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지역들도 포함하는 여행이었다. 삼대가 대가족을 이루고 모여 사는 한 아랍 가정에 우리 일행이 방문하자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여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진실한 호의와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마치 어릴 적 기억에 남아있는 인심 좋은 고향 마을에라도 온 느낌이었다. 그때 든 생각은 “이슬람 지역은 무전여행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19~20세기를 걸치면서 유럽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에서 위대한 랍비들에게 영향 받아 성지 복귀 운동이 전개되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찾아왔을 때, 아랍인들은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온갖 도움을 다 베풀어 주었다. (지면 관계상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앞에서 언급한 ‘스타킹’의 이슬람 비하 논란을 다룬 신문기사에 대해서도 독자들의 다양한 댓글이 올라왔는데, 대체로 우리나라 예능 방송에 대해 저들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의견과 우리나라 전통에 대해 외국방송이 비하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라며 빨리 사과하라는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듯 하다. 9.11 이후 이슬람교나 아랍인들은 외부세계의 눈에는 자주 테러와 연상됨으로써 많은 정신적 피해를 겪고 있다. 그러나 극히 일부 회교 과격분자를 제외한 대다수 아랍인들은 우리와 같은 선량한 세계시민이며 선한 이웃이다. 나는 우리가 타자를 악인으로 규정하면 반드시 그 악을 우리가 돌려받게 될 것이며 선한 이웃으로 여기면 호의를 제공받을 것이라 믿는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다만 이상적인 도덕률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가르침이기도 하다.
*김기석 교수는
한국항공대를 다니다가 성공회대로 옮겨 신학을 공부하고,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빈민선교 및 농촌선교 사역을 하다가 영국 버밍엄 대학교(Univ. Birmingham)에서 석사학위와 "한국적 상황에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Science-Religion Dialogue In Korea』(집문당, 2009),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응답인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동연, 2009)이 있다. 현재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