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느님을 믿습니까?”
외계문명과의 접촉을 다룬 영화 <콘택트>(1997)에 나오는 대사이다. 외계문명 탐사에 모든 것을 바쳐온 주인공 엘리(조디 포스터 분)는 오랜 고생 끝에 마침내 외계문명으로부터 온 신호를 포착한다. 과학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발견을 이룩한 그녀는 지구인을 대표하여 외계문명을 방문할 우주비행사로 선발되기 위한 인터뷰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게 된다. 더구나 이 질문은 그녀의 절친한 친구로서 대통령의 종교담당 고문을 맡고 있는 신학자 자스(매튜 매커너히 분)로부터 받은 질문이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김기석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
“과학자로서 저는 경험적 증거에 의존합니다만, 신의 존재를 입증할 데이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우주비행사 선발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엘리의 솔직한 답변에 대해 다른 심사위원이 지적한다.
“인류의 95%는 어떤 형태로든지 절대자(Supreme Being)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인류의 대표 사절을 선발하는 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엘리의 무신론적 태도와 달리 그녀의 경쟁자 드럼린 박사는 “인류가 수천 세대를 걸쳐 지켜온 유산(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우주비행사로 선발된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교활한 경쟁자에게 패배하여 실의에 빠진 엘리에게 자스는 말한다. “신학자로서 인류의 95%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믿는 후보를 선발할 수는 없었”노라고.
나사(NASA)의 과학자 칼 세이건의 공상과학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콘택트>는 과학과 종교가 지닌 각각의 속성과 관계를 가장 공평하면서도 깊이 있게 묘사한 수작이다. 칼 세이건은 천문과학자로서 그가 진행을 맡아 해설한 <코스모스>라는 TV프로그램은 80년대에 전 세계 60여 나라에서 6억 명 이상이 시청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과학자로서 그는 비록 특정한 종교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앙을 망상으로 매도하거나 종교적 가치를 폄하하지 않았다. 그가 핵 전쟁이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던 핵 무기 감축 활동 등은 종교인들의 호응을 받을 만한 것이었다. 칼 세이건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신앙은 ‘망상(God Delusion)’에 불과하다며 무신론 캠페인을 벌이는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와는 구별된다.
객관적 진리로서 과학에 대한 신념과 주관적 경험으로서 종교에 대한 존중을 동시에 간직했던 세이건의 진지함은 ‘콘택트’라는 작품 속에서 과학자 엘리와 신학자 자스라는 캐릭터로 나타난다.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에 엘리가 청문회에서 절규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외계문명을 방문하고 지구로 돌아왔으나 그것을 입증할 과학적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자 청문회에 불려 나와 외계에 다녀왔다는 것을 부인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에 맞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의 진실하다는 것을 간절히 고백한다.
“전 경험했습니다.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도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전 제 인생의 변화를 가져 올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러한 증언은 그야말로 종교적 체험의 고백이다. 일평생 과학적 데이터에 입각해서만 사실을 인정했던 과학자 엘리가 마치 회심을 체험한 복음전도자와 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실천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과학만능주의가 답이 될 수는 없다. 예컨대 과학의 힘으로 인류의 식량생산량은 크게 늘었지만 기아로 굶주리는 인구는 늘어만 가고 있다. 사이버 토론 사이트를 둘러보면 특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넘쳐흐른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전도와 성장에만 치중했던 한국 교회의 성장제일주의에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 예수께서 보여주신 기독교 본질이 과학에 의해 무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반면 종교 근본주의의 입장에서 과학을 부인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되 과학교과서는 아니다. 성경이 진리의 말씀인 것은 하느님과 인간과 세계의 의미에 관해서이지 물리적, 생물학적 설명의 영역에서 교과서라는 뜻은 아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주님이심을 알려주는 점에서는 만고불변의 진리이지만, 그 방법과 시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차이를 깨달으면 낮은 단계의 신앙에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어린이와 같은 신앙을 고집하면서 문자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문자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은 허위와 상충되는 구절들로 가득하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타인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의 반대의 근거를 제공하고 그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것이다.
과학과 신앙이 반드시 서로 상충할 필요는 없다. 믿음이 좋은 신자라 해서 과학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뛰어난 과학자라고 해서 신앙을 멀리할 필요가 없다. 어쩌다가 이름있는 과학자가 교회에 나온다고 마치 사상적 전향자라도 된 듯 그를 내세워서 과학을 부정하게 하고 신앙의 우위를 선전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과학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이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과학 그 자체가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현대과학의 눈부신 업적으로 세계와 인간을 지으신 하느님의 창조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자세하게 알게 되었으니 과학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 중에 하나인 것이다. 과학과 종교가 힘을 합쳐야만 인류 앞에 놓여있는 도전을 해결할 수 있다.
*김기석 교수는
한국항공대를 다니다가 성공회대로 옮겨 신학을 공부하고,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빈민선교 및 농촌선교 사역을 하다가 영국 버밍엄 대학교(Univ. Birmingham)에서 석사학위와 "한국적 상황에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Science-Religion Dialogue In Korea』(집문당, 2009),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응답인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동연, 2009)이 있다. 현재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