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그 때가 법정 스님과의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자리가 자리인지라 개인적 대화나 친분을 가질 기회는 없었다. 법정 스님의 첫 인상은 다른 일반 스님들과는 달리 마른 체구에다 상당히 깐깐해 보였다. 특히 자기가 속해 있는 불교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가 불교계의 스님이면서도 기독교적 사상과 세계관을 가지고 잡지를 하는 씨알 소리의 편집인이라는 점에서 그가 좀 특수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에서 차린 저녁식사 중에 그가 한 말 가운데 지금도 기억난다. 당시 경기고등학교가 봉은사 뒷산으로 이사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즉 한국의 교육 관료들이 귀중한 역사의 문화재인 봉은사 바로 뒤편의 산을 보존하지 않고 깎아서 그 꼭대기에다 학교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학교를 짓는 것도 문제인데 공사를 하면서 큰 바위들을 굴려 보내서 그 바위들이 봉은사의 뒷마당에 쌓이고 심지어 축대에까지 충돌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권 잡은 놈들, 교육을 한다는 자들이 너무나도 문화나 종교를 존중할 줄 모르는 야만인들입니다.”
추측컨대 법정은 그 후 이 강남에 있는 그 사찰(당시는 강남이 형성되기 전이라 부자 절이 아니었을 것이다)을 떠나 본격적으로 무소유의 수행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큰 절의 주지가 된다든지 총무원과 같은 종교 권력기관에 소속되어 특권을 누리는 길을 버리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철저한 수행의 길을 걸어가면서부터 그는 많은 글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으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더욱 많아졌다. 몇 년 전 요리점 대원각 주인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헌납해 길상사라는 절을 창립했지만 그는 그것의 주인이 되거나 그것을 이용해서 어떤 특권적 지위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몇 년 전에 선종한 성철 스님과 함께 불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은 불교계에서 부와 권력과 명예만을 추구하는 파쇼적 승려집단들 뿐만 아니라 종교 일반 특히 한국 개신교계의 마피아적 성직자 집단들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 같다. 그의 글 가운데 한국 기독교인들의 실상을 잘 말해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한다. “만약 기독교인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나는 지옥을 선택하겠다. 예수를 믿지 않아 가야 하는 곳이 지옥이라면 나는 언제나 기꺼이 지옥이라는 곳을 가겠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인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이다.”(서헌철 기독교신문. 2010년 3월 28일자). 이 법정의 글의 출처를 필자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법정이 이러한 글을 썼다면 그가 예수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을 비판했을 것이다. 즉 불교나 다른 종교를 믿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왜곡된 의식을 가진 기독교인들을 비판한 것이리라. 비판의 대상이 된 기독교인은 예수의 가르침, 청빈과 겸손 그리고 희생의 가르침 대신 재물과 권력 그리고 명예만을 탐하는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과 같은 어리석은 구호를 외치며 선교한답시고 전철 같은 데서 다른 사람들은 괴롭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한국에서는 지금 기독교인들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거기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행태들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자 이명박 대통령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자기도 법정을 존경했고 그의 책 <무소유>를 늘 옆에 두고 읽는다고 했다. 이 기사를 일고 필자는 좀 아연한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뭔가 잘못된 것일까? 법정의 비판의 대상이 됨직한 강남의 부자와 권력자 그리고 명사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의 장로이면서 이 모든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이명박 대통령의 삶과 법정의 삶 사이에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목사들 중에서도 법정이 걸어간 길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목사들이 법정의 분향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는 말을 듣고도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300억원 이상을 어려운 학생들은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았으니 무소유를 지향하는 삶을 산다고도 주장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돈은 사실상 BBK라고 하는 일종의 탈법적 투자회사를 만들어서 운영한 것이 그의 탐욕적 삶을 계속하는 데 족쇄가 되니까 국민의 눈을 속이고 현혹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는가? 거짓말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참말(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늘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 하는 사람이 참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거짓말 하는 사람은 참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을 따라 살고자 했던 사람들은 말없이 슬픔에 잠겨 있는데 그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던 사람들이 더 앞장서서 큰 소리로 그를 애도하며 그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마저도 가로채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 하는 세상이니 정말 살맛이 안 난다. 위선으로 가득한 바리새인들이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미며,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에게 피 흘리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