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
나는 제주도 남쪽 항구도시 서귀포에 속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 해당 주민들의 경제적 이해득실관계의 생계문제이거나, 제주도 생태환경 훼손문제이거나, 한국 해군의 국토방위 임무와 관련된 자주국방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보다 더 본질적 진짜 이유를 쉬쉬 감추고 있거나 논외로 하려는 ‘불편한 진실의 은폐’가 근본문제인 것이다. 사태가 뒤엉클어져서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고 복잡해질수록,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근본문제가 무엇인가에로 돌아가서 국민전체가, 큰 정치하는 사람들이, 제주도민만 아니라 한국민 전체가 함께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제주 서귀포 항구에 해군기지건설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21세기 세계를 지배할 두 강국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경제적 힘겨루기 전초기지의 문제, 즉 한반도 전체가 미국편에 들어서 중·미간 군사경쟁의 기지 제공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를 계속 추진하면, 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 냉전체계 상황에서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강대국에 의해 분할점령되고 결국 6.25 한국전쟁의 비극을 맞았듯이, 소련 대신 중국이 다른 한쪽 세력으로 등장한 21세기에서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될 위험이 핵심문제인 것이다.
제주해군기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부의 명분은 설득력이 없는 포장술의 괴변일 뿐이다. 정부와 국방부가 제시하는 명분적 이유로서 든 것을 곰곰이 새겨보면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0%가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교통로를 안전하게 지킨다. 둘째, 국가 안보를 튼튼하게 한다. 셋째, 해군기지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개발에 상승효과를 주어 일자리 창출과 생계수입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제주도 동남북 바닷길에 중동, 소말리아 바다해적들이 출몰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안전하게 잘 운행되고 있는 바다뱃길에 무슨 해상교통로 안전의 변이 설득력 있는가? 둘째 이유로 말하는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는 목적이라면, 현재 가상적으로 삼고 있는 북한이나 일본을 경계하기 위하여 백령도나 울릉도에 해군기지 건설이라면 국민 10%라도 납득할런지 모르지만, 뜬금없는 제주도 남쪽 항구 서귀포에 해군기지 건설이 안보를 위한다는 말은 진짜 속셈을 감추는 소리다. 이때, 국가안보 운운하는 것은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 상정하는 미국과 일본의 논리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해군기지는 단순한 군함의 정박지가 아니라, 핵잠수함 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21세기 세계문명의 전개를 내다볼 때, 이웃나라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설정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진정 한민족의 안보와 평화를 도모하는 정책이란 말인가? 도리어 한민족은 21세기 세계평화를 위하여 최대강대국 중국과 미국의 화해자로서 전략적 조정자로서 역할을 할 세계사적 책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줄곧 미국의 우방국이라는 명분 아래 지나치게 미국의 세계 군사·경제 지배정책에 종속되어 온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변화된 세계질서 속에서 보다 중국을 알고 중국과의 평화적 군사, 경제, 문화 교류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반미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친미를 하더라도 미국을 무조건 짝사랑하는 것은 소박한 낭만적 감상이며, ‘불편한 진실’을 보려는 용기가 부족한 국민에 대한 국가의 우민정책이란 말이다. 미국은 1차적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하여 한국에 주둔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을 북한이나 중국의 군사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한미동맹의 명분은 미군의 한국주둔의 제1차적 근본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의 자국이익과 세계종주국 노릇 하려는 것이 제1차 목적이요, 한국방위는 제2차목적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직시하자는 말이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과 결과로서 주변지역에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가지고 주민을 호도하는 것은 너무나 치사하다. 제주군사기지가 강행된다면, 장기적으로 보면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변은 군사기지촌이 되고 말 것이다. 정부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언했고, 유네스코에 아름다운 자연으로 제주도를 소개했다. 서귀포 근해 생태계는 그 생물종의 다양성과 풍요함으로 그 보존가치가 온세계 생태학자들의 주목을 받는 터이다. 당장 눈앞의 물질이득의 유혹으로 제주 지역주민 일부가 해군기지 건설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제주도민 대다수와 그들의 후손에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꼴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한탄스러운 일은, 정부 경찰이나 안보기관단체들이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의 주민들, 동참자들, 지도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60년 전 제주를 피바다로 만든 4.3항쟁을 되돌아보게 할 만큼, 반민주적이고 반주민적이고 반생명적이고 시대역행적인 ‘공안정국’으로 몰아가려는 어리석음을 보인다는 것이다. 마을주민 대표 강동균씨를 체포연행하고, 시민운동가 문정현 신부를 경찰서에 구금하는 것 등 폭도를 다루듯이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국가공안팀들은 아직도 ‘좌경, 우경’ 논리로 시민의 저항권과 생명운동을 옥죄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공안통치’가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시민운동은 이미 세계사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 아시아교회 대표들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책임자들과 함께 강정마을 현장을 방문했고, 그들은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의 본질문제가 무엇인지, 지엽적 문제를 가지고 시시콜콜 논쟁하는 한국민보다 더 분명하게 보았던 것이다. 아시아교회 대표들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의 은폐된 진짜 목적은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처럼 미국이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여 군사전략적 우위확보를 하려는 것이고, 일본이 그 덕을 보려고 찬성하는 것이고, 중국의 동북아시아 및 세계 지배력을 견제하려는 군사적 대응전략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본질이라고 갈파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군비경쟁과 군사충돌을 부추기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날씨를 분별하는 일보다도 ‘때의 징조’를 분별하는 것을 그 예언자적 사명으로 갖는다. 보수화된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 지도자들은 이미 ‘때의 징조’를 분별할 줄 모르는 영적 장님이 되어서, 무조건 친미와 반공과 군사력 강화의 안보논리에 편승하고 앞장을 서는 슬픈 행태를 보이고 있다. 뜬금없이 보수적 기독교를 단합하는 기독교정당을 만든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들은 제주 군사기지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좌경화된 반국가적인 집단이라고 매도하면서 공안정권의 나팔수 노릇 하는 극우 종교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때의 징조’를 바르게 파악하고 온몸을 던져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진력하는 깨어있는 사람들의 중심부엔 비록 외롭지만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서 있음을 잊지 말고, 직간접적으로 제주도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와 세계를 ‘생명 평화 정의’가 숨쉬는 지구촌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여부는, 21세기 세계사 기본질서가 재편되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 미국와 중국이라는 군사경제초대국, 소위 G2국가 사이에서 경쟁적 적대관계를 부추길 것인가 아니면 평화와 화해의 역할을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우리 한국이 할 것인가의 갈림길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문제임을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깊이 각성하고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함석헌의 저 유명한 말처럼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