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들꽃피는편지] 내가 처음 만난 아이

야긴새벽이슬가정/ 함윤희 생활교사

"안녕하세요"

나랑 눈도 마주치지 않고 차가운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 얼굴을 마주보고 웃음을 짓지만 외면당하고 만다. 내가 그룹홈에 입사해서 처음 만난 아이는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던 아이였다. 그룹홈에 환상을 가지고 첫 직장이라는 곳에 문을 두드렸지만, 첫 출발은 씁쓸함과 걱정으로 시작했다.

"학교 자퇴서 내고 왔어요. 저 그냥 열심히 돈 모아서 자립할래요.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요!" 교사의 설득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자퇴서를 내고 알바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이 아이의 진심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적극적으로 돕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아이의 마음을 열어젖혀야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아이는 꾸미는 것과 놀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분주하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화장을 하면서 내 얼굴을 스윽 보더니 다시 화장을 한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서 "선생님이 예쁘게 화장하는 방법 아는데 가르쳐줄까?" 어색하게 "네"라며 짧게 말한다. 우린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머리를 예쁘게 묶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해준 밥이 맛있다고 했다. 한 참 뒤 내 이름으 물어보았다. 이제는 장난도 치며 농담도 하기 시작했다. 교사와 학생사이 보다는 언니와 동생사이 같은 마음으로 다가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마음이 봄에 눈 녹듯 빠르게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알바 첫 날이다. 아침 일곱시에 깨워달라고 교사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나는 약속대로 아침 일곱시에 깨웠지만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계속 10분만 이라고 외친다. 그래도 깨웠지만, 이제는 5분만이란다. 팔을 잡아 댕기고 귀에다 소리를 치고 얼굴에 물을 뿌려도 꼼짝하지 않는다. 그렇게 깨우길 30분만에 어렵게 일어나서 아르바이트를 다녀왔다. 그 다음 날부터 여지없이 일곱시가 되면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아르바이트에 가지 못하고를 반복하자 아르바이트에 잘리기를 반복하고 늘 거실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하루 종일 잠을 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먹고 또 자기를 반복했다. 계속 지켜보다 못해 그 아이의 첫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에 그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아빠랑 살기 위해 돈을 모으고 싶다고 말했을 때 교사인 내가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욕심도 많고 열정도 많아 보이지만 그것이 한 순간에 멈추고 다시 무기력해져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난다고도 했다. 앞으로는 지킬 수 있는 계획부터 세워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신도 지금의 자기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변하겠다고 도와달라고 말했다. 나는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함께 하자고 말했다.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것도 작심삼일이다. 또 다시 아르바이트를 나가지 않는다. 그럴 때 마다 다시 일으켜주고 지적도 해주고 격려도 해준다. 다시 무기력에서 일어나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고 좋아했다.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하기로 교사와 그 아이는 처음 같은 마음으로 초심을 다잡는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었다. 힘이들 때쯤 찾아가 쓴 소리를 해주고 격려도 해주고 힘들었지만 매일같이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그 아이가 지금 생각하고 힘들어 하는 모든 것들을 그저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드디어 일한지 한 달이 되고 첫 월급을 탔다면서 무척 뿌듯해했다. 그리고는 쑥스럽게 나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좋은 것을 사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한다. 다음에는 더 좋은 것을 사드리겠다고 말한다. 그 아이가 나에게 준 선물은 화장품이었다. 선물이 무엇이든 난 그리 개의치 않았다. 나와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켜주었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평범하고 당연한 삶일 수 있지만 이 아이에게는 무기력을 힘들게 이겨내고 한 달 동안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자기 자신을 무척 대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말없이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아이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었던 날이었다.

들꽃에 들어와 교사가 된 나는 아이들과 직접 부딪치며 함께 살아가면서 주변화되고 관심 밖에 있던 아이들의 삶을 피부로 느낀다. 너무 이른 나이에 가족이 해체되어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다는 것이 남모르게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 버린 아이들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힘이 많아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아이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보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사랑 받을 권리가 있으며 아픔을 치료하고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소중한 존재다.


글/야긴새벽이슬가정 교사 함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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