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그룹홈에 새로 입소한 아이의 회고글 일부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내가 중2 때였습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보육원에 귀가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게 되었고, 친구와 함께 '우리 가출할까'라는 말을 하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결국 처음 가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도 안가고 밤에 놀 수 있고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어 좋다고만 생각하고 가출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보육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후 마약에 중독이 된 것 같이 끊임없이 집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행도 하게 되고 경찰서에도 가보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심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내가 경찰서에 간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주거침입, 집털이 80만원 이상, 오토바이 절도, GS마트에서 술 쌔비다가 친구들은 구라쳐서 풀려남, 난 거짓말을 잘 못쳐서 보육원 선생님이 데리러 옴. 차털이- 5만원 현금카드 긁었는데 도난카드라고 해서 걸림, 아지트 만들어 살다가 시끄러운 바람에 주민들한테 신고당해서 밤에 8명 이상이 경찰차 타고 이동, 결국 경찰서 가서 강력반에서 진술 씀. 부산에서 오토바이 쌔벼서 경찰서 감, 가출 걸려서 지구대에 있다가 일시보호소에 하루 있다가 보육원 선생님이 데리러 옴.
언제 저런 사고를 쳤나 싶을 정도로 이곳에서는 학교도 잘 다니고(자기는 학교에 가기만 해도 큰일 하는 거라고 큰소리를 떵떵 칩니다) 집에도 꼬박꼬박 밤 10시 전에 잘 들어오고, 알림장을 보며 밤에는 영어숙제도 잘해 갑니다. 자기는 에너지도 많고 뭔가 해소를 해야 한다면서, 동네 남자애들이랑 같이 복싱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달라지고 성실해진 이 아이는 원래 고등학교 갈 생각이 없없는데 스스로 생각하던 중 ‘그건 너무 에바(형편없다는 의미의 은어)’기 때문에 2년제 고등학교라도 갈 것이고, 자기 내신성적이 형편없으니까 봉사라도 해서 내신성적 올려야 한다며 어디 봉사할 곳도 좀 알아봐 달랍니다.
며칠 전에는 더운 여름날 선풍기 앞에 누워 이런 저런 수다 떨다 담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요즘은 한 달에 받는 용돈 3만원을 담배 값으로 다 꼴아박는답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열 가치를 피니까 이틀에 한 번씩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새로 산다나요. 전에 살던 보육원에 있을 때는 한 갑을 피웠는데 그래도 이곳에서는 좀 나아진거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담배를 뜯을 때는, 자신이 직접 할 수 없으니까 동네를 슬슬 배회하다가 외국인들을 만나면 눈치보며 말을 건답니다. 한국인들은 잘 안 도와준다네요.
우선 툭툭치며 ‘헤이!’하고 인사를 하고는 시가레..바이..플리즈..한답니다. 그러면 대부분 흑인들이 잘 뜯어주는 편이고, 담배를 받고 나면 예의를 갖춰 ‘땡큐~’하고 꼭 인사를 해준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자기가 마치 길거리에서 담배 구하는 거지 같다는 생각도 해보고, 한 달 용돈을 다 꼴아박을 때는 돈이 아깝기도 하다며 자기를 돌아보기도 했답니다. 특히 언젠가, 30년간 담배를 피워서 눈이 썩은 사람 사진을 보고 '정말, 담배를 피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도 해봤다는데 그러고나서 10분도 안 되서 자기 손에 담배가 쥐어져 있더랍니다.
끊을 순 없지만 줄일 수는 있겠다며, 차라리 저보고 담배를 뜯어달랍니다. 한 달 용돈 삼만원을 다 맏길테니, 담배를 뜯어주고 자기에게 하루에 5가치만 주기를 한 달 해보고 그 다음엔 3가치로 줄여서 달랍니다. 교사한테 담배 뜯어달라고 하는 이 녀석이 황당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이 아이도 정말 잘 살아보고 싶은 것 같습니다.
공부 잘 해서 대학도 가고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과 활기찬 생활과 안정된 가정을 꾸리며 사랑을 주고받는 삶을 살고 싶은데,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답답하고 괜시리 마음도 안 잡히니 중학교 2년 동안 신나게 놀아제끼고, 자기 속을 풀어헤치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잘 살아보려는 그 아이 내면의 힘이 강렬하고 생기있게 느껴집니다. 이런 아이들이 잘 자라고 더욱 힘을 내도록, 그래서 자신의 어두운 과거에서 단순히 벗어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주역이 되도록 우리 지역사회가 더욱 따뜻한 토양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