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정 교수는 여성과 자연, 생명과 평화를 화두로 삼고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 ⓒ고동주 기자 |
지난 5일 열린 한국민중신학회 2011년 9월 세미나에서 구미정 교수(숭실대학교, 기독교윤리학)가 안병무 박사의 <선천댁>을 다시 읽으며 여성신학과 민중신학의 대화를 제안했다.
구 교수는 오늘의 여성신학 담론이 이 땅의 여성들에게 신명 나는 살림의 복음이 되지 못하고, 누구를 위한 여성신학인지 모르겠다고 평한다. 민중신학 역시 김기석의 말을 빌려 “사람들의 부풀려진 욕망을 내파할 힘을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학계의 주류 담론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천댁>을 통해 구 교수는 "여성신학이 서구신학을 수입하는 데 멈추지 말고 우리 역사에서 이어져온 민중여성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증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민중신학 역시 전 지구적으로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맘몬 우상의 술책에 맞서려면 여성신학의 통찰로부터 ‘신비’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구미정 교수는 ‘민중’의 개념화를 거부했던 안병무 박사가 ‘민중은 ∼이다’를 보여주기 위해 선천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며, ‘선천댁’에서 민중의 원형질을 끌어낸다. 안병무 박사는 마르코 복음의 ‘오클로스’를 우리말 ‘민중’으로 옮기면서, 민중은 '영토와 귀속 공간을 박탈당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열여섯의 나이에 시집을 가 ‘부엌데기’의 삶을 시작한 선천댁은 ‘출가외인’으로서 돌아갈 친정집을 박탈당하고, 시집에서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민중의 원형질로 볼 수 있다.
남편의 가출과 친정어머니의 죽음으로 선천댁은 ‘소박데기’가 된다. 그녀의 억울한 삶은 이후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바람난 남편을 발견하지만 남편을 따라 만주까지 가면서 친정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만주에서도 남편은 선천댁을 챙기지 않고 ‘바리데기’처럼 버려졌다.
심지어 한의사인 남편은 환자를 본다는 명목으로 출장만 다녀오면 여자를 ‘달고’ 돌아온다. 선천댁은 함께 온 여자를 돌봐주고 부부의 침실까지 ‘양도’한다. 선천댁은 영락없는 바보, 천치, 머저리이기만 한 것일까. 물론 밑바닥에서 바보처럼 억압받는다고, 이 이런 사람들을 모두 '민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한국민중신학회는 민중신학을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신학으로 발전시키고, 민중신학 연구자들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동주 기자 |
구 교수는 신영복의 말을 빌려 “민중은 당대의 기본적인 모순을 계기로 하여 창조되는 응집되고 증폭된 사회적 역량"이라고 말한다. 구 교수는 “선천댁이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고 돼지를 치면서 나름의 경제력을 확보하여 독립의 힘을 키웠다”며 “지금에야 사소해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 풍습으로서는 굉장한 도전이요, 저항이었다”고 평했다.
게다가 선천댁은 민중이 빠지기 쉬운 ‘가족이기주의’에 빠지지도 않았다. 없는 살림에서도 독립군을 돕는다든지, 동리의 부락제를 챙긴다. 심지어 연탄가스 중독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늙은 남편이 첩에게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선천댁을 찾아왔을 때도 두말없이 그를 거둔다.
구 교수는 여기서 민중의 원형질을 다시 발견한다. “매일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상의 ‘살림’을 통해, 그리고 ‘인생이 불쌍해서’ 흘리는 측은지심의 ‘눈물’을 통해 날마다 생명수를 흘려보내는” 선천댁(들)에서 민중이 드러난다고 것이다.
구 교수는 선천댁으로 체현되는 민중 자체가 ‘신비’라고 말한다. 배운 것 없는 ‘바보’가 어떤 계기를 통해 독립이라는 ‘자기성취’를 이루고 기득권자의 회개를 동반하는 과정을 현실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비’를 통해 발견되는 민중의 원형질로서 선천댁은 민중신학과 여성신학, 양편의 경계면을 부드럽게 녹이는 대화를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구 교수는 민중신학의 여성화, 여성신학의 민중화로 끊임없는 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2011년 9월 6일자 고동주 기자 godongsori@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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