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강남교회] 최고의 선물

2011년 9월 4일 설교자 전병금 목사

성경본문
 
요한복음 19:38-42절

설교문

세계 최고의 부자에게 “당신은 얼마의 돈이 필요합니까?”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또 가난한 사람에게 똑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대답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금만 더”였습니다. 지금 가진 것보다 조금만 더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몇 십만원이 없어서 모든 체면을 포기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고, 몇 십억이 없어서 사업에 지장이 있다며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상황이 다를 뿐 모두 다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은 참으로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무섭기조차 합니다.

제임스 피터슨과 피터 킴의 공저인 [미국이 진실을 말할 때]라는 책을 보면, “천만 달러를 벌수 있다면 어떤 일까지도 할 수 있는지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오”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5%가 자기 가족 전체를 죽일 수도 있다고 하였고, 또 25%는 한 두주 동안 매춘도 할 수 있다고 했으며, 7%는 낯선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금액이 2백만 달러까지 내려와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이 질문을 통해서 미국에서 사람의 가격은 200만 달러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돈을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그리고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행복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태도와 돈을 다루는 인격에 따라 돈은 행복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유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눅23:50)이면서 부자였던(마27:57)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의 시신을 거두어 마치 왕의 장례에서나 할 수 있는 처리를 해서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해 둔 묘지에 장사를 치렀습니다. 사람이 돈이 있다고 그 돈을 선한 일에 쓰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돈을 더 가지려는 탐욕에 사로잡히는 것인데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장례를 최선을 다해서 치러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사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은혜를 받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1.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전에는 주님을 슬프게 할 수 있습니다.

이들 두 사람은 유대 최고의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리마대 요셉에 대해서는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대해서 성경은 좀 더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는 일찍이 예수께 와서 중생에 대한 교훈을 들었습니다(요3:1-21).

그러나 이들 둘 다 숨은 신자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지위로 보아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인 것을 드러낸다면 그들이 받을 불이익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겼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에 대한 말이 나왔을 때 니고데모가 예수를 옹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회원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뒤 그도 예수에 대한 고소와 재판 때 침묵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를 고소하고 재판할 때 유력한 산헤드린 회원 가운데 마음먹고 예수를 지지하고 변명하는 발언을 했다면 아마 그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 독기서린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과 유대 군중들 앞에서 예수를 지지하는 권위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께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들은 너무 두려웠습니다. 공포심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칭찬도 찬사도 해야 하는데, 그만 살아 있을 때는 하지 못하고 죽은 다음에 후회하는 수가 많습니다. 부모님께도 돌아가신 다음에 묘지와 수의를 아무리 값비싼 것으로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생존 시에 한 송이의 꽃이 죽은 후에 마련해 주는 온 세상의 화환보다 값진 것입니다.
생존 시에 보내주는 사랑과 칭찬과 감사의 말 한마디가 불귀의 객이 된 후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 것보다 더 값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는 전혀 도움이 못되었습니다. 숨은 신자, 숨은 제자일 뿐입니다. 숨은 제자는 별로 필요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 영광이 안 됩니다. 혹시 여기에 숨은 신자, 숨은 제자가 있다면 자기를 드러내십시오. 나는 집사요, 권사요 장로인 것을 드러내십시오.

2. 예수의 사랑을 경험하고는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때 이미 제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좌절에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두려움이 없어졌을까요? 그는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경험하고 예수께서 자신의 죄와 사망을 짊어지고 비참하게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예수의 죽음으로 자신의 죄와 죽음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대담하게 로마 정부의 유대 총독 빌라도의 관정으로 쫓아가서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 처리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무덤이 예루살렘 근처 골고다 언덕 부근에 있었기에 그곳에 예수를 모시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으면 자기 시신을 묻기 위해 준비한 매장지를 예수께 내놓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에게 자기 매장지는 아주 중요했습니다. 저 세상의 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영원한 집인 최고급 무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니고데모 또한 비겁과 공포와 주저와 소심하고도 타산적인 마음은 사라지고 예수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곧 세마포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들은 살기등등한 주변 사람들의 위협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서서 자신들의 가장 좋은 것을 내어 예수를 장사지냈습니다. 그들은 공회원으로서 자신들에게 다가올 수도 있는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서 예수께 모든 예를 다한 것입니다.

수제자 베드로도 사라졌고, 다른 사람들은 예수의 장사를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숨은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모든 것을 다해서 예수의 시체를 모셨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십자가를 체험한 자의 모습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니고데모와 아라마대 요셉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관직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1907년도에 우리나라에 큰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10년에 한일 합방이 되자 우리 기독교인들이 눈물로 회개하며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구국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해에 승동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 이재형이라는 분이 참석했는데 이분은 철종 왕의 사촌인 경평군의 장남으로 존귀한 왕손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배를 드리는 중에 앞을 보니 아주 낯익은 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충주로 성묘를 갈 때 자기의 말고삐를 잡고 인도해 준 마부꾼 엄가라는 사람입니다. 더욱 반가운 것은 그가 바로 자기를 복음으로 인도해 준 전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재형씨는 너무도 반가워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예배시간이어서 참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예배를 마치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상놈인 엄씨의 손을 덥석 잡고 “형님 여기서 만나니 너무도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때는 하인이 주인집의 어린 자녀들에게 ‘도련님, 아씨’ 하던 시대였고, 양반 상놈의 차별이 심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양반이 상놈에게 ‘형님’ 하고 불러도 파격적인데 그보다 더 존귀한 왕손이 마부꾼 엄씨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일은 정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재형씨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 주님의 겸손을 배워 자신을 낮추며 겸손을 행하는 삶을 이루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늘같은 왕손이 상놈인 마부꾼 엄씨에게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겸손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결국 그 겸손한 왕손의 지체인 이재형씨는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아 목사가 되어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복음을 체험하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슈바이처는 독일에서 대학 교수의 제의를 뿌리치고 아프리카에 가서 평생을 예수의 피묻은 십자가를 전하였고, 언더우드 선교사는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일생을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체험하고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여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3. 예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놓아야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그 귀한 무덤을 드리고, 니고데모는 예수의 시체를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가져와 쌌습니다. 너무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물론 그들은 부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전 재산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재산의 작은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귀한 것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부자라고 주님께 헌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쓰지만 주님께 드리는 것은 인색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결코 인색하지 않고 주님께 드렸습니다. 주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놓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입니다. 보통 자신이 소유한 재물은 자신의 행복과 가족을 위해서 쓰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행복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 하피스라는 낙타지기 소년이 있었는데, 거상인 주인의 딸 리자를 사랑했습니다. 하피스는 낙타지기라는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서 아름다운 리자에게 청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인에게 상인으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검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주인은 상품 마차에서 새 겉옷 한 벌을 꺼내 그것을 하피스에게 주면서 그것을 팔아오라고 했습니다. 하피스는 베들레헴 근처 한 마을로 옷을 팔러 갔습니다. 꼬박 사흘을 그 가난한 마을에서 보내면서 그 옷을 팔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옷을 파는데 실패한 하피스는 주막 근처 동굴 속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았습니다. 하피스는 순간 동정심이 발동하여 자기가 가지고 온 옷을 아기 몸을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서 그 아기에게 주었습니다.

이제 빈손이 된 하피스는 주인에게 돌아가는데 그 머리 위에 별 하나가 떠서 줄곧 그 뒤를 따라오며 반짝거렸습니다. 하피스는 상인으로서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고 그 옷마저 아기에게 주고 애처로움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오는데 그 뒤에는 별이 따라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집에 다다랐을 때 주인이 그의 머리 위에 있는 별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하늘의 광채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그 만외도의 [아카바 선물]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참 인간성을 갖춘 하피스의 가슴에 가득한 사랑과 동정심이었습니다. 얄팍한 상술로 그 겉옷을 파는 데는 실패했어도 그는 사랑과 동정으로 하늘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하피스에게는 동방박사들에게 따르던 별이 따라 주었고, 그 주인의 신뢰를 받게 되었고, 아름다운 리자와 결혼도 하고 부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 영광 돌리고 헌신하여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처럼, 니도데모처럼 주님께 헌신합시다. 여기에 우리의 가치가 빛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 사랑에 감사하여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자그마한 일이라도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아름답게 감당하면 주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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