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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헌 칼럼] 빌리티스의 딸들 앞에 서다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최근 KBS2TV에서 “드라마 스페셜 –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이 방영된 후로 이에 대한 찬반논란이 거셌다. 기사를 통해 ‘빌리티스의 딸들’이란 명칭이 미국의 첫 레즈비언 단체 명칭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동성애 주제를 다루게 된 것은 이미 오래 된 사실이다. 필자가 40대인데 필자의 어머니 대학 동기 중에 동성애 성향을 가진 이가 있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 현상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최의헌 원장
그런데 같은 동성애를 다루더라도 심하게 욕을 먹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작품도 많다.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하자면 중국영화 ‘패왕별희’는 호평을 받았고 드라마 ‘커피프린스’도 애매하게 비껴서 동성애를 다루었지만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는 찬반 논란의 중도에 있었다가 이번 드라마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진 것 같다. 소위 욕하면서 본다는 드라마 시청 심리를 생각하자면,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은 무관심한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이다. 그래서 최근 많은 드라마가 막장을 달리더라도 그러한 내용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제작자의 고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동성애는 사람들을 자극하여 논란을 부추기기 좋은 주제가 되므로 한동안은 작품에 꽤나 자주 등장할 것이라 예상된다.

‘빌리티스의 딸들’이 동성애 당사자를 의미한다면 빌리티스의 딸들 앞에 서 있는 나는 그들을 바라보는 군중 혹은 일반인일 것이다. 나는 지금 군중의 일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빌리티스의 딸들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 군중은, 무턱대고 동성애를 비난하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가 몇몇 동성애혐오자들의 글이 올라올 때 군중심리에 휩싸여 같음 목소리를 내게 되고 심지어는 자기와 다른 의견이라도 거기에 합류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표적이 되는 작품은,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다. 비난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 작품들은 동성애가 왜 나타났는지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한다. 인간사에는 다양한 결과가 있는 것처럼 어쩔 수없이 동성애라는 결과를 낳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윤리적인지 여부와 죄인지 여부는 비평의 문제로 넘기자. 그러므로 작품에서 충분히 상세한 설명이 될 만한 앞뒤가 나오면 군중은 그렇게 심하게 돌을 던지진 않는다. 저질 에로영화처럼 밑도 끝도 없이 옷을 벗고 성적흥분만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면 불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기승전결이나 전후관계 없이 동성애 주제를 던지면 우리는 혐오감을 갖는 것이다. 하긴 저질 에로영화를 몰래 탐닉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주제가 자극적이면 기승전결이 없을 때 더 짜릿한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물론 우리 누구에게나 그런 ‘이상한 짜릿함’이 ‘조금씩’은 있다고 보는 게 인간심리학적으로는 옳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과 친밀해지려는 원초적 욕구가 있으며 그것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가족여부를 구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욕구는 인생을 살아가며 다듬어지고 그 원초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상은 이성의 애인 혹은 배우자뿐이고 그 외의 영역에서는 적당히 혹은 철저히 금지된다. 가장 심하게 금지되는 영역이 동성과 가족이다. 그래서 정신분석과 같은 초심리학에서는 동성애와 근친상간이 중요한 심리주제가 되는 것이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우리 누구에게나 동성애와 근친상간의 욕구가 존재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면서 동시에 철저히 차단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와 문화의 잣대에 따라 그렇게 커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언가 인간 본성이 ‘원하기는 하되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는 신호를 주기 때문이다. 그 신호와 가장 가까운 것이 불안이다. 불안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에 대한 심리적, 신체적 반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동성애와 근친상간에 대한 불안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가능성을 자르고 전면적인 거부를 나타내는데 그것이 ‘혐오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역겹다는 것은 입에 닿거나 목으로 넘어간다는 상상을 전제하듯이 심한 거부는 그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군중이 군중심리에 의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막상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누어서 자세히 이야기해보게 할 때 적절한 논리성에 따라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휩싸여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조차 모른다면 그것은 불안과 혐오감에 의한 반응이었다고 결론이 나는 것이다. 더구나 동성애 주제가 애매하게 전개된다면 그 강도는 더 심할 것이다. 동성애 주제는 그러하다. 우리가 그 주제를 좀더 적나라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면 그 주제는 우리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저 작은 작품 하나가 우리 윤리를 통째로 흔들거나 많은 사람을 한 순간에 유혹할 것이라는 비평을 드높일 이유가 없어진다.

군중의 동성애 비난을 높이는 주제 중 ‘여성’이 있다는 필자의 조심스러운 판단을 이야기해본다. 우리 시대가 많이 남녀평등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 격차가 존재한다. 과거 사탄으로 오해를 받아 죽어간 수많은 남녀가 있었지만 남성을 지칭하는 호칭은 없고 여성을 지칭하는 ‘마녀사냥’이라는 호칭은 있다. 혐오감을 갖는 군중의 입장에서 남성동성애와 여성동성애는 별반 다를 게 없으나 여성동성애는 군중의 여론몰이를 하기에 훨씬 유리한 것 같다. 이는 여성이 회자되기 좋은 대상이고, 상대적으로 힘의 논리에서 약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군중의 주체는 남성이거나 가부장적 방식의 ‘남성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중 혹은 관찰자의 심리를 고려하지 않으면 대상자의 심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우리 자신의 시각을 관찰해보는 것, 우리의 불안과 혐오, 그리고 힘의 논리를 직면하는 것이 우선이다.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연세의대 외래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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