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교회] 최선의 열매

2011년 9월 18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58:6-8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머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아멘.

디모데전서 4:4-5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21:18-22
새벽에 성 안으로 들어오시는데,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마침 길 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그 나무로 가셨으나,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렸다.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서 말하였다.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당장 말라버렸을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아멘.
 
설교문  
  
오늘 감사절을 맞이했는데 뭘 가지고 감사하러 오셨습니까? 뭘 감사하고 싶습니까? 혹시 일상에서 평안하게 살다가 갑자기 감사하라고 하면 생각이 잘 안 나시죠? 갑자기 무슨 일 당하고 특별한 일이 생기면-거금을 취하게 되었다든가, 주변에서 너무 좋은 일이 있다던가, 자기가 너무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하려고 마음도 생기고 감사를 합니다. 그런데 일상 속에서 감사를 어떻게 할까? 제가 지난주에 경험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경험하셨지요. 지난 목요일입니다. (저도) 갑자기 오후 3시쯤 되니까 전기가 나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한창 일하다가 (전기가) 나갔는데, 놀라기도 했고, 화도 났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유도 모르겠고...나중에 언론, 신문·방송을 통해서 알았습니다만, 전기수요 측정을 잘못했고, 이미 더위가 간줄 알고 발전소 발전기를 쉬게 했다가 전기생산도 못했고...여러 가지 불찰로 인해서 전 국민이 30분씩 돌아가면서 4시간동안 정전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4시간 중에서 저한테 정전된 30분 동안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여러분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면서 제가 (한참 오래전일인데요) 98년 처음 평양을 갔을 때 경험했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호텔에 묵었습니다. 하루 종일 나가서 안내원을 따라 구경을 하고 6시쯤 돌아와야 하는데, 일정이 빨리 끝나서 4시에 돌아왔습니다. 너무 더우니까요, 땀은 철철 흘렀죠. 돌아왔는데 전기는 없지요. 제한송전입니다. 덥지요. 세수 하려고, 샤워하려고 탕에 갔더니 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안내하는 사람들한테 물었더니, 아니 6시에 오신다는 분들이 2시간이나 빨리 와가지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느냐? 이유가 뭐냐 했더니, 전기가 5시 반쯤 오니까 그 때 물을 받아서 넣으려고 했다. 여러분이 빨리 온 게 잘못이지 우리가 물 없는 게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기다렸는데요, 밥하려고 모아놨던 물 갖다 주면서 세수하라고, 목욕은 나중에 하고. 겨우 땀을 씻어내고, 얼굴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기가 왔어요. 한 참 전기가 왔는데, 밥 먹고 좀 있다 보니까 전기가 갑디다. 그리고 안와요. 제한송전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 제가 전기가 끊어졌다 4시간 전기가 올 때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하나님 감사 합니다” 그랬습니다. 그 생각이 나서 지난 목요일에 일을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전기는 항상 오는 거고, 24시간 있는 거고, 끊으면 제가 끄는 거지. 전기가 제한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4시간 중에서 정전된 30분 동안 불필요한 불만을 떨어놨습니다. 이런 일이 이 땅에 없어야 됩니다. 선진국에서는 말도 안 되죠. 제가 반성 한 게 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23시간 30분 동안의 전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저는 한 번도 전기가 있다는 걸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산 일이 없습니다. 당연한 거니까요. 아마 이 땅에 있는 사람들도 4시간 빼고 20시간 동안 감사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전기가 없는 동안 분노를 발했습니다. 이게 우리의 일상입니다. 왜 나쁜 일이 있고, 불쾌한 일이 있으면 분노를 발하면서, 평시기, 하지만 조용하지만 늘 상 있는 좋은 일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이 없이 살까? 감사는 특별할 때만 하는 건가? 일상에서는 하는 게 아닌가? 제가 지난 목요일 분노도 터뜨리고 반성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감사예배를 드리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무슨 감사를 일상 속에서 드리고 싶어 합니까? 혹시 깨닫지 못했지만 감사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면 지금 감사를 하시지요. 예수께서 하신 이야기 하나를 오늘 성경말씀대로 소개합니다. 새벽녘에 예수께서 배가 고프셔서 시내로 들어오다가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하나를 보았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어디에나 있는 거니까. 열매가 있으면 누구나 따먹습니다. 그날 예수는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무화과나무가 잎사귀가 파랗고, 싱싱한 걸 보고 열매있으리라 생각하고 갔는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아마 성경 말씀에는 안 쓰여 있는데요. 엄청나게 화났을 겁니다. 전기가 갑자기 나간거랑 같은 거예요. 그래서 예수 말씀이 “이 나무야 완전히 말라 비틀어 죽어라”.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 나무한테 저주 하십니까? 저는 이상하게 생각해요. 그러나 사건은 사건 이예요. 그래서 저주받은 무화과나무가 즉시 바싹 말랐습니다. 예수의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 보고 누가 잎사귀의 푸르름을 보이라고 했냐? 배고픈 나한테는 잎사귀 없어도 좋고, 나무가 말라도 좋은데 열매를 가지고 있어야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아무리 외양이 좋아도 나무가 파래도, 싱싱해도 열매 없는 무화가나무는 자기의 본질을 못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의 말씀은 무화과나무를 통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말라 비틀어 죽어라. 제자들한테 말씀하십니다. 지금 봤지? 기적을! 너희들도 나를 믿고 의지하면 내 이름을 빌어서 무화과나무야 없어져라 하면 없어 질 거고, 산을 보고 산이 움직여서 바다로 빠져라 하면 빠질 것이다. 기적을 너희들도 행사할 수 있다.

단 예수의 말씀의 핵심이 이것입니다. 외형으로 보이는 기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적의 속에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나무 열매를 맺는 게 본질이다. 사람은 뭐냐 하면? 사람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본질이지 사람답지도 않으면서 외형만 뻔지릇 하다고, 키가 크고, 재산이 많고, 출세했고, 외형이 크다고, 사람 속에 사람답지 못한 것이 있으면 예수님 말씀은 “필요 없다!”. 사람은 사람다움을 하나님께 감사로 드립니다. 어떤 사람 마음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입니다. 제가 우스운 이야기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성악 가르치는 교수 한 분이 계셨는데요. 이런 농담을 하는 걸 들어 보았습니다. 자기 제자 중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있는데, 학생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성적이 좋습니다. 음악사뿐만 아니라 영어도 잘합니다. 성적이 항상 최고에 속합니다. 이 분 걱정이 그런데 성악과 학생이 노래를 잘 못해요. 이게 고민인거예요. 제가 그 말을 듣고 저를 생각합니다. 저한테 목사를 시켰더니 목사가 해야 하는 일은 잘하지 못하고 엉뚱한 다른 외형적인 것만 잘한다. 그러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입니다. 사람마다 무화과나무처럼 다 사람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서는 축복이라는 이름하에 열매를 맺게 해 주셨습니다.

나무가 여러 종류의 나무 인 것처럼, 사람도 여러 종류의 사람 인 것처럼, 나라도, 집도, 세상도, 문화도, 문명도, 다 다양합니다. 똑같은 열매가 아닙니다. 열매 자체가 중요하지 열매 종류는 다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사업하면 좋다고, 그래가지고 똑같이 물려서 사업을 했더니 사업이 성공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공을 문학으로 해서 성공했는데, 나도 문학하면 될 것 같다고 문학을 전공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금메달 따면, 나도 금메달 따고 싶어서 금메달 종목에 도전합니다. 누구나 인간은 최고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열매를 못 맺으면 무화과나무와 같은 운명이 됩니다. 예수님 말씀은요, 무화과나무는 그자체로 좋고,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나무 열매를 맺는 걸로 하나님이 축복 주신다. 감나무는 감만 맺으면 된다. 고추나무는 고추만 열면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상대에서 최고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것 중에 갖고 있는 가장 귀한 것, 가장 중심에 있는 것,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가장 최선의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창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하십시다. 나는 왜 다른 사람보다 못났습니까? 월급이 적습니까? 지위가 낮습니까? 이렇게 불평하지 마시구요. 나에게 주신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을 나에게 주셨으니, 내 최선을 감사하겠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최고는요 인간이 만든 상대적 가치입니다. 최선은 하나님이 주신 절대적 가치입니다. 오늘 각자 가진 최선을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님 이 최선을 내가 세월이 나빠도 좋아도 하나님 앞에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살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최선을 위해 기도하고 감사한 사람은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보태 주십니다. 최고가 아니라고 불평하고 교만한 사람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의 능력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 장로교 사람들이 갖고 있는 교리가 있습니다. 교리 중에 가장 핵심 교리 중에 하나가 웨스트민스터 신조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 영국가보셨죠? 런던에 가면 성당이 하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성당. 이 성당에서 1647년에 장로교 지도자들이 모였습니다. 모여서 우리가 고백할 교리 하나를 고백하자고 해서 만들었는데, 그 교리 중에 하나가 웨스트민스터 신조 1조 입니다. 1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동시에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기는 일입니다. 이상하지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건 알겠는데, 하나님을 즐기랍니다. 하나님 갖고 놀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엔조이 갓(Enjoy God). 그런 말씀 보셨습니까? 하나님 엔조이하라고요. 하나님의 축복은요, 나한테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것 만 내가 바라는 게 아니라 나를 갖고 놀아라. 나를 즐겨라! 나하고 놀자, 나하고 춤추자. 어떻게요? 하나님이 그런 줄 알고 하나님을 제가 가지고 놉니다. 하나님이 내편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축복 주셨으니까 내가 하나님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한테 갔더니 하나님 말씀이 나를 갖고 놀라면 내가 어디 있는지 보고 갖고 놀아라.

제가 이 말씀을 구약의 말씀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나는 지금 부당하게 결박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나하고 놀자. 어떻게 하시렵니까? 나는 지금 불명예를 부당하게 당한 사람한테 가서 위로를 베풀고 있다. 나하고 놀자? 날 즐겨라. 나는 지금 굶주린 사람한테 가서 먹을 것을 베풀고 있다. 나를 즐겨라. 나는 집이 없어 떠도는 홈리스피플에게 가서 내가 지붕이 돼 주고 있다. 나를 찾아 즐겨라. 그리고 나한테 영광을 돌려라. 하나님은요 우리한테 주신 축복이 나 혼자 탐욕을 가지라고 축복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민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저를 제 옆에 사는, 앞에 사는, 뒤에 사는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라고 이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즐깁시다. 이웃과 함께 사는 하나님을 즐깁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즐기는 사람은 오늘 말씀대로 보면 하나님이 계신 구석진 곳, 하나님이 계신 억울한 사람이 있는 곳, 하나님이 계신 위로를 받을 사람이 있는 곳, 그 곳에 가있는 하나님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즐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즐기시랍니까. 이웃사랑을 즐기세요. 하나님 예배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사랑으로 즐기세요. 이 두 가지가 사실은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핵심이었습니다.

오늘말씀대로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다 선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 없습니다. 오늘 디모데전서 말씀입니다.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 것임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는 모든 것이 선합니다. 하나님 대신 내가 있는 곳에는 선한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산사람이 영광 받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숨이 끊어진 죽음 속에서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모든 만사에 우리는 영광과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자식을 잃거나 사람을 잃은 경험 가진 사람 많죠? 애석합니다. 저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창창한 나이에 할 일도 못하고 생명을 잃어구나. 얼마나 서럽습니까. 한창 일할 중년 나이에 목숨을 잃으면 막 일 할 나인데 너무 아깝다. 일하다 중단됐으니. 노인이 돼서 돌아가시면 당연하게 아니죠. 마무리 잘 하셔야 하는데, 마무리 할 시간도 안주시고 데려가셨구나. 사람이요 언제 가느냐하는 것은 우리의 슬픔이지만 항상 슬픔 속에는 더 해야 하는데, 모자라는데, 채워야 하는데 사람은 모든 가 다 완벽함을 원합니다. 풍성함을 원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하셔야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완벽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합니다. 아무리 많이 성취해도 모자랍니다. 결핍은 우리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까? 완전한 구원은 지금 받은 게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오셔야 완전히 구원받습니다. 지금은 구원받아가는 중간 과정에 있습니다. 똑같이 우리의 생명도 지금까지 이루어주신 하나님 은혜감사하면 오늘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 하나 감사할게 있습니다. 감사로 받지만 내가 살아보지 못한 미래-젊은이가 펼치고 싶었던 미래, 중년이 열심히 일하려고 했던 미래, 노인이 정리하고 싶었던 미래 그것은 꼭 사람이 할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 은혜 감사합시다. 오늘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시다. 또 하나, 앞으로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것도 미리 믿고 감사합시다. 채워주시는 것은 제가 아니고, 슬픔이 아니고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세워주시면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몽땅 모두어서 감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과거도 살아계셨고, 앞으로도 살아 계실 겁니다. 미래를 향한 우리의 여유 욕심으로 모든 인생을 주관하는 것이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여백, 여유, 미래의 열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묘한 은총 중에 하나입니다. 그 은총을 제 욕심으로 채우기보다 하나님의 무궁하신 은혜로 채웁시다. 오늘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할 수 있는 날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앞으로도 지켜주실 하나님 미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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