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하느님의 선하심과 돌보심에 푹 빠져 살았던 예수

제2회 지금여기 특강, 정양모 신부와 소희숙 수녀 '우리시대의 예수' 이야기

‘우리시대, 예수 다시 읽기’라는 주제로 원로 성서학자인 정양모 신부와 해방신학자인 소희숙 수녀의 예수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특강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관으로 지난 10월 15일 예수회센터 성당에서 70여 명의 참석자들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정양모 신부

정양모 신부는 ‘예수,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가는데 예수께서 제시하신 길을 따른다”면서, “나는 조상님들 덕분에 예수 코스를 밟게 된 것을 천행으로 여기면서 나날이 감사하게 살고 있다”고 감회를 밝혔다.

정 신부는 최근 다석 유영모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유대인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 예수 사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로마 세계에 전파한 사람들의 신앙관을 담은 신약성경, 그리고 2천년 동안 서구인들이 쌓은 신앙과 신학 전통을 수용하는 한편, 그 전통을 내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애쓴다”며, “옛 글을 즐기면서 그 글의 까닭(故)을 묻는다(溫故而知新-논어, 위정, 11)”고 전하며 자신의 심정을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 1598-1680)의 시 한 수를 빌려 드러냈다.

성인을 노래함 聖人吟
성인과 같은 때에 나지 않아서 不生聖人時
성인의 모습 뵐 수가 없지만 不見聖人面
성인의 말씀은 들을 수 있으니 聖人言可聞
성인의 마음은 볼 수 있네 聖人心可見
아빠 하느님, 예수는 '부자유친'(父子有親) 영성 가져

정양모 신부는 예수에 앞서 하느님을 살피고, 그 비전 안에서 에수를 보고, 예수의 비전 안에서 그리스도인을 바라보았다. 정 신부는 먼저 예수의 설교 주제가 ‘하느님 나라’인데, 직역하면 하느님의 왕정과 왕국일 텐데, “임금들이 통치하는 시대는 지났으니 만큼 왕정이나 왕국은 한물 간 표현”이라서 “순 우리말로 하느님의 다스림”이라할 수도 있고, 그저 “하느님의 베푸심․선하심․돌보심”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느님에 대한 예수의 생각은 하느님을 점잖게 아버지,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아빠”라고 불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영향으로 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을 “아빠”라고 불렀다. “아빠”는 본디 어린아이의 말(소아어)인데, “부자간에 정이 넘치는 호칭”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영성은 ‘부자유친’ 영성이라고 말한다.

아빠 하느님은 그분의 선하심에서 나타나는데, 사례로 선한 포도원주인의 비유(마태 20,1-16)에서 “포도원의 선한 주인이 일한 양보다 가련한 노동자의 처지를 동정했다”는 점에서 찾았다. 또한 탕자 귀가 이야기(루가 15,11-32)에서, “회개하는 죄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찾았다. 덧붙여 렘브란트(1606-1669)가 죽기 일 년쯤 전에 그린 명화 ‘탕자 귀가’ 그림을 소개하며, “눈이 거의 감기다시피한 연로한 아버지가 붉은 망토를 걸치고, 무릎을 꿇은 차남의 등을 어루만지는데, 한손은 남자 손이지만 또 한 손은 여자 손이다! 무슨 뜻일까? 부정과 모정을 다해서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 담긴 상징적 손 모양새다”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진주 장사꾼의 비유’(마태 13,44-46)를 소개하며, “예수께서 고향을 등지고 직업을 팽개치고 어머니 공양과 동생들 부양을 저버린 까닭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베푸심과 돌보심에 매료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정양모 신부는 “1935년 음력 11월 6일에 태어난 나는 태어난지 3일 만에 공소회장 큰 할아버지로부터 바오로라는 영명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나는 숙명적으로 천주교인이 되었다. 나는 이를 고맙게 여긴다. 1961-1970년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서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늘 감사한다. 1970년-2001년 광주 가톨릭대, 서강대, 성공회대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예수그리스도 연구를 계속한 것을 천행으로 여기고 사은의 정을 품는다."고 말햇다.

 하느님 아빠처럼 연민 가득한 분, 예수

정양모 신부는 “이처럼 하느님의 선하심과 베푸심과 돌보심에 푹 빠져 사신 예수시라, 인간에 대한 연민이 넘친다”고 전한다. 특히, 사람이면서 사람대접을 못 받고 산 세리들과 죄인들을 감싸신 말씀들과 행적들에서 감동을 전한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예화(루가 18,9-14), 예리고의 세관장 자캐오의 구원 이야기(루가 19, 1-10), 그리고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 이야기(요한 8,1-11)를 통해 파격적인 예수의 마음을 전한다.

세관원들은 국경 세관에서 늘 이방인들과 상종하고 외국 물품을 다룬 까닭에 항상 불결 상태에서 산다고 여겨졌다. 거기에다 정액보다 더 받아서 폭리를 취한다고 해서 사기꾼으로 통했다. 그래서 회당 예배와 성전 제사에 참석할 수 없었고, 범죄 현장을 목격했더라도 유대교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수도 없었다. 예수 당시 세리는 조선조의 백정, 광대보다 더 고약한 천민이었다. 요즘 세상에서 예를 든다면 인도의 불가촉천민(달리트) 취급을 받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리들과 수시로 사귀고 함께 어울려 식사하셨기 때문에 심한 욕을 얻어먹었다.

예수가 이들과 먹고 마시니까, “보아라.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구나”라고 말한다. “이런 쌍욕을 듣고 가만히 계실 예수”가 아니기에, 이렇게 폭탄선언을 한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세리들과 창녀들이 바리사이들과 율사 여러분보다 앞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것입니다.”(마태 21,31). 이처럼 예수는 안식일보다 사람의 평안을 앞세우고, 제사보다 자비를 중시하고, 정결례보다 마음의 순결을 중시했다.

예수 코스 따라사는 그리스도인

한편 정양모 신부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값을 하자면 별 수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익히고 닮아야 한다”면서, 하느님께 가는데 ‘예수코스’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예수 코스란 먼저 사랑의 쌍계명을 따르는 것이다. 유대교는 계율이 성한 종교라서, 613가지 계율 가운데서 248가지는 명령이고 365가지는 금령이다. 예수는 잡다한 이 계율들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환원시켰다.

“다석 유영모(1880-1981)는 유가의 표현을 빌려 하느님 과 우리의 인연을 부자유친이라고 했다. 불가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부모가 없는 사고무친이고, 유가는 부자유친을 혈연관계에 국한시킨데 비해서, 예수는 부자유친을 영원한 차원에까지 확대해석했다고 풀이했다. ‘이웃사랑’은 글자 그대로 ‘이웃부터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나날이 상대하는 이웃을 소홀히 하고 인류애를 부르짖는 것은 공허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이 천박하게 들리면 연민이라 해도 좋다. 이웃 사랑은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에서 시작하는 까닭이다.”

한편 예수는 산상수훈을 일종의 ‘방향규범’이라며, 예수는 이를 언어충격요법으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를테면,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금령이 있는데, 예수는 살인 이전에 분노하는 것조차 금한다. 분노하면 쉽게 입에서 튀어나오는 “바보” “천치”라는 욕설조차 금했다. 분노와 욕설 따위도 이웃사랑을 금가게 하는 까닭이다. 한편 “예수는 이웃사랑을 거스르는 분노와 욕설을 금하셨지, 의분과 정당한 비판까지 단죄하셨다고 볼 수는 없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보복하지 말라’는 뜻에서 나온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시오. 오히려 누가 당신의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그에게 다른 편 뺨마저 돌려대시오. 당신을 재판에 걸어 당신의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겉옷마저 내어주시오. 누가 당신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시오. 당신에게 청하는 사람에게는 주고, 당신에게 꾸려는 사람은 물리치지 마시오”라는 말은 “그야말로 예수님의 언어충격요법”이라는 것이다. 즉,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의 이중계명 테두리 안에서 이 세부적 지침들을 이해하라고 권한다.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정양모 신부는 도법 스님이 발표한 〈21세기 아쇼카 선언 초안〉을 소개하면서, “그 내용이 매우 진솔해서 큰 감명을 받고, 내가 가는 예수코스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열린 진리관= 불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진리는 특정종교나 믿음의 전유물이 아니다.
- 종교 다양성의 존중=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종교도 소중하다. 이웃 종교에 대한 관용이란 소극적 차원 넘어 그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전법과 전교의 원칙=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의 실현이 궁극적 목적이다.
- 평화를 통한 실천= 종교 간 갈등과 충돌은 사람의 일이지, 종교적 가르침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 간 갈등이 오더라도 평화로운 방법으로 평화를 이뤄간다.
정양모 신부는 프랑스 리용 가톨릭대학를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성서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광주가톨릭대학과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그동안 한국천주교 200주년 신약성서 주석판 시리즈를 번역했으며, <사도행전 이야기>, <믿고 알고 알고 믿고>, <성서를 읽는 11가지 방법>, <이스라엘 성지> 등을 지었다.

소희숙 수녀, 예수에게 배울 것은 '예수 자신'

▲ 소희숙 수녀.

소희숙 수녀(툿칭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는 ‘우리시대의 예수, 도대체 무엇을 배울까’라는 주제로 강의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마음과 지혜를 배울 것”을 주문했다.

소희숙(스텔라) 수녀는 “예수에게서 배울 것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예수 자신’이라며, 성령은 바람처럼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말들이 예수에게서 나올 수도 있다고 ‘예수의 고유함’을 강조했다.

소 수녀는 “젊고도 건강한 청년. 활기차고, 힘있고, 호탕하면서도 섬세하고, 미소와 유모어와 웃음이 그치지 않는 분. 반면에 불같은 성격, 분노하고, 도전하는 논객이며, 독설과 폭언도 마다않는 싸움꾼”으로 예수를 체험한다고 전했다. 이어 예수는 “눈동자는 명철하고 더없이 맑지만, 밤낮으로 돌아다니느라고 얼굴은 지저분하고, 옷은 더럽고, 냄새나고, 옷 갈아입기도 쉽지 않은...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냄새나는 분”이며, “지혜가 넘치는 현인이며, 시대의 스승이요 철학자이시며, 교육자, 동시에 사회개혁을 외치는 사회참여운동가, 개혁자”이며 “당당하면서도 늘 기도하는 분. 그리고 목숨도 마다 않는, 사랑과 정의에 대한 열정과 힘이 있는 분”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예수는 “하느님 뜻을 이룸에 가진 바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멋진 분”이라는 것인데, 우리는 큰바위 전설처럼 “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자주 만나는 사람을 닮아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소희숙 수녀는 “그분은 폭력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비폭력주의자가 아니다”라며, “그분은 필요없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필요하면 폭력도 서슴치 않았고, 폭언도 퍼부었다”고 말한다. 복음서에서 “나는 평화를 주러오지 않고 칼을 주러 왔다” “불을 주러 왔다”는 구절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악 앞에서는 타협이 없이 당연히 분노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그분은 부자도 아니지만 가난 예찬자도 아니다”라며, “다만 필요로 하는 것이 적은 분이셨을 뿐”이며, 이는 그분의 ‘지혜’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예수는 떠돌아다니셨기 때문에 집도 필요 없었고, 밥솥도 여벌 옷도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 하나이며, 여기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다른 것은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자유로이 투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는 “가난한 이는 진복자니까 다들 가난해지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며, 어쩔 수 없는 가난 앞에서 “울고 싶은 마음으로 진복팔단을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전했다. 

▲소희숙 수녀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게서 그 마음과 지혜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우리는 모두 '예언자'로 불리움 받았다

소희숙 수녀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게서 그 마음과 지혜를 먼저 배워야 한다면서, 예수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믿음) 안에서 “늘 하느님을 찾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았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느님과 동행했고, 하느님께 생명까지도 맡기신 분”이며, 무엇보다도 “자비와 연민으로 가득차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세상의 가장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의 ‘지혜’와 관련해서, “예수는 언제나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았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눈으로 시대를 식별했으며,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는데, 그 사명은 곧 ‘희년법’에서 나온 것이다. 희년이란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인데 모든 빚은 탕감되고, 잃었던 땅을 되찾으며, 종들은 해방되고, 죄인은 풀려나고, 누구도 더 이상 눈물 흘리는 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는 정의로운 세상, 억울함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기쁨’이 되는 해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 희년법이야말로 ”메시아의 사명이자, 예수의 사명이고, 단식의 기원이며, 주의 기도의 내용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당연히 ‘예언자’일 수밖에 없다. “입술로는 하느님 운운하지만, 마음은 하느님을 멀리 떠나 있고, 하느님의 계명은 저버리고 사람의 계명을 교리로 가르치며, 사람의 전통을 세우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물리치고 있는 위선자들과 권력층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는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을 바라신다는 희망의 징표가 된다”고 말한다.

소희숙 수녀는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예언자로 불리움을 받았다”고 강조하며,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해 부여받은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의를 행하면 하느님께서 먹을 것, 입을 것,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다는 믿었던 예수처럼” “우리 자신이 예언자로 불리웠다는 것을 믿으라”고 강조한다. “하느님의 뜻을 잣대로 세상사를 식별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덧붙여 “지금도 우리는 ‘아담아, 너 어디 있냐?’ ‘카인아,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하는 음성을 듣게 된다고 전했다.

소희숙 수녀는 툿칭포교 성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소속으로,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원에서 해방신학에 관한 논문을 썼으며, 현재 서울 고척동에 있는 탈북자쉼터인 '성베네딕도의집'에서 일하고 있다.


2011년 10월 17일자 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기사제휴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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