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환경에 대한 신학적 이해>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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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한 교수 |
올 여름 비가 평년의 2.5배쯤 왔다. 이 엄청난 비가 온난화 때문이라고 확정적으로 말할 방법은 없다. 우면산 자락이 무너지던 7월 27일 서울에 내린 비가 301mm였다. 1920년 8월 2일에도 하루 354mm까지 내린 일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강수량 증가를 온난화와 연결짓지 않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전국 평균기온은 1980년대 12.6도에서 1990년대 13.0도, 2000년대 13.3도로 거의 규칙적으로 상승해왔다.1) 기온이 올라가면 바다에서의 수증기 증발량이 늘어난다. 그리고 도심지에 매미떼들의 습격과 우는 소리는 소음으로 여름잠을 설치게 할 수준이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당하면서 다시 한 번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우리 의식을 깨우친다.
인류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물과 공기, 땅의 혜택을 50년 뒤 후손들은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지난 50년 동안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이미 지구상 생태계의 약 3분의 2가 손상됐거나 고갈됐기 때문이다. 2005년 밀레니엄생태계평가위원회는 세계 95개국 과학자 1,360명의 연구내용에 근거해 작성한 환경보고서에서 "지난 50년간 지구생태계에 일어난 변화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도 속도가 빠르고 정도가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이로 인해 기상 변화, 새로운 질병 출현, 동식물 멸종, 삼림 훼손, 수질 오염 등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30일 경고했다.2)
근대화가 기계기술에 의하여 정원(庭園)인 지구를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개발함으로써 오늘날 포스트모던 사회에 와서 근대화가 초래한 후유증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탄산가스의 과다배출,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기후의 변화, 북극 얼음이 사라질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의 위기는 기계기술주의 세계관에서 생태학적 세계관으로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요청하고 있다.3)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해서는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 역할의 새 인식, 유기체적 생태학적 사고, 생태학적 세계관, 생태윤리의 각성이 요청된다.
I.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 역할의 새 인식 : 인간은 자연(생태) 환경의 정원사
1)자연은 인간의 동료창조물, 인간은 청지기
구약의 창세기는 인간은 만물의 정원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지혜문서인 시편도 여러 구절에서 자연은 인간의 동료 창조물이며 인간은 관리자라는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시 8:6).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 8:3).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 8:9).
구약성서의 "창조의 시편들"(시편 8편, 19편, 104편)이 해와 빛, 하늘과 땅의 수확에 대하여 감사드릴 때,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해와 빛, 하늘과 땅의 수확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해와 달과 하늘과 땅, 동물과 식물은 그 자체의 존재로서 창조자를 경배한다.
2)창조를 성례전 공동체로 재인식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그의 은사로서 근본적 성레전적 존재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자연은 말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와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차원적인 언어와 감정으로 피조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성례전적 행위에 있어서 피조물을 대리한다. 여기에 인간의 제사장적인 차원이 있다. 창조를 찬양하는 인간은 창조물의 존재에 경탄하면서 우주적 예배 의식(儀式)(kosmische Liturgie)을 드린다. 우주는 인간을 통하여 창조의 영원한 노래를 부른다.4)
3)창조의 성례전적 공동체
만물은 인간 없이도 하나님의 영광을 자연의 원(原)언어로써 선포하기 때문이다. 시편 19편은 자연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존재론적 언어를 말하고 있다. 이 존재론적 언어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다음 같이 노래한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소리가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 19,2-4상). 여기서 창조의 성례전적 공동체(eucharistische Gemeinschaft der Schöpfung)가 이루어진다. 이 창조 사귐은 창조자 앞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인간은 자연과 진정한 교통을 하고자 한다. 여기서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로서 인식되고 인간은 자연에 대한 책임성을 인지하게 된다.
II. 유기체적 생태학적 사고: 땅의 지배에 대한 생태학적 이해
린 하이트(Lynn White)는 그의 논쟁적 논문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뿌리"(On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5)에서 생태학적 위기의 주된 책임은 기독교의 창조명령에 있다고 보았다. 하이트는 기독교의 창조신학을 인간중심의 세계관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의 창조신학이 인간과 세계의 대립이라는 이원론을 야기하고 오늘날 생태계 위기의 주범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이트는 기독교를 "세게에 유례 없는 가장 인간중심적인 종교"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실상은 반대다. 기독교는 가장 신중심적인 종교이다. 하이트의 견해는 분명히 기독교 창조신학에 대한 오해이다.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과 땅의 통치(dominium terrae) 사상이란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하고 있다. 성경은 창조의 목적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과 영광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의 목적이었다. 이 안식일에 하나님은 그의 창조의 영광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우리는 창세기의 창조명령을 인간중심이 아닌 신주권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III. 생태학적 세계관의 필요성
몰트만은 그의 [창조 속에 계시는 하나님](Gott in der Schöpfung)에서 생태학적 사고를 제시하였다. "인간은 지배하기 위하여 더 이상 인식하지 않고 재구성하기 위하여 분석하거나 환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오히려 참여하고 생명있는 것과의 상호관계 속에 들어가기 위하여 인식하고자 한다"6). 생태학적 사고는 하늘과 땅이 오로지 인간만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데카르트적 세계상을 극복한다. 창조공동체(Schöpfungsgemeinschaft), 전체성(Ganzheitllichkeit) 또는 연대성(Solidarität)의 표상은 인간주도적 세계상을 극복하는 데 첫걸음이다. 근세 이래 인간의 역사는 공작(工作) 인간의 세계상징(das Weltsymbol des homo faber)이었다.
근대가 설정한 지식의 길은 생태학적 사고가 제시하는 지혜의 길로 대체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태학적 세계관이다. 지식의 힘의 획득과 지배를 추구한다면, 지헤는 세계의 실재성의 압박 아래 그리고 사실의 양심 아래 오늘날 병들고 어려움 속에 있는 것들을 밝히고 드러낸다. 지혜는 명상적 인식(meditative Erkenntnis)의 새 형식을 추구한다. 지혜는 세계를 하나님의 창조로서 파악하며 세계를 더 이상 관조자의 소원(疏遠)으로부터, 다시 말하면,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점차적으로 내면으로부터 세계와의 참여적인 관게 속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미국의 생태신학자 하워드 스나이드는 [2000년대 지구동향]에서 다음 같이 피력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지구를 분리된 부분이나 서로 다른 나라들로서가 아닌 하나의 전체로 보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작은 지구가 아닌 커다란 지구이다. 그리고 이 지구가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고 있다."7) 오늘날 세계관은 종합적인 비전으로서 전체이론을 추구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전체이론"이라는 용어는 네 가지 물리적인 힘(중력, 전기자력, 강원자력, 약원자력)에 대한 이론적인 통합이라는 과학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IV. 생태 윤리의 각성
유기체적 생태학적 사고는 생명과 책임의 윤리를 강조한다. 책임의 윤리는 지구 위의 인간과 자연을 보존시키기 위한 생태이상사회의(ecotopian) 윤리이다.8) 이러한 윤리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과 비슷하다. 부모의 책임은 "모든 책임 있는 윤리의 원형"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허가를 받은 후에 사랑을 베풀거나 서로 호헤적으로 은혜를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다. 부모가 갖는 책임윤리의 기본적 유형은 "다행스럽게도 어떤 원리에서 도축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태 속에서 심어진 인간애", 즉 모성애(maternal humanity)이다. 이러한 윤리는 자기주장이 아니라 자기초월적이다.9)
미래학자 루츠(Rüdiger Lutz)가 제안하는 부드러운 전향(sanfte Wende)이란 소극적으로 산업주의자들의 개발사고와 기계기술주의자들의 팽창사고로부터의 전향을 말한다. 이 전향은 적극적으로는 창조세계에 대한 신뢰적인 개방을 말한다. 그것은 근대과학적인 자연개념의 변화를 의미한다. 근대적인 세계상에 있어서 자연은 단지 물질, 사물, 객관으로서 계산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연개념에서 근대 서구적 사고에 깊이 스며든 자연에 대한 착취사고(Ausbeutungsmentalität)가 유래하였다. 공감적 세계상이란 이러한 지배적이고 객관적인 세계상에서 결별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별이란 그러나 문명도피나 석기시대로의 퇴각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통하여 파괴적인 행위강요의 해소를 말한다. 그것은 기술, 산업과 소비의 생태학적인 전향을 말한다. 그리고 피조물과 인간의 필요 사이의 조심스런 일치를 말한다. 자연과의 공감을 갖는다는 것은 새로운 기술, 근본적으로 변화된 산업, 다른 삶의 방식, 변화된 국제 정치 그리고 새로운 다른 모럴을 의미한다.
독일 생태신학자 균터 알트너(Günter Altner)가 제시하는 바 같이, 새로운 모럴은 옛 지배와 착취 이상(理想)의 포기를 위험한 소유강요로부터의 해방으로 느끼고, 그리고 이웃사랑을 넘어서서 동료창조물성(Mitkreatürlichkeit)으로 나아가는 공감에의 능력(Befähigung zu einer Sympathie)으로 느끼는 것이다.10) 이 새로운 모럴은 인간의 원죄성에 속하는 교만(hybris)을 인정하고 이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 교만이란 우리 인간을 자연에 대한 청지기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망각하고 자연에 대한 지배자가 되고 우주에 대한 지배자가 되려는 원죄를 말한다. 이러한 근대이성의 신(神) 콤플렉스(Gotteskomplex)가 자연을 총체적으로 착취함으로써 생태계의 총체적 파괴와 위기를 산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로운 생태학적 모럴은 자연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이 책임이란 수용에서 오며 공감과 나눔에의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자연과의 일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 일치나 공감은 범신론적인 융합이 아니라 창조자와의 관계 안에서 자연을 하나님의 선물이요 창조로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맺음말
자연을 신격화하거나 단지 물질로 보지 않고 자연을 성례전적 존재로 보는 것이 바로 기독교 생태학적 사고의 핵심이다. 자연은 신성을 가진 것도 아니며, 단지 세속적 물지로서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하거나 착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게 사용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성례전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학적 세계관의 정립, 개발과 실천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인류의 새로운 과제이다.
1) [한삼희의 환경칼럼] 80년 후엔 '홍수 리스크' 2배 된다, 한삼희 논설위원, 입력 : 2011.08.19 23:33, 조선일보, 2011.8.20.A31
2) 밀레니엄委 ‘지난 50년의 환경’ 보고서, “참치·상어 90% 줄어… 신종질병 발생 우려,” 이자연 기자 achim@chosun.com 입력 : 2005.03.31 19:28 53' / 수정 : 2005.04.01 04:57 25'
3) 김영한, “생태학적 세계관,” 포스트모던시대의 세계관, 서울: 숭실대 출판부, 2008, 321-360
4) J. Moltmann, Gottt in der Schöpfung. Ökologische Schöpfungslehre. München 1985. 84
5) Lynn White, “On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1967), reprinted in 'This Sacred Earth: Religion, Nature and Environment', edited by R.Gottlieb ,184-193
6) J. Moltmann, Gott in der Schöpfung, München 1985, 18
7) Howard S. Snyder, EarthCurrents: The Struggle for the World's Soul, Abingdon Press, 1995, 김현석 역, 『2000년대 지구동향』, 아가페 출판사, 24
8) Hans Jonas, Das Prinzip Verantwortung, Versuch einer Ethik fuer die technologische Zivilization, Surhkamp taschenbuch, 1984. derselber, Technik, Medizin und Ethik, Praxis des Prinzips Verantwortung, Suhrkamp Taschenbuch 1987
9) 정화열, "자연과 인간: 포스트모던의 지평“, 『인간다운 삶과 철학의 역할』, 1995년 한민족 철학자 대회, 대회보 1, 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