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라는 스위스 신학자는 1946년 그의 말년에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와 시민들의 공동체”라는 소책자를 출간했다. 이 책은 그의 정치신학의 마지막 발전단계를 서술한 글로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 혹은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성 그리고 국가질서와 그리스도교 메시지 사이의 상호 상응성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에서 제시한바 있는 논제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세계” 안에서의 교회와 국가는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질서들은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상응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바르트는 시민들의 공동체인 국가는 개인들의 자유, 공동체의 평화, 사람들의 연대적 공동생활을 보장하는 정치적 과제를 갖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들은 보편타당한 법질서를 제정하는 의회, 그 법질서를 집행하는 행정부 그리고 갈등들을 해결하는 사법부에 의해서 관리되게 된다.
국가에서 국회의 법제정과 행정부의 실행 그리고 사법부의 판단들은 바르트에 의하면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세계”에서는 피상적이고 상대적이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국가의 상대적이고 잠정적 법제정, 법집행, 법적 판단 등은 뭔가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준거를 필요로 하며, 여기서 국가라는 시민공동체의 법질서는 교회라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방향에서 검토되고 비판되어야 한다. 시민공동체(국가)에 대한 이러한 교회의 요구는 유럽의 역사에서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늘의 시민과 지상의 시민”(civitas coelestis et terrena)나 스위스의 개혁자 츠빙글리의 신적 정의와 인간적 정의라는 주제를 통해서 유럽의 국가의 법질서 형성을 관통해 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라인홀드 니부어는 “근사성”(Approximation)이라는 표제어를 통해서 미국의 국가질서가 기독교적 질서에 근사하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바 있다.
바르트에 의하면 국가의 삼권분립은 성서에 나타나 있는 은사(Charisma)의 다양성(고전 13장)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국가가 바른 법질서를 유지하려면 입법, 행정, 사법부의 다양성과 함께 독립성이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행정부가 입법부나 사법부 위에 군림할 때는 삼권분립의 질서, 즉 이것들의 다양성과 독립성이 훼손되고 따라서 독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로마의 삼두정치는 삼권분립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에 이론적 근거를 둔 것으로서 국가의 이러한 법적 질서의 보장과 유지가 제반 권력남용과 갈등들을 해소하는데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신학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독자적이면서도 일치하게 상호 관계되고 작동하는 것처럼 국가에서는 입법, 행정, 사법부가 독립적이면서 상호 협력하는 관계로 기능할 때 국가는 자유와 평화와 연대성을 보장하는 집단이 된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국가의 삼권분립이라는 법질서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 지난 연말 국회파행사태는 행정부가 자기당인 한나라당을 이용하여 국회의 독립성과 존엄성을 훼손한데서 시작되었다.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외교통상위원장 박진은 야당의원들의 회의참석을 차단한 채 한나라당의원들으로 미국과의 FTA 법안을 날치기로 상정했다. 또 한나라당은 방송통신법과 국정원법 등이 포함된 다수의 법률안을 입법부인 국회의 법제정 절차를 무시한 채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강요하여 통과시키려고 했다. 이것은 국회는 물론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야당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독재적 발상이고 행태다. 국가권력이라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어떤 것보다도 공공성의 성격이 강한 것이어서 어떤 개인이나 정당이 독점하거나 독단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최근의 사법부의 행태도 매우 우려스럽다. 여당에 대한 봐주기 수사와 야당이나 반대세력에 대한 편파수사가 그렇다. 예를 들어, 서울시 교육감선거와 관련된 수사에서도 공정택교육감에 관한 수사에서 많은 부분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그 반대편에 섰던 후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하게 수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결과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깊은 불신이 생겨 그 독립된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최근의 행태는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리를 부인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이 정부가 정치적으로 문민독재로 변질 될 것으로 매우 우려스럽다. 또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적이며 반민중적이고 반노동자적 경제정책들은 가난한 자들과 힘든 서민들을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매우 위험한 도박행위다.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되뇌면서 의회나 사법부를 시녀화하고 야당들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려는 태도는 상생과 공영을 근대적 가치로 추구하는 국가운영의 목표를 무시하는 것이다. 기독교 장로로서 또 기독교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업고 청와대에 들어간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의 행태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전이 아니라 그 후퇴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이명박 대통령의 행태가 그렇지 않아도 땅에 떨어진 개신교의 신뢰성에 더 큰 위기를 가져올까 염려된다.
손규태 성공회대학교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