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77)(마지막편)

세계 교회 에큐메니칼 운동




제18장 세계 교회 에큐메니칼 운동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말은 ‘우주’ 또는 ‘세계’를 뜻하는 희랍어 원어 ‘oikoumene’에서 온 것이어서 ‘전 세계적인 것’이란 뜻인데, 세계의 모든 교회를 한 집안 권속으로 삼는 운동을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신도는 “하나님의 온 집안 사람”(히 3:6)이라고 말하였다. 오늘날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 지구상의 모든 교회를 하나님의 한 집으로 그리고 그 교회의 모든 신도들을 한 가족 또는 권속으로 생각하고 일치와 협력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하는 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일찍이 325년에 니케아 세계교회 회의를 열었다. 이때 로마제국 영토와 다른 나라에서 온 교회대표들이 모여서 모든 나라와 지역의 교회가 하나의 교회로서 신앙고백과 교회행정과 생활에 관한 문제를 공동으로 의논하고 결정하는 교회의 정치원리를 창출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에큐메니칼 회의정치의 효시가 된 것이다. 325년 니케아회의 때는 318명의 감독이, 제2차 회의 때는 감독 150명이, 제4차 때는 630명의 감독이 모였고, 제7차 때는 니케아에서 모였다.

중세기 로마교황청의 교권이 너무 강력해져서 교황이 지상의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면서 교회의 회의정치원리는 쇠퇴해 갔다.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많은 개신교 교파들이 생겨나 교회일치를 찾기 어려워서 개교파주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가, 19세기 말에서부터 나눠진 교회들의 일치와 연합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어서 여러가지 모양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일어났다. 물론 그 운동들은 소규모 운동이었지만 교회 일치에 대한 염원의 표시였다. 그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청년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친교와 협력을 모색한 것이다. 19세기 중엽 이후로 미국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 곧 부흥운동의 물결이 학생들을 감화시켜서 학생들의 자발적 해외선교운동(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이 조직되어,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를 거쳐 선교사가 되어 세계 각지로 나갔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영국에서는 학생그리스도교운동(S.C.M.)이 조직되었고, 이 청년들과 학생들은 자기들이 속한 교파의 교리나 신학이나 제도에는 관심 없이 저희들끼리 하나가 되어 선교운동과 학내운동을 전개하면서 그 힘과 규모를 키워 갔다. 학생들과 청년들은 교파주의에 반항한 것이었다. 이때 그 학생들 중에서 지도력을 발휘한 사람들이 후일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구자들이 되었는데, 영국의 대주교 윌리엄 템플(W. Temple)과 라인홀드 니버(R. Niebuhr) 교수와 존 맥카이(K. Mackay) 프린스턴 신학교 학장과 반두센(V. Dusen) 뉴욕 유니온신학교 학장과 그 밖의 여러 저명한 교회정치가와 교수들이었다.

1. 에큐메니칼 운동의 태동

19세기 중엽 이후로 미국의 제 1차와 제2차 대각성 부흥운동으로 교파의식이 약화되었다. 부흥사의 교파를 묻지 않고 부흥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해외에 선교사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파 교회에 선교회가 없으면 타 교파 선교회에 지망했다. 런던선교회는 완전히 초교파적이었고 중국의 허드슨 테일러가 조직한 수백 명의 선교사들은 다른 교파의 교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선교회가 많이 생겨서 해외의 선교지에 나간 선교사들은 협력할 필요성이 많았다. 선교모국에서는 불가능했던 협력사업이 선교지에서는 초교파적으로 필요하여 출판, 교육, 의료사업 등을 초교파적으로 해서 선교비를 절약하며 선교사들의 인적 자원을 공용(共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교협력사업을 위하여 초교파적인 세계선교대회가 열리기 시작하여 1854년에 뉴욕과 런던에서, 1860년에는 영국 리버풀에서, 1878년에는 런던에서, 1888년에도 런던에서, 1900년에는 뉴욕에서, 1907년에는 옥스퍼드에서 열렸고, 가장 획기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였다. 1928년 예루살렘 선교대회 때는 한국 대표로 정인과, 양주삼, 신흥우, 김활란 등이 참석했다.

이러한 세계선교대회는 각 교파의 신앙과 제도와 교리와 신학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선교를 위한 협력을 모색하였다. 1910년 에딘버러 대회 때 1,700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중 17명의 피선교지의 대표(현지인)들이 그 대회에 준 감명과 자극은 대단히 컸다. 이 대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한 사람들은 선교지의 현직 선교사들이었다. 동남아 지역에서 선교하던 모트(J. R. Mott), 브렌트(C. H. Brent), 패이톤(W. Paton)과 그 밖에 영국 교회의 윌리엄 템플과 네덜란드 개혁파교회의 올담(J. H. Oldham)과 신학자 베일리(J. Baillie)와 T. W. 맨손(Manson) 등이었다.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는 향후의 세계교회 일치와 연합운동의 진로를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선교대회 회원은 각 교파와 단체의 정식대표로 할 것과, 대회를 광범위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과거에는 영미 교회가 주도했던 것을 앞으로는 국제적인 대회가 되게 할 것과, 그것을 위해서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차이는 불문에 붙일 것 등이었다. 그리고 1921년에 국제선교협의회(I.M.C.)가 정식으로 조직되어서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 조직체가 되었다. 선교대회가 단순한 회의로 끝나지 않게 되었고, 유급 상임 간사와 직원들을 두어서 각 선교회와 선교모교회들이 선교정보와 부고를 교환하고, 선교사업을 계획하고, 선교전략을 공동연구하고 기타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선교모국과 피선교지에서 교회연합회를 설치하여 교파 간의 선교협력과 선교회 사이의 협력을 효과 있게 만들었다. 1908년 미국 개신교의 교회연합회의 조직을 효시로 하여 각국의 교회연합회가 조직되었는데, 한국의 연합회는 1924년에 조직되었고 이것이 오늘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전신이다.

이와 같은 교회연합운동의 기운을 타고 각종 개신교 청년단체들이 초교파적으로 조직되어서 다양한 사업을 개시하였다. 1844년에 YMCA가 조직되었고 YWCA는 1855년에 조직되었고 1886년에는 학생자발운동(SVM)이 조직되었고 1895년에 세계기독학생연맹(WSCF)이 조직되었다. 교파 간의 협의회도 각국에서 모였다. 1855년에는 인도에 와서 선교하던 70여 선교회들이 회의를 열고 연합사업을 의논하였다. 또 교파별의 세계연맹들이 조직되었는데 19개 교파로 나눠져 있던 동방정교회들이 연합체를 만들었고, 영국성공회와 개혁파교회와 루터교회와 회중교회와 침례교파들이 각각 세계적인 연맹체를 조직하여 나눠져 있던 가족교회들끼리 연합하고 친교하고 협력하게 되었다.

교파 합동도 있었다. 본래 같은 가족이었다가 많은 교파로 갈라졌던 교회들이 완전히 기구적으로 합동하여 하나가 된 교파도 있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1800년까지 18개 교파로 나눠져 있다가 4개 교파로 합동되었다가 1929년에는 하나의 장로교회로 합동되었다. 1860년에는 캐나다에 21개 교파가 있었는데 1925년에는 장로교, 감리교 및 회중교회가 합하여 하나의 캐나다 연합교회를 만들었다. 필리핀에서는 1929년에 장로교와 회중교회와 연합형제교파들이 하나의 교파로 합동하였다. 이러한 교파 합동은 에큐메니칼 정신과 운동의 결실들이었다.

2. 생활과 사업, 신앙, 직제 연구위원회

1925년에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린 회의는 미국의 교회연합회와 국제교회친선연맹이라는 단체와 영국의 정치 경제 및 시민권 회의라는 단체가 발기자가 되어 그리스도교의 「생활과 사업」(Life and Work)이라는 위원회를 만들어서 복음의 사회적 관심을 가진 개신교인들과 로마가톨릭 신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결합하였다. 이 회의는 세계평화와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교리는 갈라지게 하되 봉사는 연합하게 한다”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이 회의는 교회가 대외적 문제에 관심을 쏟게 해서 내부적 분열을 막자는 생각도 하였다. 이 회의의 참석자들은 거의 모두가 교회목회자들이어서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였으나 앞으로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이 회의에 동참할 것이었다.

1927년에 스위스 로잔느에서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라는 한 연구회가 생겼다. 이 회의는 교파 간의 교리와 전통의 차이를 솔직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신학적 노력을 목적으로 하였다. 과거에는 서로 남의 교파의 신학이나 제도를 논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모여서 토론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솔직하게 다른 점들을 드러내놓고 토론할 만한 교파 간의 이해와 아량이 그동안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교파 사이와 국제 간에 생겼던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들의 친선과 신뢰가 각종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성공회와 루터교회에서는 이 신학적 토론과 연구에 취미를 가졌고,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도 취미를 가졌었다. 이 연구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교회의 분열을 싫어한 사람들이었다.

이 연구회에서는 크게 두 가지 전제를 내걸었다. 하나는 ‘지상의 그리스도 교회는 본질적으로나 의도적으로나 체제상으로 하나이다’라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교의 통일성 또는 일치(unity)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교회의 유일한 토대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연구회는 참된 그리스도교회는 하나이며 그리스도와 교통하고 있는 교회는 다른 교회와 서로 교통하는 참된 교회(true church)라고 주장하였다.

「생활과 사업」 위원회와 「신앙과 직제」 연구위원회가 조직된 후 이 두 운동을 지도하던 사람들이 그동안의 수많은 에큐메니칼 연합단체들을 하나로 합친 세계적인 한 연합운동체를 만들 생각을 가졌다. 「생활과 사업」 위원회는 그동안 교회의 국제적 및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교회의 정치적 및 사회적 참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연합과 협력의 효과를 경험하였고, 「신앙과 직제」 연구위원회는 교파 간의 상호 이해를 넓혀서 교리나 신학의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나라는 신념을 확산시켜 왔다.

1933년 5월 영국 비숍드롭(Bishopthrope)에서 많은 에큐메니칼 단체들의 통합을 논의하기 위하여 영국성공회의 대주교 윌리엄 템플이 10인의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을 자기 관저에 초청했다. 국제선교협의회 측의 J. H. 올담과 W. 패이톤과 「신앙과 직제」 측의 H. N. 베이트(Bate)와 「생활과 사업」 측의 W. A. 브라운(Brown)과 「교회친선협의회」 측의 V. 아문드젠(Ammundsen)과 청년단체의 대표 C. 길론(Guilon)과 W. A. 비서트후프트(Visser’t Hooft) 등이었다. 이 회의에서 세계교회협의회와 같은 그리스도교 통합단체를 조직할 것을 의논하고 1937년 여름에 영국에서 동시에 「신앙과 직제」와 「생활과 사업」 두 위원회의 대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1935년에 미국 프린스턴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에큐메니칼 단체의 통합을 다시 논의하였다. 그리고 1937년 7월에 런던에서 모여서 「신앙과 직제」와 「생활과 사업」 두 단체를 먼저 하나로 통합하기로 결정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체가 되는 조직을 만들기로 하고 그 이름을 「세계교회협의회」(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WCC 조직준비위원 14명을 정하여 이들이 WCC 조직준비에 들어갔다.

1938년 히틀러가 제 2차 세계대전을 발발시켜서 WCC 조직준비위원들의 활동이 조금 부자유스럽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시에도 준비작업을 계속 추진하는 한편, 전쟁피난민들을 위해 구제 활동을 벌이고 전쟁포로들에게 군목을 파견하여 그들 사이에서 목회하게 하였다. 1938년에 인도 마드라스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을 때 여러 나라의 NCC(교회연합회)가 참석하여 IMC(국제선교협의회)에 가입하였다. 이때 한국의 NCC가 IMC에 가입하지 못한 것은 조선총독부가 NCC를 해체시켜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3. WCC 총회

1948년 8월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WCC의 제 1차 총회가 개최되었다. 준비위원회가 세계 그리스도교 모든 교파와 단체들을 초청장을 보내면서 초청장에 쓰기를 “세계교회협의회는 성서의 기록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친교이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가 받은 소명을 함께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것이 WCC의 헌장이다. 되도록 많은 교회가 참가할 수 있게 그리스도교의 근본 신앙의 고백을 헌장으로 하여 참가조건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때 147개 교파가 44개국으로부터 참가하였고 대표는 351명이었다. 이 대회의 연구와 토론 제목은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design)’이었다. 이 주제는 네 가지 분과항목을 가지고 토론되었다. 그리고 이 대회는 8개 부서를 정하여 교회 간의 협조, 피난민 구제 사업, 연구사업, 청년사업, 신앙과 직제 등을 위하도록 했는데, 이 사업들을 위하여 400만 불을 모금하기로 결의했다. 종교개혁 이후 400여 년 동안 분열만 일삼고 친교와 협력이 전연 없었던 그리스도교가 처음으로 화합하여 친교와 협력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서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교회연합운동이 실현된 것은 실로 제 2의 오순절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WCC 헌장에는 첫째, 초청장에 명시된 대로 간단한 기본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는 회원이 될 수 있으며 둘째, 가입을 원하는 교회는 WCC 총회에서 회원교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이 제시되고 있다. 다음으로 WCC의 기능과 목적은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와 공동생활을 통하여 표현되는 같은 신앙과 같은 성만찬을 나누는 가운데 모든 교회가 하나이며 일치성을 가지고 있음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며, 온 세계가 믿을 수 있게 이 일치성을 더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모든 교회가 모든 곳에서 공통적인 증거를 잘할 수 있게 뒷받침하고 셋째, 교회의 세계적인 선교와 복음전도를 지원하고 넷째, 인간요구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국민 간의 장벽을 부수고 정의와 평화를 수호하며 다섯째, 교회의 일치와 예배와 선교와 봉사를 새롭게 하고 여섯 째, 각국의 NCC를 비롯한 모든 연합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마지막으로 「신앙과 직제」, 「생활과 사업」 및 IMC와 세계기독교교역협회 사업을 실천해 갈 것 등이다.

또한 WCC의 권위를 규정하기를, WCC는 회원교회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연합운동을 하도록 상담과 기회를 제공하되 회원교회들을 규제할 어떠한 법이나 규정을 만들지 않으며, 이미 암시된 사업과 금후에 WCC 헌장이 허락하는 일 외에는 어떠한 모양으로도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WCC의 권위와 직능은 WCC가 세계교회라는 어떤 새로운 교파를 만든 것도 아니고 회원들 위에 군림하는 초월교회와 같은 조직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가톨릭교회를 대항할 어떤 한 강력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WCC는 어떤 특정 교파를 지지하지도 않으며 어떤 신학과 교리를 지지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또 어떤 정치이념 아래 결사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WCC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희구하고 친교와 협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단체이다.

WCC는 7년마다 총회를 열기로 하여, 1954년에 제2차 총회가 미국 에반스톤에서 「세계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어 아래 48개국 161개 교파 600여 명의 대표들이 회집한 가운데 열렸다. 제3차 대회는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는 표어 아래서 열렸고 이때 IMC와 WCC가 통합되었다. IMC는 WCC 내 「세계 복음전도와 선교」 위원회로서 그 기능을 존속하게 되었다. 이렇게 7년마다 총회를 열게 되는데 현재 WCC의 회원교파는 140개 국가의 349개 교파이고 2013년 부산에서 제10차 총회가 열릴 것이다.

WCC 회원교회들 중에는 희랍정교회처럼 보수적인 신학을 가진 교파도 있고 미국 장로교회처럼 진보적인 신학을 가진 교파도 있고 오순절교회처럼 열광적인 교회도 있다. 그러나 WCC 회원교회들은 다 다른 회원교회들을 자기 교회처럼 참교회(true church)로 인정하고 신앙과 체제의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로 생각하고 친교하고 협력한다. 그리고 WCC의 총회의 결의가 회원교회를 강제하지 않아서 각 회원교회는 자유를 가지고 협력할 수 있는 것에 협력한다. 그러나 오늘날 WCC 회원이 된 교회들은 WCC 사업과 활동에 이의를 달거나 반대하는 교회가 없을 만큼 일치가 이뤄져 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WCC의 회원이 아니지만 WCC의 「신앙과 직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활동과 사업에 정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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