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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8)

7. 정신여학원의 어머니 김필례 (4)

김필례 선생이 일본 유학을 마친 후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일생동안한 일은 너무나 방대하고 다양하여 그 과정을 한 줄기의 전기(傳記)로 기록하기가 난삽(難澁)하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그의 업적을 분야별로 구분하여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자니 자연히 앞뒤의 순서에 혼란이 올 수도 있음을 말해둔다. 

① 정신여학원 교사
 
동경여학교를 졸업한 김필례는 정신여학원 루이스 교장의 주선으로 1916년에 조선으로 돌아와서 정신여학원 교사로 봉직하게 되었다. 과목은 주로 역사를 가르쳤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치면서 우리 민족의 위대성과 일본 지배의 부당함을 체계 있게 주입하였다. 이 일은 훗날 학생들이 3.1운동에 참여하여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 때 그의 제자들이 쓴 일기장은 김필례 선생의 가르침이 감동적으로 기록되었다. 일본 경찰이 학생들을 심문할 때에 그들의 일기장을 찾으려 했으나 김필례의 지혜로 그 일기장들을 학교 교정에  있는 홰나무 고목의 뚤린 자리에 감추어 두어 저들이 찾아내지 못했다.
 
학교의 건물은 세브란스 의학교의 세브란스 자신이 큰 돈을 헌납하여 붉은 벽돌 3층 건물을 건축되었다. 그러나 훗날 학교의 체계가 확립되고 발전하여 더 큰 건물과 강당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김필례는 재산이 있는 유지들과 정부 요직에 있는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여학생들의 육영사업의 중요성을 납득시키며 열심히 모금을 하였다. 그리하여 강당과 음악실을 증축하고, 피아노를 사들여 음악교육에 완벽을 기하게 되었다. 6.25 전란으로 학교가 피폐하게 된 때에도 또 다시 모금운동을 벌려 큰 업적을 남기고는 했다.

② 결혼생활
 
김필례가 학생이었을 때에 너무 공부에 열중한 나머지 비색증(鼻塞症)이라는 콧병이 생겼다. 이를 치료하기 위하여 기독교인에게 혜택을 주는 광주 기독병원에 입원하였다. 당시에 그의 어머니가 선교사를 돕기 위하여 전남 광주에 기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병원에서 치료 받을 때에 세브란스의학교 수련의 최영욱(崔永旭)이라는 청년이 그의 치료를 돌보아준 일이 있었다. 김필례와는 동갑이었다. 최영욱은 의학교를 졸업한 후에 다시 그 기독병원에 근무하게 되었다. 김필례가 정신여학교에 있을 때에 최영욱은 어머니를 통하여 청혼을 하였다. 어머니 안씨도 좋게 생각하여 적극 권장하여 그 남녀는 결혼하게 되었다. 1918년  연동교회에서 이명혁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각각 근무하는 곳이 달라서 둘이는 몇 년 동안을 요즈음 말로 주말 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 공(孔)씨는 성질이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김필례는 어느 집안보다 더 성심성의껏 며느리 노릇을 잘 하였다.

한 때는 오빠 김필순이 만주의 치치하얼에서 이상촌을 건설하려는 꿈을 갖고 일할 때에 그들 부부를 불러서 그 머나 먼 곳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쯤 임신한 김필례의 입덧이 너무 심하여 건강이 너무 악화되니 어쩔 수 없이 다시 광주로 내려와서 서석의원(瑞石醫院)이라는 병원을 개업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첫 아들인 재화(齋華)가 첫 돌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뇌막염으로 죽었다. 최영욱은 마음의 고통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가족과는 의논도 하지 않고 도피하다 시피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미국에서 마음을 다잡고 켄터키 주립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에모리 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의사로써의 활동을 하였으나 6.25 동란이 일어나자 공산군에게 잡혀서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당시 김필례는 학교 일로 미국에 건너가서 활동하던 중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③ 수피아 여학원 교사
 
전남 광주에 있을 동안 김필례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우리나라 여자들이 제대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여 남편들에게 까지 천대 받고  어두운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가정주부로써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지방의 문맹 여성들을 모아서 글을 가르치는 야학을 열게 되었다. 그러자니 자연히 운영비가 들었다. 그래서 김필례는 때때로 교회를 빌려 음악회를 열고는 하였다. 그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는 광주 지방의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래서 학원 운영비를 조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김필례는 항상 기독교 전파에 힘을 썼다.
 
광주에는 [수피아 여학교]라는 유서 깊은 기독교 교육기관이 있었다. 이 학교에서 김필례 같은 인재를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를 그 학교 교사로 초빙하였다. 이 학교에서 김필례는 세상 사람들이 천대하던 불구자, 병자 무능력자들을 구별하지 않고 잘 가르쳐서 각각 나름대로 훌륭한 사회인으로써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일군으로 양성하였다. 그러나 정신여학교가 또한 김필례의 지도력을 간절히 원하였다. 그래서 1923년에 이번에는 정신여학원 교무주임으로 다시 경성으로 올라왔다. 수피아에서는 수피아 대로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필례는 한 달에 한 번씩 수피아로 찾아오기로 약속하고 올라갈 수 있었다.

④ YWCA 운동
 
김필례가 일본에 있을 때에 일본 YWCA가 여성 청년운동의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는 것을 체험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이 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아직 일제의 탄압이 심하고 국제 사회에서 우리 민족을 인정하지도 않던 시절에 김필례는 일본으로, 미국으로 돌아다니면서 국제 사회의 Y 위원들을 설득하고, 우리나라 안에 있는 여성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결국 [대한 YWCA]의 결성을 보게 된 것은 온전히 그의 선구적 역할 때문이었다. 
 
⑤ 인재의 양성

건축자의 버린 돌을 집 모통이의 요긴한 돌로 쓰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나라의 암흑기에 또는 일제 강점기에 하나님은 기독교인 지도자들을 통하여 국가나 사회에서 천대 받고 무시당하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한 사람, 한 사람 가르치고 키워내어 나라와 교회에 요긴한 일군이 되게 하셨다. 김필례는 바로 그 역할에 중요한 위치에 서 있었다.

㈀ 이아주(李娥珠)는 세브란스 병원 간호사였다. 그녀는 평안북도 사람으로 공부하고 싶은 간절한 욕망으로 14세 어린 나이에 무작정 상경을 하였다. 그래서 세브란스 병원의 간호원 양성소과정을 마치고 간호원이 되었다. 그러던 중에 김필례를 찾아와 정신여학교에 입학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김필례는 이 학생을 받아드려 마치 딸처럼 돌보아주며 성심껏 가르쳤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아주는 정신여학교 학생들의 앞장서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 재판 과정을 지켜보던 중앙학교(中央學校) 교장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아주는 6개월의 실형 선고를 받고 옥살이를 하였다. 그러다가 병보석으로 출옥하게 되었는데, 당시 전처의 죽음으로 홀아비가 되어 있던 김성수는 김필례 선생을 찾아와서 이아주와 결혼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김필례는 인촌이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얼마 후 인촌은 안동교회에 출석하여 세례교인이 되었다. 이와 같은 열성을 보고 김필례는 이아주에게 결혼을 권하였다. 그러자 이아주는 지시대로 따르겠다고 대답하였다. 훗날 이아주는 정신여학교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에 남편을 통하여 힘껏 후원금을 보내고는 하였다.
 
㈁ 송정자(宋貞子)는 수피아 시절에 가르친 제자이다. 송정자는 소아마비에 걸려 보행이 어려운 체질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가 이 딸을 데리고 와서 입학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모든 수피아 교사들이 다 반대를 하여 입학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김필례가 교장선생인 컴잉에게 강력하게 주장하여 입학하게 하였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고시에 한 과목 한 과목씩 합격하여 결국 의사가 되었다. 이러한 인간 승리의 영웅에게 한 청년이 결혼을 신청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훗날 완도(莞島)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돈 없고 힘 없는 환자들을 위하여 일생 일하였다.
 
㈂ 강인숙(姜仁淑)의 부모는 여자의 중학교 교육이 필요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공부를 중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김필례를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김필례는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면서 교육을 계속하였다. 그녀는 강태민이라는 선교사와 결혼하여 일생 선교 사업으로 힘썻고, 훗날 서울 우이동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열매를 맺었다.

⑥ 정신여자중고등학교 교장
 
전란으로 피폐해진 정신여학교가 다시 개교하게 되자 그 학교 이사진은 김필례에게 교장직을  맡아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정신여학교로 돌아왔다. 형부가 되는 경신학원의 서병호 교장이의 협조로 당시 큰 재산가인 박성하의 도움을 받게 되어 학교 재단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제의 변경에 따라 [정신여자중고등학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각계 각계각층의 요로를 찾아다니며 모금하여 조국을 위하여 순국한 조카 김마리아를 기념하기 위하여 [김마리아 관]을 건축하였다. 그리하여 명실 공히 우리나라의 여성교육기관으로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나 5.16 군사반란이 발생하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들 나름대로 사회 각층의 구악을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감사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보결생을 받으면서 돈을 받은 일이 부정이라고 하여 김필례를 교장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렇게 교장직은 물러났으나 재단이사장으로써 이 학교를 계속 돌보고자 하였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칠 수는 없게 되었고 관리만 할 뿐이었다. 1983년 7월 30일에 김필례 선생은 93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경기도 고양군 [신세계묘역]에 안장되엇다.    


글/박종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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