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경재]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3)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 박사(한신대 명예교수)가 TV 드라마와 아이돌팝으로 동남아는 물론이고 유럽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한류’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을 시도했다. 본지는 그의 동의를 얻어 강연문 ' 한류(韓流)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 인간다운 삶의 통전적 관계성, 창조적 역동성, 초월적 영성을 중심으로'를 총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3. 한류를 일으킨 원형적 심성과 역동적 창조성에 대한 문화신학적 조명

(1) 폴 틸리히 생명신학의 ‘3가지 생명운동론’에서 조명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베리타스 DB

조지훈(1920-1968)은  민족성이라는 것은 동일한 풍토적 환경에서  역사발전을 겪으면서 집단생활을 하는 동안에 형성된 공동적 마음바탕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민족의 성격은  풍토적 특성으로서 ‘대륙성’과 ‘해양성’ 두가지가 서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대륙성이란 대륙적 지질 기후 풍토가 주는 대륙적 웅혼성일 터인데 이것이 민족성 속에 역동적 ‘격정성’을 길러주었고, 해양성은 남방적 해양에 접해있음으로 인하여 길러지는  예술적 ‘평화성’을 길러주었다고 분석한다.
 
민족성은 자연환경영향아래서만 아니라 오랜 정치역사적 공동경험에 시달리면서도 형성되는데, 한민족은 동아시아의 동쪽에 위치하면서 주위에 여러나라와 관련을 맺어야하는 다린성(多隣性)과 삼국시대 이후론 반도 땅 안에 갇힌 고립성(孤立性)의 제약을 받아 각각 ‘적응성’과 ‘보수성’을 습득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위와 같은 자연환경과 역사환경 특히 정치사회적 공동경험에서 형성된 민족심성은 문화창조의 특성으로서 감각적 ‘수용성’과  ‘조형성’을 길러주었다고 분석하였다.
 
정리하면 한민족의 민족심성은 그 특징으로서 대조되는 3가지 조(組)로서 압축되는 양면성을 지니게 되는데, ‘격정성과 평화성’, ‘적응성과 보수성’, ‘수용성과 조형성’으로 대립되는 양극적 성격을 갖게된다. 중요한 것은 이 양극적 요소들은 이론적 분석과정에서 드러난 특징일 뿐 실재로는 이 양면적 대립소들이 신묘하게 어울러지고 융합 될 때, 한민족의 독특한 기질이 창조적으로 발현되는 것이고, 각각 대립소들이 분열적으로 나타날 땐 온갖 부정적 민족 심성이 표출된다고 보았다. 예들면,  격정성은 광기성과 조급성으로, 적응성이나 수용성은 모방성과 짝퉁 선호기질로, 평화성과 보수성은 사대적 극우파 정치이념으로, 조형성은 심각성이 결여된 감상주의에로 흐르게 된다.
 
필자는 조지훈의 민족심성 형성에 대한 가설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민족 심성의 여섯가지 특징이 창조적으로 융합되어 나타남으로서 ‘한류’라고 통칭하는 독특한 예술적 맛과 멋을 창발시킨다고 보고싶다. 그것들은 어떤 TV 드라마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불굴의 강인한 성격과 인애와 평화지향적 이미지로 나타나고, K-팝 군무속에서는 웅혼한 역동적 동작 가운데 조화와 생기(生氣)의 신선한 바람으로 감지되고, 현대팝음악의 여러 장르들이 음악적 조형성을 띄면서 한국 아이돌팝의 특유한 음악성으로 감동을 준다.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생명의 존재론적 양면성을 통전·융합·조화시키는 제3의  원리 혹은 제3의 감추인 능력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기독교 신학은 그것을 가능케하는 실재가 바로  ‘힘과 의미’의 통전자요 ‘새로움과 생명’의 창발자인 성령이라고 이해한다. 그러한 성령론적 생명관에서 문화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인간생명 운동의 3가지 차원을 다음같이 분석하고 그 양극성적 분열을 극복케하는 성령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를 구원받은 상태 혹 건강한 생명상태로서 설명하였다.
 
틸리히에 의하면 모든 생명들은 그들의 존재성을 지속하기 위하여 세가지 근본적 운동 속에 있다. 틸리히는 그 3가지 운동을 ‘생명의 자기통전 운동’, ‘생명의 자기창조 운동’, 그리고 ‘생명의 자기초월운동’이라고 명명한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그리고 그 범주안에서 진화선상에 출현한 여러 가지 다양한 수준들의 모든 생명체 안에서, 어떤 생명체안에서는 희미하게 혹은 보다 명료하게, 이 세가지 운동은 나타난다.   폴 틸리히는 생명의 위와 같은 세가지 기본 운동의 결과가 인간생명 차원에서는 각각 인격현상, 문화현상, 종교현상으로서 보다 더 명료하게 나타난다고 보았다.
 
‘생명의 자기 통전 운동’( the self-integration movement of life)은 생명체가  자기로서 중심성을 지닌 개체로서 자기를 의식하고 지탱하려는 자기중심적 생명충동 속에 뿌리 박고 있다. 이 운동이 인간이라는 생명종에서 자기의식을 갖춘 인격성으로 꽃 피었다.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인간존엄성 의식에서 극치에 이른다.
  
그런데, 인간생명체의 자기통전운동은 변증법적 길항작용 속에 있는 ‘개체화와 참여’(indivualization and participation)라고 표현되는 두가지 생명현상의 상의·상자·상보·상생(相依·相資·相補·相生) 속에서만 그 실현이 가능하다. 개인생명이 인격적 개체로서 영글어지려면  개체를 둘러싸고 있는 타자들과의 관계적 참여 속에서만 형성가능하다. 3대 타자는 자연, 역사, 그리고 사회인 것이다. 인간은 그의 실존상황 아래에서 언제나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양극의 한쪽으로 기울어 질때, 생명은 병들고 자기통전 상태인 역동적 건강성을 상실하게된다.  생명의  연대성과 사회성을 철저하게 인지하고 참여하는 개체적 인간만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제3의 신비한 힘 또는 원리가 ‘생명의 영으로서 성령’이라고 기독교는 고백한다.
 
틸리히의 생명신학에서 생명의 둘째 기본운동은 ‘생명의 자기창조운동’(the self-creation movement of life)이다. 이 운동은 생명이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서 동일한 생명패턴을 무한 반복하면서 제자리에서 뱅뱅도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앞을 향해 전진하려는 생명충동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창조’라는 단어는 물론 인간이라는 생명단계에서 그 의미가 제대로 나타나지만, 인간이하 생명체에서도 약하고 희미하게나마 이전보다 다른 것, 다양한 폼세를 창발시키려는 본능적 충동 속에 있다. 진화곡선상에서 인간 생명종 단계에 이르러 ‘생명의 자기창조운동’은 ‘문화’라는 현상으로 꽃피어 났다. 
 
그런데, ‘생명의 자기창조운동’은 두가지 서로 변증법적 길항작용 속에 있는 ‘역동성과 형태’(dynamics and form)의 상호관계성 안에 있는데, 양극성이  ‘상의 상자 상보 상생’ 관계 안 있을 때에만 건강하고 그침없는 창조적 운동이 가능하다. 인간생명 체험단계에서 ‘역동성’이라는 범주안에는 자발성, 자유분방, 힘의 충일성, 신명성, 놀이성 개념이 다 포함된다. 다른 한편 ‘형태성’ 이라는 범주에는 규칙, 질서, 법률, 제도, 조직, 형식등의 개념이 다 포함된다. 인간 실존적 문화창조 활동안에서는 이 두가지 구성적 요소가 상호 변증법적 길항작용 속에서 서로를 제약하고 서로가 다른 구성소를 무시하려는 충동 속에 휩싸이게 된다.  율법, 정치적 제도와 법률, 예술적 형식과 형태이론은 문화창조의 자발성과 역동성을 억압한다. 이 긴장 갈등을 창조적 상보관계에로 승화시키는 제3의 생명원리와 힘이 성령이라고 기독교는 고백한다.
 
틸리히의 생명신학에서 생명의 제3운동은 ‘생명의 자기초월운동’(the self-transcendence movement of life)이다. 모든 생명체는 유한하고 우발성에 존재위협을 받고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생명있는 것들은 단순히 제자리에서 반복운동 하거나, 새것을 지향하려는 전진적 창조운동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한계를 돌파하려는 ‘초월’운동을 하려한다. 인간생명 현상에서 이 운동은 마침네 ‘종교현상’에서 극치를 이룬다. 생명의 자기초월운동은 말하자면 위로 오르려는 생명의 상향운동이다. 비상(飛上)충동 이며 유한성을 극복해보려는 운동이다.
 
그런데, ‘생명의 자기초월 운동’ 역시 인간실존 상황에서는 두가지 서로 변증법적 길항작용 속에서 요동치게 되는데  그 두 대극적 요소는 ‘자유와 운명’(freedom and destiny) 이다. ‘자유’란 자기를 스스로 부정하면서도 자기를 초월하려는 인간 의지와 존재의 용기이다. ‘운명’이란 숙명이라고 해도 좋고 필연이라고 해도 좋은 삶의 근본적 한계성을 다 내포한다. 예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 생노병사의 인간 한계상황, 천재지변등 거대한 자연시련등이다. 운명을 초극하려는 인간생명의 자기초월 충동은 때론 종교, 숭고한 이념, 과학지상주의등을 절대화시킴으로서 우상화 혹은 악마화 라는  덫에 걸린다. 반대로 자유를 극단화시킴으로써 교만(hubris), 무제약적 탐욕(concupiscience), 허무주의, 세속주의에 빠지곤 한다. ‘자유와 운명’의 양극성을 ‘상의 상자 상보 상생’관계구조 안에서 건강한 자기초월 운동으로 지양하려면 제3의 원리 혹은 힘이 필요한데 기독교는 그것을 은총과 사랑의 능력이신 성령이라고 고백한다.
 
한류가 건강한 역동성과 생기발람함과  예술적 조화를 표출해내는 문화운동으로 계속 발전하려면, 틸리히가 분석한 생명의 세가지 운동이 지닌 서로 대립적인 요소들 곧 ‘개체성과 사회성’, ‘역동성과 형태성’, 그리고 ‘자유와 숙명’의 상호관계성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 없는 창발적인 승화예술 이라야 한다. 그 양자를 통전시키는 의미와 능력의 통일적 실재가 성령인데, 일반 문화운동 속에서 ‘성령’은 결국 ‘생명의 기(氣), 숨결, 해방과 화해의 촉매로서 나타난다.  

(2) 함석헌 고난사관의 ‘3가지 생명 원리론’ 에서  조명

함석헌(1901-1989)은 한국역사를 지어가는 한민족 성격중 가장 중요한 특징을 두가지 들었다. 그 하나는 “호양부쟁(好讓不爭)”의 성격으로서 오늘날 말로서 표현하면 관대 · 박애 · 예의 · 청렴 · 자존등의 개념인데  순수 우리말로 압축 표현하면 ‘착함’이라고 본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기본성격은 중국 『후한서』에서 우리민족 성격묘사를 하는 글중에  “인성질직강용(人性質直彊勇)”이라는 표현인데,  요즘말로하면 용감 · 올곧음 · 굳셈 · 지조 등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순수 우리말로 압축표현하면 ‘날쌤’이라고 보았다. 다시한번 『후한서』표현으로 하면 ‘강용이근후’(强勇而謹厚)라는 것이다.
  
현재 많이 변해버린 한국민의 심성을 보면 함석헌의 생각은 지나치게 민족심성의 좋은 면, 그것도  오랜 옛날 우리조상들의 심성묘사같이 들리지만, 집단적 민족심성의 가장 밑바닥에 ‘착함과 날쌤’으로 압축표현되는 두가지 성격이 있다는 주장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한류를 연출해 나가는 문화콘텐츠 모든 분야에서 ‘날쌤’이라는 역동성과 ‘착함’이라는 인간본연의 인(仁)의 함축성을 빼놓고서는 ‘한류’의 한류다움은 그 원샘터를 찾기 어렵다. 
  
함석헌의 씨사상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성찰할 수 있지만, 그 중 한가지로서 필자는 한국적 ‘생명철학’으로서 읽고자 한다. 함석헌의 ‘생명철학’은 세가지 기본원리를 주장한다. 첫째는 ‘생명은 하나이다’라는 원리, 둘째는 ‘생명은 스스로 함이다’라는 원리, 그리고 셋째는 ‘고난은 생명의 구성소이다’라는 원리인 것이다.
  
첫째, ‘생명은 하나이다’라는 원리는 생명이란  사람의 몸처럼 유기체적으로 서로 관계되어 있는 ‘一卽多, 多卽一’의 화엄적 연기세계(緣起世界)로서 相依· 相資 · 相補· 相生 관계속에서 개체이면서 전체이다는 자각이다. 함석헌의 이 첫째원리는 폴 틸리히의 생명신학의 첫째 기본운동인 ‘생명의 자기통전적 운동’하고 통한다.
  
둘째, 함석헌의 생명철학의 둘째원리인 ‘생명은 스스로 함에 있다’라는 원리는 생명의 자발성, 자유, 역동성, 창조성, 자기조직화 운동을 강조한다. 함석헌의 이 둘째원리는  폴 틸리히 생명신학의 둘째기본운동인 ‘생명의 자기창조운동’과 상응한다. 함석헌은 다음같이 말하는데 신학자 폴 틸리히의 생명신학과 생각이 통한다.
  
생명은 지어냄(創造)이다. 맞춤(適應) 위에 대듦이 있듯이 대드는 바탈(性) 뒤에는 끊임없이 새 것을 지어내려는 줄기찬 힘이 움직이고 있다. 생명은 자람이요, 피어남이요, 낳음이요, 만듦이요,      지어냄이요, 이루잠이다.  하나님은 나타내는(啓示, 現實) 이다. 절대의 뜻(意)이다. 끊일 줄 모르는,     다 할 줄 모르는 의욕이다. 의욕보다도 의미다. 의미기 때문에 의지요, 의의(意義)다. 그것은 영원     히 된것(完成)이면서 또 영원히 되자는, 되고 있는 것(未完成)이다.

셋째, 함석헌 생명철학의 셋째원리는 ‘고난은 생명의 원리이다’라는 주장에 있다. 이점은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생명철학을 서구 철학사에 나타난 생명철학과 구별시켜주는 중요한 특징이 된다. 생명이 있는 곳엔 언제나 항상 고난이 있다는 것, 고난은 생명탄생과 지속과 자기승화의 필요불가결한 구성소라는 인식이다. 그러므로, 고난은 미화하거나 찬양할 것은 아니지만 도피해서도 않되고 부정적으로 억업해서도 않된다는 것이다. 고난은 생명을 정화시키고 더 높게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이 생명의 셋째원리는 폴 틸리히 생명신학의 세 번째 기본운동 ‘생명의 자기초월운동’과 상응한다.
  
함석헌의 생명철학인 씨사상에서 보면, 하나님 · 역사과정 · 사람(민중)의 삼자관계는  마치 진흙바닥에 뿌리 박고서 솟아난 연꽃이 물결에 흔들리면서도 연꽃줄기가 수면위로 꽃을 피워내는 생명현상으로서 은유된다. 그 삼자 곧 뿌리, 줄기, 꽃잎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뒤집어 생각하면, 하나님은 하나의 ‘온 우주 생명’을  맨  꼭대기에서 본 것이고, 역사는 움직이는 시간과정에서 본 것이고, 민중(씨알)은 맨 땅 바닥에서 본 것이다.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땅위의 민중고난은 역사의 고난현실이요 곧 그것은 하나님의 고난이기도 하다. 맨 바닥의 흙중의 흙인 고난당하고 있는  민중의 생명 안에 참 샬롬이 실현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실현되지 않는다. 이미 실현된 천국일지라도 온전한 만물의 성취 ‘새 하늘과 새땅’을 기다린다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이다. 한류는 민중의 고난과 희망을 예술로서 보여주는 것일 때 뭇 사람을 언제나 감동시킬 것이다. 
  
‘한류’를 문화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면서 함석헌의 생명철학이 말하는 세가지 생명원리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류가 아무리 현대 대중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문화산업으로서 발전하더라도, ‘문화상품’으로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문화운동’으로 발전 해가려면, 한류문화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문학, 예술, 경영, 기획 모든 전문가들의 문화창조 작업과정 속에 현대문명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철학적 비젼이 작업바탕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문명은 지나치게 ‘고난’을 터부시하며, 인간의 ‘한계상황’을 부정하고, 대중을 ‘쾌감원리’로서 이끌어가면서 일차원적 ‘욕망과 충족’의 메카니즘 속에 몰입시켜가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 틈새를 끼고 들어온 것이 상업주의요 섹스어필하게 하려는 성욕자극 예술형태이다. 그리고, 상업주의와 성애주의는 굳건한 동맹을 맺고서 ‘한류’의 본래적 문화예술적 생명력을 세속화 시켜버릴 위험을 언제나 안고 있다.

(3) 현영학의 탈춤신학과 유동식 풍류도적 예술신학에서 조명

한국의 민중신학은 그동안  서남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중심으로하여 하여 후학들에게 더많이 영향을 끼치고 연구되었다. 그 결과 한국 민중신학은 ‘사회정치신학’ (a socio-political theology)으로서 각인 되어온 감이 강하다. 그것은 틀린 이해는 아니지만, 1970년대 민중신학자 제1세데 3인방 중에서 또다른 한 분 현영학의 ‘탈춤신학’을 통해 보여준 귀중한 통찰을 소홀히 한 감이 없지 않다. 이번 한류에 대한 신학적 조명을 함에 있어서 현영학의 탈춤신학과 유동식의 풍류도적 예술신학의 관점에서 한류를 조명하는 것은 ‘한류’가 일단 ‘정치사회사건’으로가 아니라 ‘문화사건’으로서 발생한 것이기에 더욱 더 중요하다고 본다.
 
현영학(1921-2004)의 탈춤신학은 그의 탁월한 문화신학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의 기념비적 논문 「한국탈춤의 신학적 이해」는 탈춤에 대한 최초의 신학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한국신학사에 길이 기억할만한 논문이 되었다. 당시 군사정권의 독재성에 비판적이던 대학생 저항써클에서 탈춤을 통하여 정치적 사회비판을 즐겨행할 때, 현영학은 한국탈춤은  단순히 정치적 비판의식의 표현으로서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더 깊고 넓은 종교적·사회문화적 의미가 엿보이고 있다”고 새로운 면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는 위 논문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할 자리가 아니므로 한류와 관련하여 몇가지 점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현영학은 마샬 맥루한의 명언이었던 “매체가 메시지 이다”를 인용하면서 탈놀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놀이의 구성요소를 입체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탈 놀이의 구성요소들, 즉 탈, 음악과 무용, 공연시기와 장소, 재담, 연희자와 관중등의 복합적인 구성요소들의 기능을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리라고 본다. 재담에서 나타나는 희극적 갈등구조의 메시지도   이 복합적인 구성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현영학이 아직 생존해 계신다면 오늘의 ‘한류’를 가장 정확하게 신학적 해설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신학자였을 것이다. 특히 한류의 문화콘텐트중에서 ‘K-팝’ 명칭아래에 총괄되는 모든 젊은 이들의 ‘군무적 대중음악’에 종사하는 가수들과 무용수들과 작곡가및 안무가들은 현영학의 이 논문에서 혜안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류 K-팝의 춤과 노래와 재담은 탈춤의 그것들과 형식만 다르지 본질적으로는 같기  때문이다.
 
둘째, 현영학은 탈춤의 신학적 해석에서 탈춤을 통해서 춤추는자나 관중들이 ‘비판적 초월경험’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의 지론 곧 “이 세상에 대한 인간정신의 예속을 웃어버림으로써 해학은  이 예속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극복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현영학은 피터 버거와 호이징거(John Huizinga)의 통찰을 한국의 탈춤 속에서 발견하고 다음구절을 인용소개한다.  “놀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각하고 비극적인 현실의 삶 안에 그 것과는 전연 이질적인 규율이 지배하는 즐거운  세계와 시간으로 쐐기를 박는다." 필자가 강조하려는 것은 ‘한류’는 일종의 ‘문화적 놀이’라고 보는데,  문화의 한 기능으로서  예술적 놀이이기 때문에, 특히 ‘아이돌 팝’의 음악, 춤, 재치있는 지껄임등은 단순한 즐거움이나 욕망대리충족 시간만이 아니라 관중이 비판적 자기초월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동식은 현영학과 동년배로서, 민중신학 제1세대와  교류를 함께하면서도 가장 오래 장수하시면서 독특한 풍류도적 예술문화신학을 그의 신학의 여로 결실물로 한국 기독교계와 문화계에 제시한 분이다.  풍부한 내용을 지닌 그의  풍류도적 예술신학 중에서 ‘한류’와 관련하여 두가지 점만을 다시 주목하려고 한다.  첫째는 그의 화랑도들의 교육과정에 대한 종교적 해석이요, 둘째는 그의 풍류도 신학의  ‘한 · 삶 · 멋’이라는 삼원적 구조론에서 특히 풍류도의 체(體)를 ‘멋’으로서 보는 예술신학적 해석학이다. 
  
첫째, ‘한류’와 관련시켜 화랑도를 새로운 눈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유동식에 의하면 “화랑이란 풍류도를 몸에 지닌 주체적인 청년 지도자들이었다” 대립하던 삼국통일을 꿈꾸며 내일을 준비하던  젊은 이들의 단체였지만, 요즘 생각하는 군입대 예비병력의 훈련목적과는 전혀다른 것이었다. 화랑무리는 요즘말로하면 'K-Pop'을 형성하고 있는 무수한 아이돌그룹에 비유 할 수 있다. 화랑들의 무대는 명산대천이였고 아이돌 그룹들은 조명등이 비취는 무대인점이 다를 뿐이다.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유동식은 화랑은 한국민족문화형성의 터전을 만들었다고 보면서, 화랑들은  도의로서 서로 몸을 닦고(相磨以道義), 노래와 춤으로 서로 즐기며(相悅以歌舞), 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것(遊娛山水)을 주목했다.   화랑무리들은 대자연을 무대로 삼고 노래와 춤으로서 서로 즐기면서도 육체적 쾌감을 탐익한 것이 아니라  도의로서 정신적 내공을 쌓고, 초월자 신령(神靈)들과 접촉을 통해 요즘 말로 영성수련하고자 명산대천을 찾았다. 말하자면 화랑은 육체수련, 예능수련, 종교수련을 함께하는 새시대를 열어갈 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는 것이다. ‘한류’중에서 K-Pop으로 통칭되는 오늘날의 젊은 신세대 가수연예인들이  그 지속적 에너지를 유지해가려면, 단순한 문화산업 연예기획사에 예속된 존재라는 자기의식을 넘어서, 21세기 화랑의 무리들이라고 스스로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유동식의 풍류도 신학에서 주목할 점은 풍류도를 한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있는 원형적 영성이라고 판단하면서 풍류도의 내용적 실체를 ‘한 · 삶 · 멋’ 이라는  순수 우리말 개념으로 총괄표현해 냈다는 점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라고 말한다. 9세기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속에 한문글자로 잠들어 있는 풍류도를 부활시키려면 오늘의 우리말을 몸으로 하여 부활해야 한다.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 ‘왈풍류’(曰風流),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 이라는 네마디 한자구절 속에 담겨진 보이지 않는 ‘종교와 문화’의 상호관계를 우리말로서 표상화 내어 ‘한 삶 멋’으로 나타낸 것은 참으로 탁견이라 하겠다.
  
유동식의 풍류신학에서는, 한문정신문화계의 ‘체상용’(體相用)이라는 존재드러남의 삼원적 기능론을 차용하여  ‘멋’을  풍류도의 ‘체’(體)로 본 것이 유동식 예술신학의 특이점이다. ‘멋’은 예술이요, 신바람이요, 춤과 노래이며, 성령활동의 선물로서 주어지는 느낌이다. 신학적으로 부연한다면 신학의 최고단계는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춤추는 ‘찬양의 예배신학’이라는 말이다.
  
‘진선미’를 말 할 때, 서구 철학사상사는 철학적 진리탐구와 도덕적 선의 탐구를 예술적 미의 탐구보다 은연중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유동식은 예술과 아름다움을 종교의 구경단계로 본다는 말이다. 21세기 영성시대에 종교적 영성은 예언자, 과학자, 예술가의 영성의 통전이라야 할 것이다. ‘한류’란 예술문화를 매개로하는 한민족적 영성의 발로이자 표현이다. 예술문화의 책무는 권력과 노동과 물질에 노예가 되어있는 인간들을 아름다움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일이며, 멋의 경지란 『大學』에서 말하는 ‘된데 머무는 것’ (在止於至善)으로서 큰 배움과 삶의 온전한 경지일 것이다. 유동식의 예술신학의 단면을 열어보인 문단을 인용해보자.

‘아름답다’는 우리말은 예술작품이 지닌 미(美)가 무엇인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아름’은 ‘아람’의      변음으로도 볼 수 있다. 밤알이 영글어서 밤송이를 열고 자신을 내보였을 때, 이것을 ‘아람분다’고      한다. ‘아람’이란 무르익은 속알이요, ‘답다’는 그 형상이 여실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름답다’를      한자로 의역한다면 ‘진여’(眞如)가 된다. 불변의 진실이 표현된 것을 작품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      는 것이다.

‘한류’의 문화콘텐츠가 TV드라마이든 음악, 미술, 연극 무엇이든간에 ‘한류’를 만들어가는 모든 종사자들이 명심할 것은 ‘아름다움의 형상화’가 본연의 자기정체성인 것이지 그 외 다른 무엇이 아님을 다시한번 더 다짐할 일이다.  특히 기업체의 자본권력, 정부의 정치권력, 대중들의 소비자권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한류’를 수단으로서 이용하려드는 압력이 점점 더 거세어져 갈 때,  속물화 되어가는 인간을 아름다움의 예술로써 구원하는 문화활동 본연의 사명자각이 절실한 시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유동식의  삼태극적 구 조이 풍류·예술신학에서 제3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의미를 한국대중음악 그룹멤버들 구성방법에서 음미하고자 한다.
 
댄스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아이돌’그룹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부터 K-pop 멤버들의 구성은 특히 3인조가 많았다고 한다. 3,5,7,9등 홀수로 구성된 팀들이 지닌 역동성은 균형과 안정과 반복적인 패턴이 지속되는 좌우대칭성이나  음양원리를 넘어서서, 새로운 요소를 촉매하고 출현시킨다. 음양의 이원구조가 지닌 긴장은 해결되고 잃어버린 통일성이 회복된다. “ 3이 들어가는 곳에는 통과, 재탄생, 변화, 성공이 뒤따른다....셋보다 작은 것은 불완전해 보이고, 셋보다 많은 것은 지나쳐 보인다. ...셋은 포용하는 종합을 통해 일체성과 완전을 선언한다.”
 
한국미술계에서 고미술사의 원로인 고유섭이 한국미의 특징으로서 ‘비정제성’(非整齊性, asymmetry)을 말하고, 201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세흐트만은 “질서는 있지만 규칙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구조를 가진 준결정물질(準結晶物質)”의 존재를 밝힌바 있는데, 이것은 유동식의 ‘한 삶 멋’에서 말하는 제3의 원리로서 ‘멋’이 한류의 역동성과 새로움과 재탄생을 창발시키는 비밀이 아닌가 생각한다. 삼위일체론 신비에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하나의 사랑의 띠로 묶는 ‘연합의 힘’이요 ‘새로움의 창조힘’이라고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말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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