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을 보소서 ㅣ 이재철 엮음 ㅣ 홍성사 ㅣ 204쪽 ㅣ 1만 5천원
구세군 냄비가 겨울에 등장하는 까닭은, 겨울에 이웃들의 아픔이 가장 진하게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추위에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며 거리를 걷다가 ‘딸랑’거리는 구세군 종소리를 듣게 되면, 평소 우악스럽던 사람들도 주머니에 있던 동전 몇 개, 지폐 몇 장 꺼내 빠알간 냄비에 넣을 마음이 생겨난다. ‘나처럼 추운 이웃들에게 사용됐으면…’. 하지만 구세군 자선냄비는 따뜻한 봄이나 휴양의 계절 여름, 낭만의 가을에는 통 보이지 않는다. ‘겨울 특수’가 끝났기 때문이다.
신간 <이들을 보소서>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 가난과 비참에 대한 이야기다. 때로는 궁핍함에 배를 곯고, 때로는 주위의 편견에 정신을 움츠리는 우리 사회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강은교, (故)구상, (故)이청준 등 작가 20명이 써내려 갔다.
나그네선교회 대표로 있는 이천우 목사는 거지집단에서 ‘도치댓박이’로 불리며 똘마니로 생활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썼다.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왕초들 고함소리와 함께 지긋지긋한 하루가 시작된다. 도치댓박이는 찬마루에 가마니를 깐 잠자리를 박차로 일어났다. 어제 저녁 밥그릇(깡통)을 닦기 싫어서 아무렇게나 개울가에 집어던진 것이 밤중 추위에 얼어붙고 말았다. 쇠뭉치를 들고 얼음을 열심히 깬다. 겨우 깡통을 꺼냈다.”
이 깡통을 들고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도치댓박이는 달린다. 달리지 않으면 아침밥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놓치기 때문이다. 부잣집 밥은 고급인 대신 양은 적다. 가난한 마을은 잡곡밥이지만 거의 집집마다 주기 때문에 얻는 양이 많다. 그런데 부잣집 밥은 잘 살펴보고 먹어야 한다. 쉬어서 못 먹을 밥을 깡통에다 버리듯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밥 얻어먹는 거지들이 개, 돼지로 보이는지… 그럴 때마다 불끈 치미는 치욕감과 함께 ‘오냐, 나는 너희처럼 불쌍한 부자가 되지는 않을 거다’하고 이를 악물곤 했다.”
홈리스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다 지금은 30여명의 아이들을 자녀삼아 양육하고 있는 그는 말한다. “알몸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가는 우리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모두 다 거지일 수밖에 없다”고.
작가 양인자는 군산의 한 영아원을 방문한 경험을 전한다. “나는 건들건들 기웃기웃 둘러보고 다니며 ‘아, 춥다. 여긴 세탁실이구나. 지저분해, 대야도 아무 데나 팽개쳐져 있고…’ 이 따위 생각이나 하면서 촬영팀의 촬영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 기다림이 무료해 방문 하나를 별 생각 없이 열어보았다. 방 안은 캄캄해서 얼핏 빈방처럼 느껴졌다. 도로 닫으려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보모처녀가 달려와 ‘보시겠어요?’ 하고는 찰칵 스위치를 올렸다. 순간 나는 호흡이 딱 멎어 버렸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누워 있었다. 한 돌에서 두 돌 미만인 어린 아이들이 바깥의 시끄러운 촬영 소리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자야만 하는 터라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눈을 뜨고 있었다. 한 아이가 칭얼댔다. “오줌 쌌구나, 일어나.” 보모가 말하자 아이가 군복무를 끝낸 제대병처럼 발딱 일어나 보모의 손 움직임에 딱딱 맞춰 옷을 갈아입고는 요도 없는 맨바닥으로 쏙 들어가 정자세로 눕는다.
‘아니, 한 돌짜리 아이가 …’. 마음이 아파진 작가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이는, “타인이 자기 자신의 일부란 사실을 따뜻하게 일러주고 깨우쳐 준 작은 하나님”이었다고. 그러곤 덧붙인다. “방 안이 추워서 난로의 불을 지피면,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내 귀에 속삭인다. ‘이제 너는 따뜻하느냐. 이 따뜻함을 내가 너에게 주었으니 너도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담임)는 동대문시장에서 2천 원짜리 어린이시계를 3백 원 깎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시계 하나 팔아 다 남는다고 해도 2천 원밖에 남지 않을 텐데, 그렇게 하루 세 개씩 판다고 해도 주일 빼고 나면 한 달에 15만원의 이득밖에 없을 것이 아닌가? 그나마 원가를 빼고 나면…” 그는 하늘을 향해 혼자서 중얼거린다. “하나님! 나는 왜 언제나 요 모양 요 꼴입니까?”
우리 사회에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있다. 그들을 향한 마음을 이 겨울이 지나도 접지 말기를 작가들은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