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조지아에서 미시시피와 앨라배마에 이르기까지 옛날 노예의 아들들이 옛날 노예 주인의 아들들과 함께 형제처럼 살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백인 어린이가 흑인 어린이와 형제 자매처럼 손을 잡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단순히 자유를 얻기 위해 집이나 교회에 불을 지르는 일이 없게 되는 꿈입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에서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아 열린 평화행진에 참가해 ‘나는 꿈이있습니다’는 명연설을 남긴 흑인 인권 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 19일(현지시각) 마틴 루터 킹 목사 탄생 80주년을 맞아 미국 아틀란타의 에벤에셀 침례교회에선 1천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대규모 기념예배가 열렸다.
이날 참석해 설교를 전한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 릭 워렌 목사는 “킹 목사의 이타정신과 봉사정신을 본받자”고 했다.
이어 아이작 패리스 대표와 공화당 색스비 상원의원이 축사했고, 아틀란타 시내 다양한 인종의 고등학생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무대를 누볐다.
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의 지도자로 당시 유학 중인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29년 침례교 목사 마이클 루서 킹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마이클과 같은 이름이 붙여졌지만, 아버지가 1935년 마틴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마틴으로 이름이 바뀐다. 보수적인 침례교단 출신이었으나 1955년 진보적인 신학을 가르치는 보스턴 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사회참여적인 행동하는 신앙으로 그 신앙적 성격이 크게 변화된다.
1954년엔 앨라베마 주 몽고메리의 덱스터 애버뉴 침례교회 목사를 맡게 된다. 당시 킹은 침례교 목사안수는 받았지만, 모어하우스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목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55년 12월 몽고메리에서 로자 팍스라는 흑인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체포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계기로 펼쳐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지도하고, 1956년에는 미국 연방 최고 재판소에서 버스 내 인종 분리법의 위헌판결을 얻어내기까지 한다.
이후 애틀랜타의 침례교회 목사로 있으며 미국 각지의 인권운동을 지도했다. 1963년 4월 12일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열린 항의 데모 때 스스로 버밍험 시 경찰에 체포됐으며, 4월 19일까지 구치소의 독방에 투옥됐다. 이 해 워싱턴에서 그는 일생에 남을 연설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란 메시지를 전한다.
한편, 꾸준하게 흑인 인권 운동을 벌이며 노벨 평화상까지 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베트남 전쟁이 장기화 돼 가는 1968년 4월 4일 테네시 주 멤피스의 한 모텔 발코니에서 극우파 백인 제임스 얼레이의 총에 맞아 암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