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달 월례포럼에서는 ‘종교와 정치’ 문제가 다뤄졌다. 이 포럼에서 김진호 목사(동연구소 연구실장)는 기독교의 교세 감소 원인을 진단하는 한편, 이와 맞물려 펼쳐지고 있는 기독교의 정치세력화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차분히 논했다. 본지는 그의 동의를 얻어 강연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위기, 악순환
▲김진호 목사 ⓒ베리타스 DB |
성장주의를 포기 혹은 지양하지 않았는데 교세가 정체 혹은 감소되고 있다. 한데 이러한 감소로 인한 위기감은 또 다른 위기를 낳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신학대학, 교회, 시민사회, 이 세 차원에서 이 악순환 현상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첫째로, 교단 신학교 교육이 황폐화되고 있다. 그간의 한국 개신교 성장의 주된 이유의 하나는 뿔뿔이 갈라진 교파 간의 교세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교세 경쟁으로 각 교단들이 산하 교단신학교에 대한 투자를 크게 확대했고, 이와 맞물려서 신학생 수도 대폭 늘어났다. 특히 대부분의 거대교단들은 교육부가 인가한 학위 외에 교단인가 학위과정까지 만들어서 교회 사역자의 공급을 크게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젊은 신학자들의 수도 많아졌고 교수로 채용되는 신학자도 크게 늘었다. 이는 학생들에게 좀더 최신 학문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여 교회의 고도성장 막바지인 1980년대에는 한국 신학교들의 신학의 질이 양의 증가와 비교적 잘 맞물려 있었다.
한데 1990년대 이후 교세의 증가 추세가 급격히 반전되면서 신학생들의 취업난이 심각해졌다. 이는 신학생들로 하여금 교회에서 활용도 높은 공부에 매달리게 했다. 즉 신학자들의 인프라는 전례 없이 크게 확장되었으나 정작 학생들의 관심은 아직 학문적 틀조차 갖춰지지 않은 ‘교회성장학’이나 ‘목회상담학’ 등에 치우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사회와 국가, 역사, 세계 등에 대한 신학적 관심, 특히 자기 성찰을 위한 인문학적 소양이 급격히 쇠락하는 현상을 동반했다.
교회 또한 신학적 소양보다는 실용적 활용도 중심으로 ‘잘 준비된’ 목사후보생을 채용하고 싶어 했고, 이는 신학교육에 대한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특히 신학에 대한 교회의 검열과 통제를 강화하는 유형 무형의 장치가 구축되었다. 1992년 감신대에서 있었던 변선환 학장과 홍정수 교수를 파면하고 목사직과 교적을 회수하는 충격적인 사건은 교회의 학문에 대한 통제가 본격화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신학자들의 침묵은 교회의 성찰 잠재성을 파탄의 지경으로 빠뜨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둘째로 성장 정체 및 감소로 인한 교회의 위기를 보자. 여기서 주지할 것은 1990년대 이후에도 대형교회의 성장 추세는 결코 시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기는 중․소형교회에서 심각하게 체감되었다. 2002년부터 2008년 사이 폐업한 교회의 수는 매년 1,300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물론 폐업한 교회들은 거의 중․소형교회다. 미자립교회의 비율도 점점 높아져 최근에는 전체 교회의 40~50%대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이후 많은 중․소형교회들은 적자 예산에 시달렸다. 교회 건축은 가장 결정적인 적자 요인이다. 교회당을 크게 신축하면 그 크기만큼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과거의 통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면서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된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교인 누출의 주된 이유가 되었다. 2008년 기독사랑실천당이 내건 슬로건의 하나인 ‘교회의 은행대출 금리를 2.5%로 내리게 하겠다’는 것은 교회들이 부채에 심하게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여기서 교회의 은행대출의 주 요인이 교회당 건축으로 인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재정 압박에 시달릴 때 교회는 통상 사회부조나 복지 지출을 줄이기 마련이다. 이것은 교회의 사회적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대형교회에 대한 선망과 모방의 강도는 높아지고 미국발 번영신학의 성장 프로그램들을 도입하는 데 더 열을 올리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교회의 성찰 능력은 점점 더 감퇴하고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몰인식은 현저히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셋째로, 시민사회와 기독교의 문제다. 과거 시민사회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지대했다. 특히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가입교단들이 만든 교회연합기관들(기독교방송
그러나 시민사회에서 이들 단체들의 역할은 공히 1990년을 기점으로 급락했다. 여기서 교세 감소의 문제와 연관해서 주목하게 되는 단체는 NCCK와 기독교사회운동기구들일 것이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교회들의 절대 다수가 보수적임에도 이들 단체들이 진보적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요 재원이 외국의 진보적인 기독교계 기구들의 지원에서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1년 한국정부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면서 외국의 재정지원이 끊기게 되었다.
한데 그 무렵 대다수 교단들에서 대형교회들의 영향력이 급상승했다. 대형교회들은 대학을 먼저 통제하기 시작했고, 자기들 구미에 맞는 연구자들과 신학세미나, 워크샵 등을 열어 무수한 목회사역자들을 규합했다. 여기서는 주로 미국 산(産) 대형교회인 메가처치(mega-churches)의 신학인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적 해석학과 프로그램 등이 다루어졌다.
1960년대 이후 급성장한 메가처치들은 ‘몸에 맞지 않는’ 유럽의 신학이 아닌 자기들 식의 성장주의적 신학을 발명해냈다. 그것을 일컬어 ‘번영신학’이라고 한다. 그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미국식 신앙인 ‘복음주의’(evangelism)와 1960년대 이후 소비사회적 후기자본주의식 가치가 엮이면서 형성된 보수주의적 신학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적 번영신학은 조용기와 같은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대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대형교회의 신앙을 번영신학적 실례로서 흡수하면서 미국을 넘어 일약 범세계적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에 대한 종속도가 높은 한국교회에 다시 유입되어 대형교회식 신학으로 한국에 자리잡게 된다.
여기에는 주된 성장 동력이었던 한국적 부흥회 신앙 같은 아웃사이더적인 요소가 주류적 가치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로써, 그간 소수임에도 한국신학계를 이끌었던 민중신학이나 토착화신학, 그리고 유럽의 신정통주의신학 같은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신학담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신학적 요소가 한국의 교회들을 풍미하기 시작했다. 이제 교회들은 자신들을 통제하는 신학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신학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번영신학’이라는 말에서 시사되듯, 성장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신학이다.
교세 감소에 민감해진 교회들과 사역자들은, 과거에는 그다지 모범적 사례로 여기지 않았고 심지어 이단시하기까지 했던 순복음교회 등 대형교회들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저들이 이끄는 세미나와 워크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대형교회가 교단 장악력을 갖추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한편,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NCCK 등은 교단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대형교회들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재원조달의 통로를 발견한 것이지만, 동시에 NCCK의 진보성을 추동했던 인권위원회의 역할이 축소됨을 의미했다. 이러한 NCCK 인권위 활동의 위축은 한국 개신교가 더 이상 의미 있는 시민사회적 위상을 지닐 수 없음을 의미하였다.
나아가 NCCK 인력풀이 많은 역할을 했던 기독교방송이나 대한기독교출판사 또한 진보적 언론이나 지식의 창고로서의 위상이 격하되었다. 이렇게 시민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 평판을 이끌었고 동시에 진보적 교회들의 결속체로서의 의미를 지녔던 기독교계 시민사회단체들은 NCCK의 진보성의 좌초와 연동되면서 거의 유명무실한 존립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교회의 신앙과 신학이 사회적 공공성의 문제에 제도적으로 둔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