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영훈] 3.1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사명과 역할”

2012년 3월 9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

3.1운동은 민족의 운명이 나락으로 추락하던 20세기 초에 항일운동,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든든한 토대가 된 우리민족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유산이다. 무엇보다도 3·1운동은 1910년대에 “일제의 의한 가혹한 정치적인 탄압, 경제적인 착취, 문화적인 말살, 사회적인 차별 등을 겪으면서 국권을 상실한 민족적 비애를 절감”한 우리 민족이 종교, 신분, 성별, 지역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 독립과 자주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일대 사건이었다.

기독교 내부로 볼 때, 3.1운동은 전국 도시와 농어촌에 산재해 있는 교회들이 민족 전체의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려고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 잔혹한 일제강점에 항거한 ‘교회일치’의 귀중한 전통을 이룬 운동이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는 운동 지도부로부터 일반 신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당시 모든 민족 지도자들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3인의 민족지도자들이 참여한 “기미독립선언서”에 16명의 기독교 대표들이 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교회들은 3.1 독립만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첨병의 역할을 감당했다. 기독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했는가 하는 것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가 기독교에 대해 자행한 잔인한 핍박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도 화성 소재의 “제암리 교회의 집단 학살 사건”이다. 1919년 4월 15일 일제는 제암리 교회로 그 지역 기독교도들을 불러 모으고 교회당을 불태워 23명을 학살하였다. 1919년 말의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비 종교인까지 포함하여 3·1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된 전체 19,525명 중에 기독교도들의 수가 3,426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사회적으로도 3.1운동은 기독교에게 막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3.1운동 당시만 해도 기독교는 일반인들에게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서양의 외래 종교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들이 주측이 되어 전개함으로 3.1운동은 기독교 복음이 우리 민족의 운명과 하나가 되어 민족과 함께 울고, 우는 민족적인 종교임을 만천하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교회 자체가 일제에 의해 고통당하는 우리 민족의 고난의 현주소였다. 기독교가 잠자던 민족의식을 깨워서 고취시키는 민족교육의 산실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3.1운동은 기독교와 우리 민족을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 결합시킨 일대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3.1운동은 민족사상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일제의 소위 ‘무단정치’ 앞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제 우리 민족에는 미래가 없다’는 비관론과 패배주의가 만연했던 1910년대의 ‘절대 절망’의 상황에서 ‘우리 민족도 할 수 있다’, ‘우리 민족도 뭉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틔워낸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잠재력, 협동정신, 자유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일대 쾌거였다.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3.1운동을 반추하고자 하는 것은 3.1운동이 바로 이러한 민족적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 선교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던 많은 기독교인이 한데 뭉쳐 일어나 일제의 무자비한 박해와 보복의 위협을 무릅쓰면서도 일제에 적극적으로 항거한 데에는 상당 부분 극단적인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는 기독교 복음의 힘이 작용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과 회복의 희망”이다. 한국 교회는 개인 구원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이에서 더 나아가 ‘국권의 회복’, ‘나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제의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분연히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모든 교회가 하나로 뭉쳐 민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기독교의 3.1운동의 정신은 3.1운동 이후에도 지속되어 나갔다. 한국 기독교는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섬으로써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동안 자주독립의 민족적인 역량을 제고하고 축적하는데 힘을 다했다. 구한말부터 각급의 미션스쿨(mission school)을 설립하여 자라나는 세대, 특히 여성에 대한 교육 사업에 만전을 기했으며, 기성세대들을 위한 문맹퇴치운동, 여성계몽운동, 농촌계몽운동 등을 통해 민족의식을 함양해왔다. 또한 절제운동, 금주, 금연운동, 물산장려운동 등을 추진함으로써 전사회적으로 규모 있는 사회, 경제생활을 하는데 앞장서왔다.

광복 이후에도 한국 교회는 6.25동란, 전후 복구, 군사독재, 산업화시대, 그리고 오늘날의 정보화시대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고통과 혼란, 성장과 발전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교회 내부적으로는 현실 참여냐, 개인구원이냐 하는 논의가 있었지만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모든 교회가 하나로 뭉쳐 민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기독교의 3.1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노력해왔다. 기독교 복음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 있지 말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사회를 위해 나누고 섬기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 세상에 섬기기 위해 오셨다(막 10:45).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는 ‘작은 예수’인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와 우리 민족을 섬기기 위해 계속해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기초수급자들, 차상위계층, 30만에서 50만 명으로 추정되는 홈리스들, 200만 외국인 이주자 시대에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이방인들, 늘어나는 미혼모, 독거노인, 중 고등학교 중퇴자들, 그리고 이혼이나 외국인과의 결혼, 또는 미혼모의 자녀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버려지는 아이들, 소년소녀 가장 등 당장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이뿐 아니라 광복 후 67년째 계속되는 남북 분단의 현실은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하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 2010년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이후 계속되는 서해 5도의 긴장상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이후 중단된 금강산 관광 등으로 대변되는 남북 간의 불협화음은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알기 어려운 숙제를 우리 민족에게 던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이 남북 간의 문제이다. 또한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새터민들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북한의 지하교회 신자들의 안전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더 나아가 2,400만의 북한주민 또한 한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5천만 국민과 더불어 평화 통일을 같이 이루어야 할 형제와 자매이다. 그러므로 한시바삐 남북문제를 풀기 위해 온민족적으로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는 군사적인 힘이나 정치, 외교적 기획으로 이룰 수 없다. 기독교가 구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현실 속으로 직접 찾아와 그들과 함께 고통을 받으면서 고통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삶을 사셨던 분이시다. 그는 또한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인간들 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사는 것이며, 따라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도 힘쓰는 것이 한국 기독교도들의 마땅한 사명이요, 역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가 지금까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힘써온 북한주민 지원사업은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더 큰 폭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기독교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종교계, 산업계, 학계, 문화계 등 사회 전반에 걸친 협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모든 교회가 하나로 뭉쳐 민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기독교의 3.1운동의 정신이 다른 종교까지 확대되어 사회 전역까지 아우르는 우리민족의 대서사시의 절정(climax)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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