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서광선 박사 “부활은 ‘자유의 언어’ ‘혁명의 언어’”

대화문화아카데미 콜로키움 ‘내가 믿는 부활’서 밝혀

“인생을 산다는 것이 다 그렇지만, 오늘 저는 죽음의 한 가운데서 왔습니다. 물론 지금 살아 숨 쉬는 삶의 한가운데 있어서 이런 말을 하고 이런 모임에 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살고 존재하고 말하고 관계 맺고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죽음 가운데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23일 오후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열린 콜로키움 ‘내가 믿는 부활’의 강사로 나선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부활을 말하기에 앞서 죽음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밝혔다. 부활에 대한 이해에 앞서 없음으로 둘러싸인 있음을, 고로 죽음으로 둘러싸인 삶이란 자리를 깔아 놓는 것이 순서인 듯 했다. 

서 박사는 "올해 80이 넘은 이 늙은이 역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그야말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죽고 있는지 살고 있는지 애매모호한 상황"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죽음과 나의 삶을 이야기하고,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한편 축복이면서, 다른 한편 대단한 도전이며 고통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죽음이란…“죽음 앞에 침묵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전제를 해 둔 것은 "죽음 앞에 침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슨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기 때문이며, 죽음 앞에 솔직해졌을 때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에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원하는 것은 "삶에 대해서, 남의 인생에 대해서 알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죽음과 죽음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심정" 때문이라며, 그런 맥락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의 유의미성을 찾았다.

서 박사는 언어철학적, 신학적 고찰을 통해 죽음을 이해하려 했다. 알지 못하는 죽음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고 계속 말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말들을 "죽음의 언어"라고 명명한 그는 "죽음의 언어, 죽음에 대해서 하는 말들은 사실을 말하는 언어가 아님"을 지적했다. 죽음의 언어란 "오늘 우리가 경험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고 실험할 수 있는, 사실을 말하는 언어와는 다른 언어라는 것"이었다.

죽음의 언어, “무의미하다고 단정짓기엔 깊은 의미 있어”

서 박사는 그러나 죽음의 언어의 유의미성을 놓고 볼 때, "과학적으로 실증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단정하기에는 우리 죽음의 언어들은 깊은 의미가 있다"며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실험실에서 실험해서 실증되는 사실 이외에도, 우리에게 의미있는 말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했다. "참되다든가 옳다든가 아름답다든가 하는 윤리적 언어, 미학적 언어, 나아가서 하나님과 영혼과 영생이라든가 부활이라든가 하는 말들은 우리 인생의 질, 삶의 질을 달리하고 생의 의미를 부여해 왔고 아직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 박사는 이어 죽음을 말함에 있어 비유 혹은 은유(metaphor)가 갖는 중요성을 설명했다. 발표에 앞서 제시한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꺼낸 그는 "우리는 모르는 일들이나, 알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하고 설명할 때, 혹은 아직 모르는 미지의 일에 대해 말하고 설명할 때, 흔히 사용하는 언어가 비유나 은유"라고 확인했다. 이 대목에서 서 박사는 미국의 구성신학자 셀리 맥페이그가 "예수는 하나님의 은유"라고 한 점에 "우리가 알수도 볼수도 없는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가 하나님을 비유하는 은유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란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지의 세계, 신비의 세계를 사실처럼 말하는 은유나 비유 혹은 이야기들은 "상상의 힘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그 상상이란 신학적 상상력일 수도 있고, 문학적 상상력으로 창조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듣고 실증할 수 있는 이야기들 보다 훨씬 더 힘 있고 깊이 있을 수 있고, 사실로 들릴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박사에 따르면, 형이상학적 언어이건, 비유적 언어이건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서 말해지는 말들은 "희망의 언어"가 되기도 하며 그 희망의 언어를 강하게 말하게 될 때 "믿음의 언어"로 승화된다. 죽음의 언어이든, 부활의 언어이든 보고 만질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신학적·문학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비유 혹은 은유적 언어를 필연코 거쳐가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주간)가 23일 오후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한 콜로키움 ‘내가 믿는 부활’에서 강연하고 있다. 서 박사는 이날 ‘죽음과 부활 : 믿음, 희망, 사랑 그리고 자유’란 주제로 발제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자신의 진솔한 이해를 나눴다. ⓒ대화문화아카데미 제공

이내 서 박사는 죽음과 부활을 엮기 시작했다. 마태복음 26장의 ‘최후 심판’을 들어 "죽음과 그 이후의 이야기가 이승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이승의 삶의 성격이 저승의 심판과 삶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교훈의 특징이 있다"고 말한 그는 죽음의 언어는 "윤리의 언어"라고 했다.

“죽음의 언어는 곧 윤리의 언어이자 종교의 언어”

윤리의 언어 특징으로 "명령문이기도 하나 당위성을 말한다"고 강조한 서 박사는 죽음의 언어, 사후 세계에 대한 비유 이야기들을 윤리의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당과 지옥 이야기, 부활과 영생, 최후의 심판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옳고 바르게, 사람답게, 이웃을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윤리적 교훈"임을 새삼 확인했다.

또 죽음의 언어, 사후의 이야기와 부활의 언어는 윤리의 언어인 동시에 "종교의 언어"가 될 수밖에 없음도 강조했다. 종교의 언어는 윤리의 언어처럼 사실 세계를 서술하는 언어가 아니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로 "당위적인 언어이며 요청하는 언어"임을 간파한 서 박사는 "인간의 윤리적 삶을 위해서 신은 존재해야하고, 영혼은 살아 남아야 하고, 사후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죽음과 부활의 언어에 담긴 믿음과 소망 그리고 자유와 사랑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먼저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가 비단 이승에서 저승에까지 연결된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환원될 것이 아님은 "죽음 이후의 세상은 이 세상과 달라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기"때문이라고 했으며, 이것이 신앙의 언어로 "영생과 부활의 희구"로 표현된다고 서 박사는 말했다.

“죽음의 언어는 ‘사랑의 언어’, 부활의 언어는 ‘자유의 언어’”

서 박사는 또 죽음의 언어는 ‘사랑의 언어’이며, 부활의 언어는 ‘자유의 언어’라며 "부활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이고, 죽음은 부활에 대한 사랑이다. 죽음과 부활의 교훈은 궁극적으로 세상에서 삶을 사랑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박사는 이어 죽음에 대해 자신의 실존이 겪고 있는 고통을 풀어 헤쳐 보였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족한 것, 실수한 것, 잘못한것, 알고서 지은 죄, 모르고서 지은 죄가 많습니다. 돌이켜 보면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의 삶을 살았다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습니다. 무슨 형벌을 받게 될지 몰라서입니다. 아마 이미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이 나에게 저지른 죄들을 용서할 수 있듯이 내 자신의 잘못들,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하나님의 용서를 비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내가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최후의 심판대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죽음 다음의 삶을 홀가분하게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활의 언어는 저항의 언어, 극복의 언어, 혁명의 언어”

마지막으로 서 박사는 죽음과 부활의 언어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죽음과 부활은 대립하는 언어"임을 꼽았다. 그는 "부활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고, 부활은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라며 "다른 말로하면, 부활은 죽음을 죽이는 것이며 부활은 죽음과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활의 희랍어 말 뜻(일어난다)이 가리키듯 부활의 언어는 저항의 언어, 극복의 언어, 반란의 언어, 변화의 언어, 혁명의 언어, 반전의 언어란 얘기였다.

그러면서 부활의 체험과 희망과 믿음을 한 개인의 삶 속에 국한시킬 수 없음을 강조한 서 박사는 "죽음과 부활은 사회적, 정치적 언어"라며 "한 사회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죽음의 세력에 저항하고 이를 극복하고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며 "이를 혁명이라고 한다. 따라서 죽음과 부활의 사회적 언어는 역사의 언어"라고 역설했다.

‘4.19’ ‘5.18’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한 정치적 부활사건이었다"고 말한 서 박사는 반 세기 넘게 허리가 잘려 분단의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부활은 다름 아닌 "통일"임을 확인했다. "우리 민족의 부활은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통일"임을 재차 강조한 그는 "이렇게 되면, 죽음과 부활은 이미 비유나 은유나 상상의 언어가 아니라, 역사적인 언어가 된다"고 했다. 민족의 부활, 통일로 일어나는 부활은 역사적 사실로 현실화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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