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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헌의 자살예방 칼럼] ‘생명의 친구’가 되자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최의헌 원장
필자가 한국자살예방협회에 관여하게 된 것은 협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이듬해인 2005년부터 협회의 사이버상담 활동을 담당하면서부터다. 필자는 상담연구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연구원에서 이미 사이버상담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버상담의 설립부터 제반 구성을 세우고 상담사를 선발·관리·지도 감독하는 여러 상세한 부분에 대한 선경험이 있던 터라 협회의 사이버상담실을 설립 준비 단계부터 맡아서 진행했다.

필자가 가진 사이버상담의 노하우를 협회에 전수한 셈이었다. 하지만 ‘자살예방상담’이라는 영역에 있어서는 필자도 초보자에 불과했다. 시행착오와 경험을 쌓아가면서 현장에 있다 보니 제법 지식과 경험도 생기고 교육의 기회도 많아졌다. 자살예방상담의 경우 기존의 면접상담의 방식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상담의 전문가이며 동시에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의 배경이 비교적 유리하게 활용됐다. 하지만 필자도 많이 배우게 된 부분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게이트키퍼(Gatekeeper)의 필요성이다. 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게이트키퍼는 그대로 번역하면 문지기이다. 여기서는 자살예방과 관련한 용어이므로 흔히 생명지킴이 혹은 생명수호자라고 번역하는 편이다. 필자는 ‘생명의 친구’라는 명칭을 쓴다. 의미를 담은 친숙한 용어를 고민하다가 만든 명칭이다. 국내에서 자살예방을 위한 게이트키퍼라고 하면 자연스레 ‘생명의 친구’라는 용어가 떠오르도록 하려는 게 필자의 소망 중 하나였다.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생명지킴이나 생명수호자라는 용어가 자리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뭐 용어가 그리 대수라고 자기가 용어를 개발하고 그러냐? 자기 자랑 아니야?”라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 것 같다. 사실 자랑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자신이 자살예방의 전문가라는 점에 대해 어깨를 으쓱하는 거만함은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자살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겸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일에 관여한지 7년째인데 해가 갈수록 자살률은 더 올라가고 있으니 정말 난처한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생명의 친구가 더 많이 생겨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욱 높여야겠다는 동기가 강해진다. 그래서 용어 하나도 고민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이 활동에 득이 될 만한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생명의 친구’는 자살예방 전문가와 대비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자살예방에 대한 활동에 참여해보니 정말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필자에 상응하거나 그보다 나은 전문가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의 자살예방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문가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의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문가보다 생명의 친구가 더 중요하다. 생활의 현장에서 자살을 감지하고 막아줄 수 있는 건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비유를 들자면 소방관은 불을 끄는 전문가이므로 화재 진화에 있어서 소방관의 역할 비중은 절대적이지만, 화재 예방과 진화에 있어서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바로 제보자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불조심을 하고, 화재의 상황을 현장에서 재빨리 발견해 전문가인 소방관에게 신고하는 제보자가 늘어날수록 화재의 피해가 최소화될 것이다.

이 점은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더욱 분명해진다. 마음 속에 자살에 대한 생각을 품게 되면 그는 과연 자신의 생각을 누구에게 말하게 될까? 전문가보다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 독자들도 한 번 생각해보라. 자신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누구에게 얘기하게 될까? 혹 내 생각을 말하지 않더라도 눈치 챌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는 또 누구일까, 전문가일까 아니면 가까운 사람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다보면 전문가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이 흔히 갖게 되는 오류 중의 하나가 죄에 대해서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는 태도이다. 성경에서는 죄가 얼마나 부정적인 것인지를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에게 죄의 요소가 있을 때 그것을 떳떳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시각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 죄를 벗어날 수 없을뿐더러 그 죄를 선호하는 것이 실존인 것이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 중 하나는 죄를 좀 더 충분하게 논의의 주제로 끌어와야 한다는 점이다. 그저 쉬쉬하다가는 죄의 기회를 오히려 부추기는 셈이 될 수 있으며, 죄의 음성적인 특성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예수님이 죄인과 어울릴 때에 바리새인을 위시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태도를 비난했다. 우리가 그런 판단자의 자리에 있게 되면 자기의 죄에 대해서는 얼마나 공개적으로 논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울 것이다. 도리어 자기 죄를 숨기기 위해 간음한 여인 앞에서 먼저 돌을 집어 드는 사람이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처럼 될 수 있겠다.

비슷한 상황을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입해보자. 어떤 기독교인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나쁜 생각이라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얘기를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자기를 비판할 사람보다는 이해해줄 사람에게 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해해주는 사람 앞에서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이해를 받으면 자살의 가능성이 높아질까?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마치 죄인 옆에 예수님이 계셨던 것처럼 우리들은 우리 주변에서 자살의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느끼는 사람들 옆에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자살은 나쁘다는 말만 계속 하면 자살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교회를 떠나게 된다. 교회가 사람들을 품는 게 아니라 놓치는 꼴이 된다. 그것은 생명의 친구도 아니고 생명의 교회도 아니다. 친구 안에 있을 때 그리고 교회 안에 있을 때 그나마 문제를 다룰 기회가 늘어나고 해결의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생명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 지 다음에 논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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