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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헌의 자살예방 칼럼] 오라, 우리가 서로 자살에 대해 변론하자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최의헌 원장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1:18)

이사야는 한 세대가 망해가는 시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전파하였다. 하나님이 우리들과 논쟁을 벌이시겠단다. 우리들 죄가 아무리 많아도 다 없앨 수 있다고 단언하신다. 그렇다면 변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우리 인간들은 죄가 많은 것이 꽤나 큰 벽이라고 여기나보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는 기독교인들에게 변론을 요청한다. 주제는 이사야서의 ‘죄의 문제’가 아니라 ‘자살’이다. 어떤 이는 자살에 대해 쉬쉬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런 게 미덕인 때가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의 현실을 안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 주제에 관해 얼마나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외국의 자살 통계연구를 보면 개신교 신자들의 자살률은 가톨릭 신자들의 자살률보다 높다고 보고되며 그 이유로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 신자들보다 결속력이 없어서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처음 그 정보를 접했을 때 한국은 그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없다. 가톨릭과의 비교는 모르겠지만 개신교인이 결속력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이제 고개가 끄덕여진다. 끈끈한 정으로 유대감이 충만하다는 나의 생각은 이젠 옛말이 되었다.

최근의 자살 보도가 늘어나는 와중에 기독교인의 자살을 자주 접하게 된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에서 기독교인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은 다른 군에 비해 자살을 적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표적인 이유로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속설을 믿기 때문이다. 필자가 속설이라고 적은 건 의도적인 것이다. 자살은 잘못된 행위임이 분명하지만 구원의 유무를 결정지을 요건은 못 된다. 신학적으로 인간의 구원은 행위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하여 필자는 기독교인과 변론을 하고 싶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가 자살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지옥에 간다는 건 아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자살한 성도나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 자살한 이가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설명하는데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표현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고 다른 방도를 찾다가,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면 병으로 죽은 것이지 자기 의지로 죽은 건 아니므로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좀 더 급진적으로 설명하여, 병으로든 자유의지로든 자살을 한 것이 행위로서는 다를 바가 없으며 그것이 ‘잘못’이나 ‘죄’가 되지만 구원의 근간을 흔들만한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이 말을 담대하게 꺼내서 변론하지는 못하겠다. 그 생각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후폭풍이 두려워서이다. 지금의 많은 기독교인은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방패막을 뚫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렇게 견고해 보이던 방패막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지옥이 무서워서 자살만큼은 안 하던 기독교인들이 이젠 지옥에 가도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와 절망의 자세로 자살에 문을 두드린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더 큰 문제는 이것이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일차 방어벽이 뚫리면 이어서 막는 이차, 삼차 방어벽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너무나 처참하게도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그러니 그마나 버티게 해주고 있는 일차 방어벽을 과감히 풀어헤치는 용기는 나조차도 없는 것이다. 내가 의도한 바는 지금껏 자살한 영혼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유가족을 위로하려는 생각에 있는 것이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 말에 안심하고 자살을 좀 더 쉽게 시도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은 죄사함을 설명하는 바울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1,2) 자살하면 지옥 가는 건 아니라고 해서 자살을 쉽게 선택할 수는 없다. 자살은 여전히 잘못된 것이고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정말 변론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이것이다. “오라 우리가 변론하자. 우리가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사랑하고 삶을 유지하게 하는 기독교의 힘은 무엇이 있는가? 우리에게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일차 방어벽 외에도 우리를 극단의 상황에 몰고 가지 않게 할 만한 다른 방어벽은 무엇이 있는가? 기독교는 생명을 살리는 힘이 부족한 것인가? 살아 있는 송장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그저 자살만은 안 하게 하지만 비참한 삶의 느낌은 버리지 못하고 산송장처럼 살아 있게만 할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생명을 소유하게 할 것인가?”

한 가지 유념할 사항이 있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에 대한 견해가 각자 다르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뉴스의 제목에서나 인터넷 글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자살을 부추기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하고 신중하고 공개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경우라면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주 사용되는 것이 권장된다. 누군가 자살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을 때에도 묻어두지 말고 구체적으로 단어를 넣어 “혹시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왜 그런가? 자살에 대한 생각을 건강하게 표출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도와주기 위함이다. 그러니 단순히 자살이란 단어를 언급하는지 마는지에만 집중해선 안 되고, 반드시 자살이란 단어를 ‘어떤 자세와 어떤 방식으로’ 언급하는지 고려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자살의 주제를 음지에 두지 말고 건전하게 발전적으로 공개적으로 논의해보자. 그래서 생명을 살리자.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연세의대 외래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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