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병학] 유대 묵시문학과 신약성서: 에녹과 예수(3)

이병학·한신대 신약학 교수

II. 에티오피아어 에녹서의 메시아론

2. 비유들의 책의 메시아적 인물들의 네 가지 유형과 기능

3) 인자

▲이병학 한신대 교수 ⓒ베리타스 DB

인자는 하나님이 택한 자이다. 인자와 택한 자의 동일화의 결정적인 증거는 “영혼들의 주님이 그를 택하였다”(46:3)는 언급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인자와 심판자로서의 그의 기능이 46:1-8에서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태초의 시간 전부터 있었던 자를 보았다. 그의 머리는 양털처럼 희었고, 그리고 거기에 또 한 개인이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인간의 얼굴과 같았다. 그의 모습은 거룩한 천사들 중에 있는 자의 그것처럼 은혜로 충만하였다. 나는 나와 동행하면서, 나에게 인간으로 태어난 그분에 관한 모든 비밀들을 나에게 계시하여준 그 천사에게 물었다. 이분은 누구이며, 태초의 시간 전부터 있었던 자로서 가고 있는 그는 어디서 왔는가? 그는 나에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인자이다. 그에게 정의가 속하고, 정의가 그에게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가 모든 감추어진 보물 창고들을 열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들의 주님이 그를 택하였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가 영원한 정직 가운데서 영혼들의 주님 앞에서 승리하도록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네가 본 이 인자는 왕들과 권력자들을 그들의 안락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그 강한 자들의 왕위를 빼앗을 자이다. 그는 강한 자들의 고삐를 파괴하고 죄인들의 이를 부서뜨릴 것이다. 그는 왕들을 그들의 보좌와 제국들부터 폐위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를 높이지도 않고 영화롭게 하지도 않기 때문이며, 그들의 왕권의 근원인 그에게 복종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한 자들은 뺨을 맞게 될 것이고, 그들의 얼굴은 수치와 침울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들의 처소와 침상은 벌레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들은 침상에서 일어날 희망을 도무지 갖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의 별들의 심판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땅 위에서 걷고 또 거기서 사는 동안에 가장 높은 분(=하나님)을 거역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행위들을 억압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들의 모든 행위들은 억압이다. 그들의 권력은 그들의 부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에게 빈다. 그러나 그들은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을 부인한다. 이제 그들은 그의 집들에 모이고 싶어 하고 영혼들의 주님에게 매달리는 신앙인들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46:1-8).

여기서 인자에 대한 묘사는 단 7:9-14의 본문과 아주 유사하다. 거기서 보좌에 앉아 있는 하나님은 제국들의 희생자들인 수천수만의 면전에서 짐승들, 즉 야수 같은 억압자들을 심판한다. 그때 짐승들과 대조되는 “인자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나타난다(단 7:13). 하나님은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었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섬기게 하였다(단 7:14). 이 환상에는 미래적 종말론적 관점이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인자는 고난당하는 유대 민족을 위한 마지막 때의 해방자로 생각될 수 있다.
 
비유들의 책에서 인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정의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또한 감추어진 모든 비밀들을 계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위에서 인용된 46장의 4-6절에서 인자는 억압자들의 폭압에 맞서는 투사와 심판자로 아주 인상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네가 본 이 인자는 왕들과 권력자들을 그들의 안락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그 강한 자들의 왕위를 빼앗을 자이다. 그는 강한 자들의 고삐를 파괴하고 죄인들의 이를 부서뜨릴 것이다. 그는 왕들을 그들의 보좌와 제국들부터 폐위시킬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유들의 책의 인자는 다니엘서의 인자와 상당히 다르게 채색되었다. 비유들의 책 46:3에서 인자의 한 중요한 속성으로 표현된 정의는 에녹의 서신에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의인이 정의의 길들 위를 거닐 것이다”(92:3).
 
억압자들의 오만, 억압, 탐욕, 그리고 우상숭배가 46:7-8에서 비판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이 심판한 “하늘의 별들”은 억압자들에 의해서 처형된 성인들과 순교자들을 상징한다. 생명의 하나님을 부인하고 우상들을 숭배한 억압자들은 신앙적인 해방 투사들을 처형과 학살로 다스렸다.
 
인자는 왕들과 권력자들과 맞서는 그의 해방 투쟁과 승리를 통해서 피억압자들과 고난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 있다. 이와 반대로 약자들을 무시하고 착취하였던 억압자들은 비참해진다. 악인들이 침상에서 일어날 희망이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수치와 절망적인 운명은 권력자들이 더 이상 무력한 자들 위에 군림하는 승리자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48:1-9에서 인자는 택한 자와 명백하게 동일화되며, 또한 인자는 무력한 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그 곳에서 나는 정의의 샘을 보았다. 그것은 고갈되지 않고 여러 개의 지혜의 샘들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다. 모든 목마른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지혜로 충만하게 되었다. 그들의 처소들은 성인들과 의인들과 택한 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된다. 그 시간에 저 인자가 영혼들의 주님, 즉 태초 전부터 존재하는 자 앞에서 호명되었다. 그는 태양과 달의 창조 전에 그리고 별들의 창조 전에 영혼들의 주님 앞에서 호명되었다. 그는 의인들이 그에게 기대고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위한 한 지팡이가 될 것이다. 그는 이방인들의 빛이며, 또 그는 마음이 아픈 자들의 희망이 될 것이다. 땅 위에 거하는 자들은 모두 그이 앞에 엎드려서 예배할 것이다. 그들은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축복하고 노래할 것이다. 이 목적으로 그가(=인자) 택한 자가 되었다. 창세전에 그리고 영원히 영혼들의 주님의 임재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가 영혼들의 주님의 지혜를 의인들과 성인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왜하면 그가 그들의 몫을 예비해두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의인들이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 안에서 이 억압의 세계와 그 모든 생활양식들과 관례들을 증오하고 경멸했기 때문이고 또 그들이 그의 이름으로 구원될 것이고 그들이 생명을 얻는 것을 그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날에 땅의 왕들과 힘 있는 지주들은 그들의 손이 저지른 행위들 때문에 굴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비참과 피곤의 날에 그들은 자신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불 속에 던져진 풀처럼 그리고 물속에 던져진 납처럼 선택된 자들의 손에 넘겨줄 것이다. 그들이 성인들의 면전에서 불타게 되고 그들의 시야 앞에서 물속에 가라앉을 것이며 아무데도 그들을 위한 처소가 없을 것이다”(48:1-9).

여기서 비유들의 책의 저자는 인자가 모든 죽은 의인들과 살아 있는 의인들과 교제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의 인자의 선재적 그리고 종말론적 차원을 묘사하고 있다. 샘물은 생명을 상징한다. 숨겨져 있던 인자가 목마른 자들의 면전에 나타났다. 그의 이름이 호명되어서 그는 나타났다. 인자는 영혼들의 주님의 현존 안에서 그리고 시간의 지배자 앞에서 그를 보낸 자의 정의로 호명된다. 인자의 이름은 하나님의 정의와 동일화된다. 왜냐하면 인자가 정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인자에게 창조 전에 이름이 주어졌고 지금 그의 이름이 의인들, 성인들, 그리고 택한 자들에게 계시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인자의 선재와 함께 정의의 선재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정의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창조 전에 있었다. 창조는 정의의 법칙성과 지혜의 힘에 예속된다. 정의는 선재적이다. 인자의 이름은 하나님의 정의이다.
 
또한 인자는 “지팡이”로서의 그의 기능과 함께 약자들을 위한 삶에 버팀목이 되는 역할을 한다. 그는 또한 “이방인들의 빛”이고, “마음이 아픈 자들의 희망”이다. 자신을 약자들과 연대하고 동일시하는 해방자로서의 인자의 역할이 이러한 표상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무력한 자들을 위한 해방자로서의 인자의 기능은 48:5-7에 표현되었다. 48:6에서 인자는 택한 자와 동일시된다. 인자, 메시아, 그리고 택한 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그들의 기능에서 동일하다.
 
의인들과 성인들의 저항은 그들이 “이 억압의 세계와 그 모든 생활양식들과 관례들을 증오하고 경멸하였다”(48:7).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은 억압의 구조와 이 세계의 불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억압자들에게 맞서고 그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들 편에 서 있다.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에서 의인들을 그의 심판 행위의 도구로 세운다(48:9). 그러므로 억눌린 자들은 이 불의의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과  더 나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계속해야만 한다. 하나님에 의해서 숨겨진 택한 자와 인자의 동일화는 62:1-14에서 다시 발견된다.

“그러므로 주님이 왕들과 통치자들과 고급 관리들과 지주들에게 명령했다. ‘혹시 너희가 택한 자를 알아볼 수 있는지 눈을 뜨고 눈썹을 올려라!’ (...) 그들은 무서워지고 낙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저 인자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아 있는 것을 볼 때 고통이 그들에게 엄습할 것이다. 이러한 왕들, 통치자들, 그리고 모든 지주들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그를, 즉 감추어져 있던 그를 축복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리고 찬미하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자가 태초부터 감추어져 있었고, 그리고 가장 높은 분(=하나님)이 그를 그의 권세의 현존 안에 예비해두었기 때문이다. 그 때 그가(=하나님) 그를(=인자) 성인들과 택한 자들에게 계시하였다. 성인들의 회중이 세워질 것이고 모든 택한 자들이 그 앞에 설 것이다. 그 날에 모든 왕들, 통치자들, 고급 관리들, 그리고 땅을 지배하는 자들이 그 앞에 얼굴을 대고 엎드릴 것이고 그리고 예배할 것이고, 그리고 저 인자에게 그들의 희망들을 호소할 것이다. 그들은 그의 발 앞에서 자비를 구걸하고 간청할 것이다. 그러나 영혼들의 주님 자신이 그들로 하여금 미치게 해서 그의 면전에서 밀고 떠나가도록 할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창피로 가득하고 그들의 표정은 어둠으로 덮칠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들에게, 즉 그의 자녀들과 그의 택한 자들의 억압자들에게 복수가 실행되도록 형벌을 위해서 그들을 천사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인들과 택한 자들에게는 한 사건이 될 것이다. 그들은 영혼들의 주님의 진노가 왕들과 통치자들과 고관들과 지주들에게 내릴 것이기 때문에, 또 그의 칼이 그들로부터 제물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에 즐거워 할 것이다. 의인들과 택한 자들은 저 날에 구원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들은 죄인들과 억압자들의 얼굴을 결코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영혼들의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할 것이고, 그들은 저 인자와 함께 영원토록 먹고 쉬고 그리고  일어날 것이다”(62:1-14).

여기서 택한 자와 인자는 각기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를 나타내는 인물들이다. 하나님은 인자를 태초 전에 택한 자로 선택하였고, 지금까지 그를 감추어 두었으며, 그리고 이제 그를 성인들과 택한 자들에게 계시하였다. 택한 자와 인자는 동일하게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 약자들을 억압하는 권력층들을 재판하는 심판자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약자들은 인자의 이름이 그들에게 계시되었기 때문에 즐거워한다.

“그들에게 큰 기쁨이 왔다. 그들은 저 인자의 이름이 그들에게 계시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주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고, 그리고 찬양하였다. 그는(=인자) 땅의 표면에서부터 결코 사라지거나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미혹하는 자들은 쇠사들에 묶일 것이고, 그들의 황폐한 회중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모든 그들의 행위들은 땅의 표면으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썩을 것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 인자가 나타나서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았기 때문이다. 모든 악은 그의 면전으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그는 저 인자에게 가서 말한다. 그리고 그는 영혼들의 주님 앞에서 강해질 것이다. 이것이 에녹의 셋째 비유이다”(69:27-29).

인자의 이름이 그들에게 계시되었기 때문에 눌린 자들은 기뻐한다. 62:7의 진술(인자가 태초부터 감추어져 있었다)과 69:27의 진술을 비교하면 우리는 인자의 이름이 인자의 인격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자의 이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인자의 이름은 하나님의 정의를 뜻한다. 인자의 이름은 정의이며, 인자는 그것들의 의인화이다. 왜냐하면 인자가 정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참조, 46:3):“‘이 사람은 인자이다. 그에게 정의가 속하고, 정의가 그에게 머물러 있다.’” 만일 눌린 자들이 하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그것을 인자의 이름으로 할 수 있다. 인자의 이름이 “정의”로 계시된 것은 역사 안에서 고난당하는 사람들 가운데 현존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행동을 위한 보증이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겪고 있는 불의의 현실에 중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죄인들은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을 부인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 48:7에서 성인들과 의인들은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 안에서 구원된다고 서술되어 있다. 인자의 이름이 계시되었기 때문에 믿는 자들이 기뻐하고 찬미한다(69:27).
 
그런데 인자의 이름과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인자의 이름과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 사이에는 확실한 동일화의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정의이고, 그리고 그의 메시아적 대리자는 역시 정의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받아서 그의 제자들에게 계시하였고 이것을 근거로 그가 하나님과 하나가되었다고 하는 요한복음의 고별 설교에서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 기능이 분명히 나타난다. 비유들의 책의 저자는 인자의 선재적 그리고 종말론적 차원을 통해서 정의를 갈망하는 모든 죽은 의인들과 아직 숨 쉬고 있는 산 의인들의 해방에 대한 희망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4) 메시아

위에서 이미 보았듯이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 인물인 의인, 택한 자, 그리고 인자가 서로 대등한 그리고 동일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제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서 이러한 세 인물들이 또 다른 인물인 “메시아”와 직접적으로 동일화 된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비유의 책에서 “메시아”는 단지 두 곳에서 언급된다. 첫째는 48:10에서 발견된다. 이미 위에서 인자와 택한 자가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로 나타나는 48:1-9을 인용하였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이제 48:10만 인용하고자 한다:

“그들(=악한 지배자들) 의 피곤의 날에 땅위에는 장애가 있을 것이고, 그들은 그들(=의들과 성인)의 얼굴 앞에서 넘어질 것이고,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고, 그리고 그들을 손으로 붙들고 일으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영혼들의 주님과 그의 메시아를 부인하였기 때문이다. 영혼들의 주님이여 찬미 받으소서”(48:10).
 
48:1-10에서 인자, 택한 자, 그리고 메시아는 하나님의 동일한 대리자를 가리키는 호칭들이다. 한 메시아적 인물이 여기서 세 가지 방식으로 호칭되었다. 48:4에서 인자는 이미 의인과 동일시된다. 만일 우리가 메시아의 기능과 특징을 연구한다면, 48:10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메시아는 사실 위에서 언급한 세 인물들과 동일화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메시아의 정체성과 기능이라는 점에서 자세한 설명은 없다. 단지 땅의 왕들, 곧 죄인들이 영혼들의 주님과 그의 메시아를 부인하였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 언급되었다. 말하자면, 여기서 영혼들의 주님과 그의 메시아 사이에 동일한 비중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메시아”는 단지 하나님의 대리자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메시아는 52:1-9에서 언급된다. 여기서 우리는 고난 받는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억압의 구조를 철폐하는 맥락에서 메시아의 기능과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날들 후에 내가 바람에 휩쓸려서 서쪽으로 옮겨져서 모든 비밀스러운 환상들을 보았던 같은 장소에서 나는 하늘의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과 미래의 일들을 보았다. 거기에는 철산, 동산, 은산, 금산, 색채가 있는 금속산, 그리고 납산이 있었다. 나는 나와 동행하는 천사에게 물었다: “내가 비밀로 본 이것들은 무엇인가?” 그는 나에게 대답하였다: “당신이 본 이 모든 것들은 명령을 내리고 땅에서 찬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메시아의 권위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 때 이 평화의 천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대답했다. “잠시 기다려라. 영혼들의 주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이 너에게 계시될 것이다. 너는 네 자신의 눈으로 본 이 산들이 - 철산, 동산, 은산,  금산, 색깔이 있는 금속산, 그리고 납산 - 모두 택한 자의 임재 안에서 불 앞에 있는 벌집처럼 될 것이고, 그러한 산들의 정상으로부터 떨어지는 물처럼 될 것이고 , 그리고 그의 발에 짓밟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날들에 일어날 것이며, 아무도 금이나 은에 의해서 구원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전쟁을 위한 철이 전혀 없을 것이고, 아무도 갑옷을 입은 않을 것이다. 동이나 주석은 구할 수 없을 것이고,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납도 무엇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택한 자가 영혼들의 주님의 면전에 나타날 때, 이 모든 물질들이 제거되고 땅의 표면으로부터 파괴될 것이다”(52:1-9).

철산은 로마의 억압구조를 상징한다. 철로 된 산은 군수 산업을 나타내며, 금과 은으로 된 산은 돈의 축적을 상징한다. 금속으로 된 산들은 로마제국 안에 있는 죽음의 우상들의 힘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메시아의 대항 세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기능은 무엇인가? 메시아는 무력과 재력의 우상들과 대립한다. 즉, 그는 그의 힘을 통해서 이러한 금속 산들을 파괴시킴으로써(52:6) 고난당하는 백성들을 죽음의 우상들의 권력으로부터 해방할 것이다. 에녹은 메시아의 강력한 활동을 보임으로써 고난당하는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시도한다. 메시아는 고난당하는 자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이러한 금속 산들을 파괴시킴으로써 해방하는 활동을 한다. 그러므로 에녹은 메시아가 모든 인간의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즉, 메시아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통해서 폭력의 역사를 끝장낼 것이다. 메시아의 힘은 더 이상 전쟁과 억압과 학살이 없도록 금속 산들을 파괴시킬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심판자, 함께 싸우는 투사, 그리고 해방자로서의 메시아의 기능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철산의 파괴의 본질은 억눌린 자들의 해방에 있다. 메시아의 힘은 로마제국의 억압구조에 대립한다. 비유들의 책의 저자는 로마제국의 폭력적이고 가부장적 세력에 저항하고, 약자들을 해방시키고 생명을 주는 메시아의 힘을 표현한다. 그는 메시아가 그들의 편에 서 있다는 것과 메시아가 금속산들이 파괴될 때가지 그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것을 수신자들에게 알려준다. 이로써 그는 그의 수신자들에게 제국의 불의한 권력구조에 맞서서 투쟁하도록 고무한다. 메시아는 금속산들을 파괴시키면서 죽음의 세력을 허물어버린다. 메시아의 권위는 하나님의 정의에 근거한다.
 
 52:9에서 "택한 자가 영혼들의 주님 앞에 나타날 때" 금속산들이 파괴되고 사라진다고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메시아는 택한 자와 동일화된다. 하나님의 대리자가 억눌린 자들과 가난한 자들 중에 현재 감추어져 있지만 마지막 때에 계시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메시아가 고난당하는 자들의 해방을 위해서 금속 산들을 파괴한다는 점에서(52:4), 영혼들의 주님에 의해서 감추어진 인자가(48:6) 그의 메시아와 동일화 된다(48:10)는 것은 아주 논리적이다.
 
철산의 파괴는 눌린 자들을 위한 해방에 대한 환상일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53:6-7에서 분명하게 증명된다:

“이 다음에 의인과 택한 자가 그의 회중의 집에 나타날 것이다. 그 시간 후로부터 그들은 영혼들의 주님의 이름 안에서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산들은 그의 정의 앞에서 땅처럼 평탄해질 것이며, 언덕들은 샘처럼 될 것이다. 그리고 의인들은 죄인들의 억압으로부터 쉼을 누릴 것이다”(53:6-7).

여기서 “의인과 택한 자”는 “의로운 택한 자”로 번역될 수 있다. 우리는 의인, 택한 자 , 인자, 그리고 메시아가 구원자, 심판자, 해방자, 그리고 함께 싸우는 투사로서 동일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폭력의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대안적 세계를 시작할 하나님의 종말론적 메시아적 대리자 인물을 지칭하는 호칭들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네 메시아적 인물들은 각기 고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항상 의인들과 성인들과 택한 자들과 함께 존재하며, 또한 그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대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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