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조직신학자들, 다문화 사회의 ‘혼종성’ 개념에 응답 나서

제7회 한국조직신학자대회 개최

통계상으로 외국인 숫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오늘날 한국사회는 싫든 좋든 ‘나’와 다른 전통과 문화를 지닌 이들을 벗 삼아 살아야 할 상황에 내던져저 있다.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닐터, 28일 열린 제7회 한국조직신학자대회에선 다문화 사회에 처한 기독교(신학)의 과제를 놓고, 진지한 토론이 진행돼 주목을 모았다.

자연히 이날 토론회에선 다문화 사회와 맞물린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탈식민주의와 탈민족주의에 대한 신학자들의 견해가 표출됐으며, 특히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다종교 상황에서의 종교적 정체성을 논하는 과정에선 최근 신학계에서 키워드로 사용되고 있는 ‘혼종성’(hybridity)에 대한 신학자들의 응답도 있었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이정배 박사(감신대)의 좌장으로 진행된 이 토론회에서 첫 운을 뗀 김경재 박사(한신대 명예교수)는 탈민족주의에 관한 한 타자의 생존 억압 및 생존 조건 박탈에 저항하여 발전한 ‘자기방어적 민족주의’와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의 정치경제적 타락형태로서 근대 식민지 쟁탈 시대에 유행했던 ‘강대국들의 민족주의’를 구별할 것을 요청하며 후자는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국가주의 시대는 지나갔으나, 민족이란 개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으며 기독교가 보편적 종교로서 민족, 국가, 사상 이념에 얽매이지는 않으나 "기독교 교회가 뿌리내리고 있는 인간공동체의 ‘살과 피와 신경망’과 같은 민족의 희배애락을 아랑곳하지 않는 관념적 기독교에 불과하다"면 "무의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 박사는 "(오늘날)교회의 임무는 ‘문화공동체’로서 민족의 귀중함을 긍정하면서,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가 되도록 새로운 비전으로서 인도해가는 과제를 갖는다"며 "국가보다 민족이 중요하고, 민족보다 세계 공동체가 중요하고, 세계공동체보다도 ‘하나님의 나라’가 더 중요하고 큰 것"이라고 역설했다.

“혼종성, 실재의 존재양식이 다양성을 기반으로함 보여줘”

또 탈식민주의 신학운동에서 제기되는 ‘혼종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출한 김 박사는 이와 짝지어 회자되는 ‘다원성’(plurality), ‘다양성’ 혹은 ‘복수성’(multiplicity)에 대한 의견도 더불어 밝혔다.

우리나라에선 종교혼합주의라고 번역되고 있는 ‘신크레티즘’(Syncretism)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혼종성’ 문제에 대해 김 박사는 먼저 "인간의 정신적 삶은 본질적으로 ‘해석학적 과정’을 거치면서 타인의 정신적 삶의 고귀한 가치와 의미를 자기 삶 속에 창조적으로 흡수해 융합해 가는 과정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전제하고는 "그 단어개념이 긍정,부정적 의미를 떠나서 인간개인과 공동체의 ‘정신적 삶의 해석학적 운동과 전개과정’을 표현하는 가치중립적 학문개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신크레티즘’이나 ‘혼종성’을 말하는 단초는 실재의 존재양식과 실재체험에는 획일적 단일성만 존재하지 않고, 다양성과 다원성이 존재한다는 기본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 김 박사는 기독교 복음의 본질을 ‘신학적 교리체계’에 가두려는 학문적 독선을 비판하며, "기독교 복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삶, 죽음, 부활 사건 안에서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정의로우심’이 온전히 계시되었고, 인류와 피조물은 그 계시적 사건 안에서 화해, 자유, 평화, 생명, 영생의 길을 체험했다는 고백"이라고 했다.

아울러 "‘복음의 본질’은 변화되어서는 아니되는 자기정체성을 유지하지만, 그 증언과 표현과 복음적 삶의 양태는 다양성을 지니고 새롭게 창조적으로 변해가야 하는 것"이라며 "거듭 강조하건데, ‘복음의 본질’은 절대적이고 영원하지만, 신학체계와 교리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이고 다분히 역사문화적 표현물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패널로 참여한 황승룡 박사(호남신대 명예총장)는 탈식민지 논의에 무게를 두고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서구중심 신학으로부터 탈피하여 한국적 신학을 확립하기 위해 ‘혼종성’이 주는 함의를 되새길 것을 촉구했다.

“탈식민주의 신학의 핵심 개념은 ‘혼종성’”

황 박사는 "탈식민지의 이론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중심과 주변의 역전, 세계화와 지역화의 공존, 혼종성, 자민족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 옥시덴탈리즘 등에 주목하는 것"이라며 "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에서 서구중심주의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서구중심의 사고를 전복시키지 않는 한 이주민에 대한 편견, 피부색에 대한 차별, 인종에 대한 무시를 벗어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서구중심의 관점에 익숙한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그들이 제시한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를 규정하는 복제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지닌다"면서 "탈식민지 관점은 바로 이와 같은 왜곡된 시각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중심과 주변의 역전을 통한 새로운 관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탈식민주의 신학에서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종성’에 대해선 "서로 다른 두 개의 종이 접붙임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제3의 종으로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했으며, "혼종성이라는 용어의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연관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황 박사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사회는 이주민과 다문화라는 개념을 통해서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부여받았다"면서 "혼종성과 정체성, 문화적 정체성,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다시 한 번 반성하고 공간적 개념과 시간적 개념을 극복하는 대안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이슬람 원천 봉쇄 선언 적절치 않아”
“혼종성 개념, 종교 혼합 뜻하면 적절치 않아”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

다른 패널인 김균진 박사(연세대 명예교수)는 다종교 상황에 처한 한국교회 내 혐오증마저 일으키고 있는 이슬람과의 관계 모색을 비교적 균형 있는 입장에서 정리, 관심을 끌었다. 김 박사는 먼저 보수적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슬람의 원천 봉쇄를 선언한 데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원천 봉쇄를 선언한다 해도 이슬람권과의 교역이 증대함에 따라 인적 교류가 더 활발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이슬람교가 한국에 점점 더 확대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오히려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의 전통 종교들에 대해서는 물론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관용적, 포용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출산 장려를 성장의 전략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교에 대해 "매우 공격적이란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도 더불어 밝혔다.

김 박사에 따르면, 이슬람 종교는 자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외국(주로 유럽)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요구한다. 기독교 문화권에 대해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요구하지만, 이슬람 국가 내에서는 타종교에 대해 자유와 관용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종성’의 개념에 대해선 "만일 이 개념이 종교의 혼합을 뜻한다면, 이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며 "물론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타종교의 장점들을 수용하고 자기의 종교를 보다 더 풍요롭고 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종교들이 ‘혼종’을 이루어 하나의 ‘혼합종교’로 용해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김 박사는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기독교가 "종교적 복수성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김 박사는 "기독교에만 구원의 길이 있다", "기독교에만 진리가 있다",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면 할수록 "개신교회는 더욱 더 한국 사회에서 찬밥 신세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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