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말 한국 사회는 미국의 예술가를 놓고 예기치 않게 홍역을 치렀다. 이 사회에 논란을 가져온 주인공은 팝가수이자 행위예술가인 레이디 가가였다. 그녀는 브라이트니 스피어스,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 유명 가수들의 곡을 작곡해오다 2008년 데뷔 앨범 ‘명성(The Fame)’을 내고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뛰어난 가창력과 파격적인 무대 매너로 단숨에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4월27일 내한공연을 가졌다. 지난 2009년 이후 두 번째다. 2년 사이 그녀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첫 내한공연 당시만 해도 갓 데뷔한 신인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지만 현재 그녀의 위상은 세계 정상급이다.
미국의 유력 경제 주간지인 포브스지에 따르면 그녀는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콘서트, 앨범 판매, 광고 수입 등으로 약 9,000만 달러(1,044억 원)를 벌어들였다. 팝스타 가운데 최고였다. 이어 2011년엔 포브스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100인’ 가운데 1위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대중들은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이유로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세계적 팝스타의 내한공연은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그녀가 2012 전세계 월드투어 ‘The Born This Way Ball Global Tour’의 첫 무대로 한국을 택했기에 이번 내한공연이 갖는 의미는 남달랐다. 그녀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홍콩,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를 잇달아 방문했다.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은 한국 시장의 달라진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유명 팝스타들은 새 앨범을 낸 뒤 이를 홍보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이나 성장세가 뚜렷한 지역을 찾아 순회공연에 나선다. 특히 아시아 시장은 팝음악 업계가 주목하는 시장이다. 그녀의 내한공연 역시 2011년 5월 새앨범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 발매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 앨범은 발매 이후 600만 장이 팔려나간데 이어 미국의 유명 팝음악 순위 차트인 빌보드 핫 100차트에서 1,000번째 1위를 기록하는 등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은 인기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팝스타가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시장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비틀즈, 레이 찰스, 두란두란, 엘튼 존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팝가수들이 아시아 투어에서 가장 먼저 찾은 시장은 일본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아시아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흑인 4인조 리듬 앤 블루스 그룹 보이즈 투 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흑인 특유의 음감과 호소력 짙은 멜로디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앨범 판매량은 약 6,000만 장 가량. 그런데 미국을 제외하고 이들의 앨범이 가장 많이 팔린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이들은 한국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내한공연을 자처하기까지 했다. 이후 비욘세, 어셔, 마린5 등 현존하는 팝의 슈퍼스타들이 속속 한국을 찾았다. 레이디 가가가 내한공연을 가진 이유도 세계 팝시장에서 한국이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계, 레이디 가가 공연 거세게 반발
하지만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은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와 맞닥뜨렸다. 기독교계, 특히 보수성향의 교회들이 일제히 공연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트위터,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무료 단문 메시지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이용해 조직적인 여론 몰이에 나섰다.
기독교단체인 ‘레이디 가가 공연반대 페이스북 그룹’은 21일 성명을 통해 “(레이디 가가는) 그동안 외설적이고 음란한 것뿐만 아니라 살인, 인육 먹기, 자살 콘서트, 사타니즘, 동성애 지지 등으로 세계적으로 큰 이슈와 함께 논란이 돼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예인들을 흉내 내고 따라가는 대중들의 습성을 생각할 때 레이디 가가와 같은 스타가 절대로 이 사회의 문화를 주도하는 트렌드로 자리 잡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녀의 내한공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 날인 22일 서울 신촌의 한 교회에서는 ‘레이디 가가 내한공연 저지를 위한 특별기도회’가 열렸다. 공연 도중 동성애자와 키스를 했고, 자살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것이 기도회 개최 이유였다. 여기에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은 “레이디 가가의 공연과 뮤직 비디오는 음란물이라 불릴 만큼 선정적이고 퇴폐적”이라면서 레이디 가가 공연 취소를 요구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인 ‘레이디 가가 공연반대 시민 네트워크’는 23일부터 공연 당일인 27일까지 공연주최사인 현대카드가 입주해 있는 현대 캐피탈 본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녀의 내한공연을 하루 앞둔 4월26일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마저 공연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기총은 “동성애를 노골적으로 미화하고 엽기적 퍼포먼스를 펼치며 기독교를 비하하는 미국 팝가수 레이디 가가의 이번 내한공연은 즉각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어 “레이디 가가는 동성애자이며 동성애 옹호론자로 동성애를 미화하고 정당화시키는데 자신의 음악과 공연을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 뒤 “특히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위해 목사가 되겠다며 기독교를 모독하고 있다”면서 레이디 가가를 맹렬히 비난했다. 국내 최대 기독교 단체인 한기총의 적극적인 입장 표명은 기독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독교계는 그녀가 선정적이고 반기독교적인데다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그녀의 스타일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불편한 측면이 많다. 1970년대 영국에서 태동한 글램 록의 영향을 받은 성향 때문이었다.
글램 록은 파격적이고 성정체성이 모호한 의상이나 메이크 업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한 록 음악의 유파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그녀는 매 공연마다 가죽 장갑, 망사스타킹, 선글라스, 마이크 등을 활용한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특히 2010년 영국 공연 당시 속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수녀복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나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녀의 음악에서 드러나는 악마주의는 기독교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다. 그녀의 공연실황에서는 악마주의의 제의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가 자주 등장한다. 또 그녀의 싱글 히트곡 ‘Judas(예수를 배반한 제자 가롯 유다)’는 신성모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기독교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여기서 예수와 그의 제자는 폭주족으로, 레이디 가가는 막달라 마리아로 등장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의 유혹과 예수 사이에서 내적혼란을 겪는다.
동성애 역시 기독교계가 내세우는 주된 반대 명분이다. 보수성향의 교인들은 “그녀의 발길이 닿은 곳에선 동성애가 합법화 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 그녀는 양성애자임을 공공연히 밝힌 바 있으며 동성애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교계의 주장에 대해 입증된 바는 아직 없다.
기독교계의 반대, 오히려 여론의 역풍 직면
기독교계의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쇼 비즈니스 업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 따른 과민반응이라고 지적한다. 악마주의는 대중음악, 특히 록과 해비메탈 분야에 만연해 있는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팝 애호가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팝 음악 가운데에도 악마주의 성향이 강한 곡들이 여럿 있을 정도다. 대표적인 예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다.
이 곡은 ‘엄마, 방금 머리에 총을 쏴 사람을 죽였어’라는 식의 노랫말과 악마적 주문을 연상시키는 리듬으로 당국에 의해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해비메탈의 경우는 더하다. 대표적인 그룹인 모틀리 크루, 블랙 사바스(검은 안식일), KISS 등은 노골적으로 악마주의를 드러냈다. 그들의 복장과 무대 매너는 정말 악마교의 제의나 다름없었다.
정작 음악인들은 이에 대해 ‘쇼’에 불과할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악마주의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레이디 가가의 경우도 이 같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한 한겨레신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레이디 가가의 악마주의 퍼포먼스는 60년대 존재했다가 지금은 사라진 반문화, 즉 주류질서에 대항하는 문화에 대한 상업적 차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표창원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레이디 가가는 철학자도 아니고, 사회학자도, 신학자도 아니다. 대중 예술가로써, 자신의 감성과 상상력, 예술적 창작 욕구가 이끄는 대로 기획하고 표현할 뿐이다”면서 “여기에 얼토당토 않게 반기독교, 악마의 낙인을 찍어 그녀를 성토하고 비난한다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기독교 정신을 스스로 비판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며 기독교계에 자숙을 촉구했다.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특히 레이디 가가 공연 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진 SNS 상에서는 기독교계가 역풍을 맞고 있는 양상이다. 파워트위터리언인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mindgood)은 “레이디 가가가 노래로 성정체성까지 바꿀 정도면 조물주 수준”이라고 일갈했고, 독립영화감독인 이송희일(@leesongheeil)은 “레이디 가가 한 명 때문에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 기독교세력이 거품 물고 집단 히스테리에 빠지는 풍경이 촌스럽다 못해 안쓰러울 지경”이라고 교계를 비판했다.
이 같은 역풍은 기독교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최근 몇 년 사이 교계에서는 목회자의 비리가 끊임없이 불거져 나왔다. 한국교회의 차세대 목회자로 각광 받았던 J목사는 변태적인 성추문 행각으로 교계는 물론 사회를 경악시켰다. 또 H목사는 학력위조 및 교회공금 횡령 등 52개의 혐의를 받아 기소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독교계는 한미FTA,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사회 전반을 뒤흔들 민감한 쟁점에 대해서 친정부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교회가 정부의 정책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든 그것은 자유의지에 달린 문제이다. 문제는 교회가 세상에 취하는 태도가 일반인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는데다 특정정파의 정치적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데 있다. 보수성향이 강한 한 목회자가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집회를 가진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동은 기독교계의 문화에 대한 무지와 사회정의에 대한 불감증을 동시에 드러냈다. 사회정의에 무관심한 종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기 마련이다. 짠 맛을 잃은 소금처럼 말이다.
글쓴이/ 사사매거진 기자 지유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