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
‘시인’으로서의 함석헌에 대한 연구가 부재한 가운데 사상가에 앞서 ‘시인’ 함석헌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탐구한 『함석헌의 종교시 탐구: 내게 오는 자 참으로 오라』(김경재 지음, 책보세)의 출간 소식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 김경재 박사(한신대 명예교수)가 격월간지인 『씨알의 소리』기고하거나 각종 잡지나 연구지에 기고한 글들 중 14편을 엄선한 것으로, 저자의 함 선생의 종교사상과 종교시를 통해 본 그의 신앙세계를 탐구해온 공부 흔적에 다름 아니다.
저자 김경재가 다루려는 ‘시인으로서의 함석헌 탐구’는 우리 말글을 다듬고 되살려 빛낸 문학적 표현력을 밝힌다거나 함 선생의 시집이라 할 수 있는 『수평선 너머』에 실린 120여 편의 격조 높은 시 작품을 남긴 시인으로서 함석헌의 면모를 재발견하는 데 있지 않다. 그 보다 저자의 관심은 창조적 사상가로서 함 선생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 그의 시론(詩論)을 살피는 데 있다.
김경재는 "함석헌은 동양의 선비가 흔히 갖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태도를 가지고 끊임없이 동서양 고전의 깊은 우물에서 생수를 퍼내 오늘에 재해석한 사상가였다"며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함석헌의 진면목은 동트는 새문명시대의 여명을 알리는 전령자로서, 예언자로서, 신탁을 맡은 사제로서 살고 간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 시대의 ‘시인’이었다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함석헌은 특히 장편시 <대선언>에서 그의 시정신을 잘 나타내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영의 안테나에 간신히 느껴진 파동’을 크게 부르짖어야 하는 운명적 사명을 가진 이라고 주장한다.
김경재는 "함석헌은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있을 때, 그의 ‘영의 안테나’에 잡힌 세미한 소리를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 시를 통한 말과 행위와 맘은 함석헌 자신의 것이면서도 자기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함석헌의 시세계는, 물론 아름다운 서정시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예언시요, 생명의 지성소에서 듣고 본 사제만이 마치 반벙어리처럼 더듬거리는 소리로 신의 뜻을 지성소 밖에 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해석한다.
한편,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 김경재가 대학 강단에서 정년은퇴한 이후 지난 6년 동안 (사)함석헌기념사업회 부설기관 씨알사상연구원에서 주최한 작은 모임에서 발표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열두 편의 글들이 처음부터 책으로 낼 것을 계획하고 집필된 글들이 아니라 중복되는 내용도 있으나 책이 체계적 단행본이 아니라는 이 약점은 관심이 가는 주제를 독자가 임의로 골라서 먼저 읽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장점으로 극복된다. 값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