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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헌의 자살예방 칼럼] 생명의 벗 되기 위한 과정(2)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최의헌 원장
자살예방 지킴이인 ‘생명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지난 칼럼에 이어서 계속 생각해보자. 생명의 친구는 첫째 우리 주변에 자살의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둘째 자살에 대한 억측과 오해, 금기 등을 개선할 바른 지식을 익혀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셋째로 자살의 생각을 지닌 사람을 알아채는 민감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는데, 민감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공개적으로 자살의 주제를 건강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고 오늘은 민감성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민감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자살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은연중에 나오는 위험 인자를 인식하여 이를 공개적인 이야기의 자리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누가 자살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묘안이 있을까? 아쉽지만 없다! 흔히 어떤 대상이 자살률이 높다는 식으로 하여 위험한 대상을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 외국의 연구에 의하면 45세 이상, 알코올 의존, 분노표출 등의 요소가 있는 경우 자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위험성이 높다고 하여 이 세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 다 자살하는 건 아니고, 이 세 요소가 하나도 없다고 해서 자살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예로, 과거 자살을 시도한 경우 다시 자살을 시도할 위험성이 높긴 하지만 대다수의 자살 사망자가 처음 시도에서 사망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누가 자살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차릴 묘안이 없다면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명료하고 확실한 방법은 다소 의심이 가는 사람들에게 자살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방법이다.

많은 이들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상대방의 마음 상태나 어려움을 묻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위험성을 줄이는 일에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달을 만한 충분한 이해와 경험이 있으면 태도는 바뀐다. 이 점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심하면 좋겠다. 첫째, 자살은 매우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주제이므로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매우 드물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물어봐주어야 그 때 비로소 자기 심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자살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상대에게 자살에 대해 물었다고 해서 상대방이 불쾌하게 여길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관심과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자살 생각을 물었을 때 상대방이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해서 내가 그 상대의 문제를 책임질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니 괜한 일에 엮일까봐 회피하지 않기 바란다.

사실 제일 부담스러운 것은 묻는 자체가 아니라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물을 때 “너 죽을 생각까지 하는 건 아니지?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라고 묻는다. 그렇게 묻는다면 자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묻는 이의 부담을 느껴서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부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심하면 좋겠다. 첫째, 우리 모두 ‘설마’와 ‘혹시’의 갈림길에서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설마’에서 ‘혹시’로 옮겨가면 좋겠다. 의심이 든다면 점검하는 것을 주저하지는 말도록 하자. 둘째,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 나의 질문에 “그래요, 나는 자살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을 때 그 책임을 내가 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물론 그런 대답을 들은 내가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최소한의 것만 해도 되는 것이고 그 최소한의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안심해도 된다.

이제 생명의 친구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네 번째 내용을 다루기로 하자. 자살 생각을 확인하는 질문에서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우리가 하는 최소한의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듣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의 친구가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이다. 계속 강조했지만 여기서 불필요한 부담과 책임감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자살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살 생각을 가진 사람 중 다수는 아직 그 생각이 분명하지 않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그런 단계에서 자신의 자살 생각을 이야기하면 생각은 오히려 풀어지고 스스로 대안을 찾아간다. 그러니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자살 생각을 거론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하지만 어떤 이는 “나는 생명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들을 만한 사람은 아닌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는 과연 생명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될 수 있다! 사실 능력 있는 사람보다 자기 한계를 아는 사람이 생명의 친구로서 더 합당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해주고 나머지는 다른 이에게 맡기는 자세가 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니 듣는 정도는 생명의 친구의 개인적인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심리상담사이거나 정신건강 전문가라면 아마도 가장 훌륭한 듣기의 모델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듣기조차 어려우면 자살을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사실이라는 점만 서로 확인하는 정도의 대화를 하고 나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같이 찾아보면 된다.

자살 생각을 들으면서 함께 고려하는 점이 안전이다. 우리는 그의 생각을 해결해주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을 점검해줄 수는 있다. 번지 점프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말릴 사람은 없지만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그대로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자살 생각도 안전 수칙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그 생각을 막을 필요는 없다. 그러니 안전 수칙이 중요하다. 자살에 이용할 도구가 있거나 위험한 장소에 있는 등 주변에 자살이 실행될 위험한 요소가 있다면 정리해야 한다. 자살의 위험성이 높은 편인데 혼자 있으려고 한다면 함께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제어하기 어려울 것을 대비한 응급전화를 가지고 있게 해야 한다. 지속적인 도움을 위해 지지적인 교류를 유지하고 필요한대로 상담실이나 병원, 지역의 정신보건센터를 이용하도록 권해야 한다.

필자가 함께 참여하는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생명의 친구가 되기 위한 교육을 알선하고 있다. 기초반에 해당하는 safeTALK는 3시간 교육이고, 전문반에 해당하는 ASIST는 2일 교육이다. 교육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직접 문의하면 좋겠다. (전화: 02-413-0892)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연세의대 외래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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