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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헌의 자살예방 칼럼] 생명의 벗 되기 위한 과정(1)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최의헌 원장
자살예방 지킴이인 ‘생명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생각해보자. 다행히 생명의 친구가 되는 구조화된 교육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주변에서 그러한 교육의 기회가 있는지를 알아보면 된다. 교회에서 기관이나 강사의 협조를 얻어 교회 자체로 생명의 친구를 배출하는 일에 동참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교육에서 어떤 것을 배우는지 간단히 살펴보겠다.

생명의 친구가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우리 주변에 자살의 문제가 얼마나 자주 벌어지는 것인지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OECD 회원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소식은 아마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의 집 일인 양 별로 실감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통계적인 기록으로 자살 생각과 자살 실행이 어느 정도 일어나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생명의 친구가 되기 위해 모인 사람들끼리 자기 주변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면 자살의 문제를 보다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생각 외로 자살의 위험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구나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20명 중 한 명 정도가 1년의 기간 내에 구체적으로 자살에 대한 생각을 품는다고 하니 모인 사람이 20명 정도이면 그 모임 중에 한 사람은 지난 1년 중에 구체적인 자살 생각을 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것이 먼 얘기가 아니다. 필자의 친척 중에도 자살로 먼저 떠난 사람이 있다. 이 얘기를 꺼내면 나도 나도 하면서 숨겨진 이야기가 올라온다. 얼마나 우리 주변에서 이 이야기가 금기시되고 있는지 바로 체감하게 된다. 즉,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주변에 자살의 문제가 많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가 얼마나 이 주제를 두려워하고 무시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실존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지만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주제를 애써 외면하는 것과 흡사하다.

생명의 친구가 되기 위한 두 번째는 자살에 대한 다양한 억측과 오해를 떨칠 올바른 개념을 배우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마음이 약하고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살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보다도 의지가 강하고 철두철미하며 삶에 대한 애정과 주위 사람에 대한 인화력이 탁월한 사람도 많다. 잘못된 정보를 조절하면서 우리는 자살의 위험이 어떤 특정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이 자살의 위험성에 같이 들어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흔히 갖는 또 한 가지 오해는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래도 실행가능성이 적다는 생각이다. 자살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다 보면 자살의 위험성이 얼마나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으므로 자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이지, 말을 할 정도라면 위험성은 적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자살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혼자만 담아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생각을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한데 이 또한 자살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의도보다는 자살의 심각성을 확인하기 위한 의도가 더 많다. 다시 말하면, 자살의 생각을 겉으로 얘기하게 되는 것은 자살 위험을 줄이는 과정의 출발은 되지만 그 자체가 자살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친구가 되기 위한 세 번째는 자살의 생각을 지닌 사람을 알아채는 민감성을 발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민감성은 두 가지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첫째는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자살의 주제는 이중성이 있다. 그래서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쉬쉬해서도 안 된다. 우리 주변에 많은 금기와 왜곡이 있어서 자살의 이야기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드물다. 그런데 누가 감히 자신이 자살을 하려는 생각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그러니 먼저 필요한 것은 이러한 주제가 건전하고 안전한 상황에서라면 충분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라는 것을 계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 전 차인표씨가 “연예인은 방송에서 자신이 자살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했었다. 연예인이 방송에서 하는 자살 생각의 경험담이 일종의 무용담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자살 사건의 보도지침을 보면 기사 제목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게 하고 상세한 자살 방법을 묘사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이 두 가지 내용은 자살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안 좋은 방향으로 파급되는지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도지침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연예인의 자살 생각 경험담도 수그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방송은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움직여지기도 하고 시청자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기도 하는데 그러한 부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극적’ 요소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한 비유로 말하자면, 악을 없애는 데 들이는 노력이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선을 늘이는 데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실제로 방송 보도에 대한 자살예방사업의 취지도 이와 같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보도지침 등으로 잘못된 영향을 막고 없애려는 데에 주력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로는 자살예방에 대한 기사나 생명사랑에 대한 내용을 방송에서 많이 제공하려는 노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애써 하지 말라는 얘기를 안 해도 그에 상응하거나 그보다 더 나은 효과를 거두게 된다. 다시 말하면, 불특정 대상을 향하는 발언이 아닌 소규모의 모임이나 일대일 관계에서 신중하고 안전하게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오히려 자살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러한 환경에서 어떤 이들은 “실은 제가 자살에 대한 생각이 있거든요.”라고 말문을 열 것이고 어디서도 얻지 못했던 안전과 안심을 얻게 될 것이다.

자살의 생각을 지닌 사람을 알아채는 민감성을 높이는 두 번째 방법은 자살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은연중에 나오는 위험 인자를 인식하여 이를 공개적인 이야기의 자리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다.

 
최의헌 · 심리상담연구원 '나무와 새' 원장, 연세의대 외래교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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