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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태 칼럼] 복지사회의 조건으로서 도덕성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고문) ⓒ베리타스 DB
요즘 유럽에서는 유럽통합 이후 금융위기로 심각한 경제적 파탄을 격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남유럽국가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신자유주를 신봉하는 학자들이나 언론들은 그 원인을 유럽통합 이후 과도한 복지제도의 도입에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들은 이러한 과도한 복지제도의 도입이 국가재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결국은 국가붕괴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요즘 한국의 정치권이나 시민사회 등에서 요구하는 복지제도의 확대실시도 결국은 한국을 경제적 파탄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진보적 사상을 가진 학자들이나 언론들은 남유럽국가들의 경제적 파탄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금융자본의 과도한 경제적 약자들의 수탈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1대 99의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가 이러한 파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남유럽국가들은 북유럽의 나라들의 사람들과 달리 그 복지제도를 오용하려는 다수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태만에서 찾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연대에 기초하고 있는 복지제도는 그 제도를 지원하는 부유한 사람들이나 그 혜택을 받는 경제적 약자들의 도덕적 성품 아니 도덕적 수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경제적 강자들은 성실하게 납세 등에서 자신들의 의무를 다 하고 경제적 약자들도 성실하게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강자들이 불성실하게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약자들이 기만적 방법으로 혜택을 가로채는 일이 생기면 이들 양자 사이에는 불신이 생기고 그 결과는 복지제도가 파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들을 복지국가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국가들과 경제적 파탄에 이른 남유럽국가들의 도덕적 상태를 예를 들어서 비교해 보자. 북유럽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름만 되면 우중충한 날씨를 피하고 맑은 태양이 내려 쪼이는 남유럽국가들로 약 2주 동안 여름 피서를 떠난다. 이 때 남유럽국가들인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고속도로에는 북유럽에서 온 자동차들로 가득 차고 휴양지들에는 거의 북유럽에서 온 피서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 때 북 유럽인들이 휴가에서 쓰고 가는 돈이 엄청나서 남유럽국가들은 높은 관광수입을 벌어들인다.

그런데 이 때 북 유럽에서 온 대수의 관광객들은 남 유럽인들의 불친절과 함께 기만적 상행위 등에서 그들에 대한 불신과 불쾌감을 가지고 돌아간다. 한마디로 남 유럽인들은 북 유럽인들에 비해서 도덕적으로 불성실하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의 아테네나 이탈리아의 로마 그리고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가면 소매치기들을 조심하라고 여행 안내서들에 적혀 있다. 경험적으로 봐도 북유럽국가 사람들은 남유럽국가들과 비교해서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이들 남유럽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물건을 탈취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차 안의 물건들을 도둑질 당하거나 심지어 세워놓은 자동차의 타이어들을 빼가버려서 낭패를 보는 사람들까지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유럽 사람들은 이렇게 도덕적으로 불성실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연대와 복지의 토대가 되는 세금도 적게 낼뿐만 아니라 탈세를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 동시에 사회적 혜택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온갖 기만적 방법을 동원해서 자격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복지후원금을 과다하게 타먹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선거철을 맞이해서 불붙고 있는 대주제인 “보편적 복지”나 “경제민주화”를 제도적으로 도입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에서도 남유럽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어서 매우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의 가진 자들이나 가지지 못한 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보편적 복지나 경제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는 도덕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최근 우려스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로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도입된 영유아들의 양육지원금제도 도입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보편적 복지와 관련해서 한두 살 난 어린이들은 가정에서 돌보는 것이 어린이들의 정서함양에 좋고 또 가정 형편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양육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아이를 억지로 시설에 보내는 것이 그것이다. 동시에 대형마트들이 중소기업 납품업체들에게 과도한 수수료부과를 시정하려는 정부의 조치에서 생색내기에 그친 것은 상생의 정신이나 경제민주화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매우 부도덕한 행태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승자독식논리는 그들이 금과옥조로 신봉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와도 무관하다.

필자는 경제학자가 아닌 신학자로서, 그리고 “국민의 도덕성의 담지자는 종교”라는 명제에서 연구하는 학자로서 북유럽국가들과 남유럽국가들 사이의 도덕적 수준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를 늘 되묻게 된다. 왜 정교회신자가 대부분인 그리스와 가톨릭 국가들인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 등이 이러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일까? 과도한 복지지출이 원인이라고 한다면 남유럽국가들은 복지수준에서는 북유럽국가들인 독일이나 특히 스칸디나비아국가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보다 결코 훨씬 뒤떨어진다. 과도한 복지지출이 남유럽국가들의 경제파탄의 원인이 아니라면 그 원인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런데 이 남유럽사람들의 도덕적 태만과 공공성의 결여는 이들이 믿는 전통종교들과도 부관치 않다고 생각된다. 그리스나 이탈리아와 스페인 사람들 대부분은 정교회와 가톨릭교회 신자들이다. 이들 종교들, 즉 정교회나 가톨릭교회는 제도적으로 매우 권위주의적이며 상하계율이 엄격한 수직적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은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도 민주화된 제도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제반 이슈들에 대한 결정에서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정교회나 가톨릭의 영향 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들은 자율과 책임성이나 공공성에서 북유럽사람들보다 약하다고 보인다.

우리나라는 종교다원사회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의 도덕성이나 공공성의 정도를 유럽처럼 특정한 종교에 국한해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근래 한국의 고등종교들의 도덕성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서 신뢰성의 정도를 묻게 될 때 가장 심각하게 문제가 것은 개신교회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7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자본주의정신과 가장 잘 결탁한 순복음계통의 교회들의 무한경쟁을 통한 선교활동에 자극을 받아 각 교단마다 5만 교회, 5천 교회 등 교회확장 운동을 벌리면서 기독교의 본래의 사명을 상실하고 자본주의 속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강남개발과 그 결과로 생겨난 거대교회들이나 거기에 속한 성직자들이나 교인들의 도덕성과 공공성의 수준은 매우 우려할만한 것으로 타락하기 시작했다. 대교회들의 성직자들은 자본주의의 상징인 대기업의 총수들과 같이 교회를 세습화하고, 거대은행처럼 지점교회를 만들어 교세를 확장하여 자본과 영리추구에 돌진한다. 그들은 구역을 북한공산당식의 세포조직(cell organization)으로 만들어 교인 이탈을 막고, 다단계판매회사의 신입사원훈련방법을 도입하여 새신자자 훈련프로그램으로 삼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북한의 정치적 세습화를 비판하고 남한의 대기업의 세습화를 탓할 수 있을까?

최근에는 개신교 중에서도 강남에서 가장 부자교회로 알려지고 또 이명박대통령이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는 성직세습 논란을 겪는가 하면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온상이 되었다. 금융인들을 선교한다는 장로들의 모임인 소금회란 집단은 예수당시 예루살렘성전처럼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 온갖 불법과 탈법을 계획하고 저지르는 자들의 은신처가 된 것이다. 저축은행장들이 장로라는 감투를 쓰고 거기에 모여서 서민들을 등친 돈으로 헌금을 내고 뇌물을 주고 잔치를 벌인 것이다.

주전 8세기 북이스라엘의 예언자 아모스는 이러한 악당들을 향해서 “너희는 공의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며,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자들이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아모스 5장).

이제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은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들을 개혁하고 도덕성과 공공성을 회복하여 대립과 갈등으로 가득 찬 세상을 화해와 평화의 세계로 만드는 구원의 방주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다. 그 때에만 ‘복지국가’도 ‘경제민주화’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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