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교회] 짐을 내려놓고 쉬어라

2012년 5월 6일 주일예배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12:1-6

그 날이 오면, 너는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 전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진노하셨으나, 이제는 주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나를 위로하여 주시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나는 주님을 의지한다. 나에게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또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리며, 그의 높은 이름을 선포하여라.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송하여라. 이것을 온 세계에 알려라. 시온의 주민아!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아멘.

골로새서 3:12-14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11:25-30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으며, 아들과 또 아들이 계시하여 주려고 하는 사람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아멘 
  
설교문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1부에서는 부모님들, 어린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2부에서는 어린이들이 함께하지 못하지만 우리와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마운 것은 2부 성가대가 예배 마치고 송영때 오르간 후주를 대신해 어린이들을 위한 찬송을 부릅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실 때 이 노래 한가득 담아 가시기 바랍니다. 성가대 고맙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책을 읽다 만화그림을 봤습니다. 여러 장면이 나왔는데, 첫 장면에는 어느 여성분이 지게를 지고 가는데 등에 지고 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 지게를 지고 갑니다. 상상할 수 있습니까? 지게를 앞으로 지었다. 임신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이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기를 등에 업고 어머니는 갑니다. 한 장면이 지나고 등에 업혔던 아기가 커서 자기 지게를 짊어집니다. 어머니도, 아이도 지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아이가 짊어진 지게 위에 짐이 쌓여갑니다. 이 짐은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고, 취업하면서 더욱 커져 갑니다. 엄마는 아이의 짐까지 지고 걸어갑니다. 이렇게 그림이 계속 됩니다. 그러다 한 장면에서 아이 엄마는 너무 힘들어 땅에 쓰러지고 맙니다. 그 다음에는 아이가 지고 있는 짐이 무거워서 아이도 쓰러집니다. 이렇게 짐을 지고 가다 쓰러지고, 또 일어나고 하는 일이 세대를 거쳐 반복 됩니다. 그 나머지는 물음표입니다. 무엇이 계속될까요?

오늘 제목을 성경말씀대로 “짐을 내려놓으세요.”라고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자녀가 벗어 놓아야 할 짐이 됩니까? 아니면 기쁨이 됩니까? 우리선조들은 우리들을 짐으로 보았을까요? 축복으로 보았을까요? 요즘 보도되는 것을 보면 발랄하게 자라야 할 우리 아이들이 너무 배울 짐이 많아 힘들게 살아갑니다. 경쟁사회에 살다보니 놀아야 할 나이에 놀지도 못하고 학원으로만 가야 합니다. 그 것 뿐입니까, 폭력이 있고, 소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 폭력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입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사랑하는 어린 자식들이 죽음으로, 자살로 치닫는 사정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죽음으로 자신이 그 동안 짊어 졌던 짐을 벗어 보려는 것이요, 짐진 삶을 거부하려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내가 당한 폭력을 거부한다.” 폭력에 저항한다는 뜻으로 자기 몸을 던집니다. 아마 비겁한 피해자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 자체가 너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의 반응입니다. 짐을 지고 사는데 어디에 짐을 풀어 놓아야 할까요? 짐을 풀어 놓을 곳이 없나요, 있나요? 현대인의 고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짐을 지고 사는데 짐을 내려놓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려놔봐야 짐을 받아 줄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만 그런 건 아닙니다. 옛날도 그랬고, 그 옛날도 그랬고, 역사가 있는 곳마다 짐을 내려놓을 곳이 없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세상이 온통 뒤숭숭할 때 입니다. 유럽에 유명한 문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에 대해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욕하기도 하고, 인간의 자유를 존중한 사람이라고 칭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카뮈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2차 대전 끝나고 한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생명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 유럽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했고, 기독교 사랑으로 산다고 자부했던 유럽, 생명이 사랑받지 못하는 곳, 유럽은 무엇이냐? 수수께끼요, 비밀이다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더 이상 사랑 받지 못하는 곳이 유럽뿐인가요? 우리들의 학교는, 우리들의 가정은, 우리들의 온 세계는 생명이 사랑 받는 곳입니까?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폭력과 테러가 많습니다. 그 중에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지도자 몰라 오마르 기억하시나요? 그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알고 있으신가요? "너희 젊은이들은 - (아마도 너희는 기독교인을 지칭해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사랑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죽음을 사랑한다"라고. 그런 사랑도 있습니까? 세상이 너무 힘들어, 논란이 많고, 갈등도많습니다. 그 사람들한테만 죽음에 대한 사랑이 있나요? 우리는 생명을 사랑하나요? 기독교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친위부대(SS) 대원들이 훈련에 그리고 전쟁에 나가 반복해서 외친 구호가 있습니다. “죽음을 주고, 죽음을 취하라”고. 이상한 내용입니다. 그들이 받는 훈장이 있습니다. 그 훈장은 자신이 죽인 해골을 많이 가져오면 그 수에 따라 주어지는 훈장입니다. 유태인, 공산주의자, 체제에 저항하는 자, 보기 싫은 자들에게 죽음을 주어라. 그래서 해골이라 이름하는 죽음을 가져와라, 그런거지요.

예수님시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이 있었을 것이고, 아픔이 있었을 것이고, 좌절과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함께 사는 동시대인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의 짐이 너무나 컸습니다. 예수님 눈에 그 짐의 이름은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이라는 짐이 너무 크고 무겁게 등에 지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율법의 짐을 내려놓아라. 너무 무겁다. 그 짐 대신 내가 복음이라는 짐을 새로 줄 것인데, 이 짐은 가볍고, 너희들을 해방시킨다”, 그런 것이었습니다. 율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곳에서 자세히 설명할 수 는 없습니다. 뺨을 한 대 얻어맞으면 뺨 한 대 때려라. 폭력을 당하면 당한만큼 갚아라. 사랑을 받으면 받은 만큼만 갚아라. 편하죠. 상호주의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율법대로 한 대 얻어맞으면 맞은 만큼만 갚으면 좋은데 맞고 난 다음에 분노가 있습니다. 분노의 몫, 내가 이겨야지 하는 승리 몫, 다시는 못하게 해야지 하는 미래의 몫. 이 모든 것을 다 합쳐 한 대만 맞으면 되는 것을 오히려 열배, 백배의 폭력을 가합니다. 폭력의 악순환, 앙갚음의 악순환, 이것이 율법이 오도된, 과용된 현상이었습니다. 유대사람들은 율법을 강조하면서 지키려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대 맞으면 한 대만 갚으세요. 하나 사랑 받으면 하나 이상도, 하나 이하도 하지 말고 그 만큼만 갚으세요. 바로 그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정직하지 않습니까? 유대사람들은 율법이라는 이름하에 정직하게 율법대로 살자고 햇습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눈에는 그것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한 대 맞으면 열대 때린다는 것입니다. 왜 내가 폭력을 당했는데 수십 배 폭력으로 보복해야 합니까. 오늘날의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의 말씀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폭력하려는 마음을 고쳐야 한다. 폭력의 근원을 ‘혁명’해야 한다. 그래서 방법으로 주시는 말씀이 어떤 사람이 5리만 가자고 하거든. 5리만 가면 되지만 5리는 그냥 강요에 의해서 가고, 나머지 5리는 너의 자유결단으로 궁극작으로 이기기 위해서 가라. 처음 5리는 의무고, 그 다음 5리는 사랑의 헌신입니다. 오른뺨 한 대 맞으면 오른편 때리는 것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을 무안 시키고 다시 때리지 않기 위해서 왼뺨도 대어 주라는 것입니다. 굴종, 비굴이 아니라 사랑으로 폭력의 뿌리까지 뽑으라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달리 표현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악을 선으로 갚고, 선으로 이기라고 하십니다. 현재는 받은대로 갚고, 미래는 더 베품으로 이기라고요.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악이 없어집니다. 율법이라는 상호주의 가지고는 안 된다. 더 베풀자. 그래서 예수께서는 짐을 지고 오면 내가 사랑의 율법을 주마고 하십니다. 사랑의 율법은 복음입니다. "내가 준 멍에는 편하다. 너희들이 지고 있는 멍에는 무겁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율법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의 율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고난이 현대판 율법입니다. 고난, 좌절, 절망, 아픔, 다 가지고 계시죠? 끊일 날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조차 가지고 있습니다. 짐을 내려놓으세요. 주님이 받으십니다. 편안히 쉬세요. 이 이야기를 제가 평소에 제일 많이 설교 할 때가 언제인가하면 곧 생명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임종의 환자에게 말씀 드릴 때 입니다. “세상의 짐, 근심, 염려 다 내려놓으세요.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다 내려놓고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 편하게, 가볍게 가십시오. 내려놓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려놓으세요.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이 마음으로 결단하고 “제가 내려놓겠습니다. 편하게, 가볍게 가겠습니다.”하고 받아들이면 요즘 말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짐을 그냥 가지고 가고 싶으신 분들은 얼굴모양이 조금은 괴로운 기색입니다. 저는 죽을 때만 이 말이 통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오늘도 이 말이 통해야 되고, 지금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무엇을 내려놓고 싶으십니까?

제 경험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짐은 주머니에 있는 물건처럼 보관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볍고 청결해야 하는데 제 몸에도, 마음에도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제가 수술을 했을 때 느꼈습니다. 짐을 물건처럼 주머니에서 꺼내어다가 던져 버리면 쉽겠는데, 제가 내려놓아야 할 짐이 제 몸에 붙어 있더라고요. 몸에 붙어 있기 때문에 몸에 붙어있는 짐을 제거 하지 않으면 제 몸이 썩어요. 제 마음속에, 영혼속에 척결해야 할 짐이 있는데, 물건으로 있는 게 제 영혼에, 제 생명에, 제 사고방식 속에 찰떡같이 붙어 있습니다. 짐을 내려놓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수술 밖에 없습니다. 수술하면 아픕니다. 그러나 짐을 수술해서 때어놓고, 저의 경우처럼 그 수술로 암덩이를 떼어놓은 빈 공간을 병이 없는 건강한 살로 다시 막아 주어야 합니다. 악을 비우면, 그 빈 공간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빈공간은 하나님이 주신 선으로 다시 채워 넣어야 합니다. 악을 버리면 버리는 공간은 빈 공간이 아니라 선으로 채워지는 공간입니다. 짐을 비우고 사세요. 비우면 어떻게 삽니까? 빈자리는 채워야 합니다. 짐 내려놓기 쉽지 않습니다. 잘라야 되거든요, 아파야 되거든요. 그리고 나서 좋은 수술자가 수술 잘하면 우리는 다시 살아 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주는 복음으로 나한테 오면 내가 수술하겠다. 절망도 없애고 희망으로 바꿔주겠다. 마지막 죽음이 오면 죽음을 없애고, 대신 내가 생명을 주마.”

짐이 오래가면 썩습니다. 무겁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에 이르는 우리 모두의 짐을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가 무슨 의미입니까? 죽음의 짐을 지고 예수님이 대신 죽어주시는 것입니다. 죽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 빈자리를 “내가 부활의 생명으로 바꿔주마”고 하시면서 부활의 새생명을 선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두다 나에게 와 다 바꾸자. 내가 새로운 생명사랑으로 덧입혀 주마.” 짐은 몸에 붙어있고, 영에 붙어있고, 사고방식에 붙어있고, 우리한테 함께 있습니다. 절대 떨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술해야 합니다. 수술의 명의(名醫)가 예수님 이십니다. 수술하는 장소가 십자가입니다. 그곳에 오면 부활이라 이름하는 새로운 생명의 양식으로 다시 바꿔 주십니다. 이 사실을 이미 구약시대에도 알았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 들으셨죠. “그날이 오면 나는 이렇게 찬송을 할 것입니다. 주님, 전에는 저에게 진노하셨으나 이제는 위로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나의 구원, 나의 힘, 나의 노래, 주님 제가 이제부터는 주님이 주신 구원의 우물에서 생명수를 기쁜 마음으로 길어서 마시겠습니다. 그 날이 오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오라. 짐을 내려놓아라. 내가 함께 지마. 내가 수술도 하마. 같이 아픔도 지어주마. 그리고 부활생명을 주마.” 언제요?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언제인가요? 내일인가요? 모레요? 늦은 것 같은데요. 그 날이 오면! "그날"은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오늘! 주님, 제가 수술 받겠습니다. 같이 수술해 주시고, 새 생명 주옵소서. 내일은 늦습니다. 오늘 하십시다. 여러분 주일마다 경동교회 오셔서 짐 내려놓는 곳이라고 믿으시면 올 때 마다 내려놓으시고, 함께 구원의 영광에 동참하십시다. 내일은 늦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만찬에 참여합니다. 오늘 떡을 뗍니다. 잔을 마십시다. 제가 말씀 드릴게요. 십자가를 먹고 부활을 마십시다. 십자가 구원의 떡을 먹고, 부활 생명의 잔을 마십시다. 무거운 죄의 짐을 내려놓고 사죄받고, 새 생명을 먹고 마십시다. 쉰다는 말은 아무것도 안하고 쉰다는 말이 아닙니다. "쉼"이란 새 생명, 새 출발, 새 양식, 새 삶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편안히 쉬시지요. 십자가 먹고 부활 마시고 새 생명 시작 하십시다. 바로 오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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