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신약학) ⓒ베리타스 DB |
그러나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 신약학)는 "기본적으로 삼각관계에는 욕망이 생성되고, 조율되는 모든 인간관계의 비밀을 감추어져 있다"고 전제하면서 "예의 작품에서 드러난 삼각관계의 파탄을 인간관계의 숱한 실례로서 주변에서 목격하고 우리 스스로 경험하는 바이지만, 갈등과 대립이 삼각관계의 전모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삼각관계’의 원형적 구조가 갖는 유의미성을 언급했다.
차 교수는 "이처럼 삼각관계의 한 꼭짓점을 이루는 개체는 다른 맥락에서 또 다른 삼각관계를 파생시키면서 타자와 조우해 대립하고 갈등하거나 때로 협력하고 연대한다"면서 "그것이 유착과 통합을 거부하고 대립과 갈등도 원치 않을 때 제3의 개체는 그 가운데서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관계를 조율하며 소통과 타협의 관계망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삐걱거리면서 전개되는 트라이앵글의 관계는 욕망의 생성과 진화뿐 아니라 관계의 역동적인 대안을 창출하는 핵심 구조"라고 했으며, 이러한 ‘삼각관계’가 성서에선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빌레몬서와 요한삼서 서신을 통해 살펴봤다.
차 교수는 특히 빌레몬-오네시모-바울로 이어지는 빌레몬서의 ‘삼각관계’ 작동 패턴에서 보여지는 ‘삼각관계’의 선순환과 코이노니아가 갖는 함의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먼저 바울과 빌레몬 사이의 관계를 짚어본 그는 바울이 빌레몬과의 관계에 있어 ‘사도’직을 내세우기보다 ‘믿음의 교제’, 곧 ‘코이노니아’를 강조하고 피차 ‘동역자’로서의 관계를 부각시킨 점을 되새겼다. 복음의 은혜로 빚진, 치우친 관계에 있는 빌레몬에게 충분히(?) "명령할 수 있는" 바울이었지만, 옥중수발을 한, 심복 오네시모란 제3의 인물의 비극적 관계 재설정을 위해 빌레몬에 간청하는 입장에서 그를 상대로 대등한 관계로의 균질화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차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코이노니아’ 순환 궤도를 따라가보면 빌레몬과 바울의 관계에서 오네시모가 개입하듯, 오네시모와 바울의 관계에서도 빌레몬이 개입하는 ‘삼각관계’의 구도가 형성된다. 빌레몬서의 기록을 보면 오네시모는 노예주 빌레몬에게 자신의 도주행위 자체로써 재산상의 손해는 물론, 정서적인 차원의 실망을 안겨주었다. 차 교수는 이러한 틀어지고, 어긋난 관계의 회복은 오로지 바울의 개입과 중재를 통해서 가능했다고 역설했다.
차 교수는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에게 복음으로써 동시에 은혜를 끼치고 오네시모의 감옥 수발로 그로부터 은혜를 입은 입장에서 이제 빌레몬의 호의적 처결을 간청함으로써 삼각관계의 선순환 구조가 균형 있게 성립되기에 이른다"면서 "이처럼 바울은 오네시모와 빌레몬을 중재해 굴절된 주종관계에서 대등한 형제관계로 관계의 갱신을 도모하고 오네시모는 자신을 매개로 바울과 빌레몬의 코이노니아 동역관계를 강화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 교수는 "세 사람이 독립적인 꼭짓점을 형성하면서 한 사람이 나머지 두 사람의 관계 설정과 발전을 위한 매개 변수로 작용하는 삼각관계의 선순환 체제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 대목에서 분명한 것은 이 삼각관계의 코이노니아적 선순환이 빌레몬의 가정교회에 신앙공동체의 윤리적인 규범을 수립하는 중요한 전환점 내지 계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기독교 공동체에서 나타난 ‘삼각관계’의 선순환을 논증한 차 교수는 끝으로 "오늘날 추악한 치정관계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삼각관계의 신학적 의미망은 기실 저간의 그 통속성을 벗어나 그다지도 풍요롭게 약동한다"며 "그것이 원만한 관계의 기틀을 잡아갈 때 우리는 더러 교회에서, 또는 각종 사회조직체 안에서, 심지어 소소한 일상의 느슨한 관계에서도 삼각관계의 아름다운 진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약논단 2012년 여름호에 게재된 차 교수의 이번 논문의 제목은 ‘역동적 삼각관계와 공동체 윤리- 빌레몬서와 요한삼서를 중심으로’이다.